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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용어를 쓸 때는 김일성이 그 말을 쓸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미연방이나 영연방만을 떠올렸을 뿐이지요. 북한이 나중에 그런 용어를 그대로 쓸 줄 귀신이 아닌들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재판이란 것은 한번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하면 무엇이든지 가능한 겁니다.”

10여 년쯤 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이미 1970년대부터 ‘공화국 연방제’라는 통일론을 역설했던 그는, 이후 북한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이 나오자 바로 봉변을 당했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공화국 연방제’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의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략 80년대 후반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이처럼 어이없는 이유로 고초를 겪었다. 기억나는 대로 꼽아보면,

49년 국회프락치 사건, 52년 국제공산당 사건, 60년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마산시민의 뒤에 공산당이 있다던 이승만의 주장,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한 박정희의 공격, 80년 광주항쟁은 북한의 음모라던 전두환의 고정간첩 배후조정설,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평양방송이 김대중을 당선시키라는 내용을 방송했다는 김영삼의 평양지령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등의 면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대부분 대한민국의 집권자, 혹은 집권 세력이 반대파를 한방에 날려버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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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북한군이 남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북한 통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난길에 올랐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민군에 가담하거나 북한군 남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개입과 무차별 공격에 따른 전환의 급박한 변화에 따라 점령정책은 더욱 강압적으로 변질되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된 최장집 교수가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에 썼던 내용의 일부다. 이미 96년에 출판된 이 책에 대해 <월간조선>은 98년 11월호에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이라는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는 이렇게 인용되었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는 <전쟁 초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민군에 가담하거나 북한군의 南進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라는...”

당시 <조선일보>는 보도, 사설, 칼럼, 만평, 가십, 독자투고까지 총동원해서 최장집 교수를 공격했고 결국 그는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80년대 후반부터는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대략 살펴보면,

88년 서관모 사건(일명 김동길 사건), 91년 서사연 사건, 93년 한완상 사건(일명『한국전쟁과 한국사회의 변동』사건), 94년 『한국사회의 이해』 사건(일명 박홍 사건), 97년 이장희 사건, 2001년 강정구 교수의 만경대 필화 사건...

등이 있다. 대부분 공안당국보다는 박 홍과 같은 '극우' 인사나 '극우' 언론 쪽에서 더 난리를 쳤다는 게 공통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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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위 구절은 총 4장 25조로 구성된 국가보안법의 1조 1항이다. 보다시피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어떤 경우에 법이 적용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다.

2004년 3월 30일, 재판부는 송두율 교수에게 7년 형을 선고했다. 당시 나는 그 판결을 육성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사법부가 제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송 교수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남한 사회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경계인’으로 포장하여 대중을 호도했다. 그리고 가장 나빴던 건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열 달을 보내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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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난 26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사노련)’ 회원 일곱 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했다(이날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을 지냈던 김덕종 씨는 2년 전 한미FTA범국민대회와 관련해 연행되었다). 이적단체 구성과 국가 변란을 선동한 문건을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교계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27일에는 “위장탈북 30대 女간첩 검거” 기사가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나이스 타이밍.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곧 신공안정국이 도래해 비슷한 탄압이 줄을 이으리라 조심스럽게 전망하며(“드디어 나왔습니다, 이적단체”, “본격적으로 시동 걸리는 공안정국”), 황당하고 지겹다는 반응을 보였다(“추억의 간첩 사건 우리 곁으로”, “곧 평화의 댐 만들겠구나”).

사노련의 경우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헤프닝으로 끝나는 거 보면, 대한민국의 레드콤플렉스가 조금쯤 변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여튼 ‘말 많으면 공산당’, ‘간첩은 표시 없다, 너도 나도 다시 보자’라는 구호가 그다지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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