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벤 바이러스>의 선전과 배우 문근영의 부상 등 악재가 겹쳐 주춤하던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난데없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리면서 진정한 화제작으로 거듭나게 생겼다. “문헌 기록이 부족한 경우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신윤복이 남자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명백한데 아무리 돌아가신 분이더라도 성별을 바꾸는 게 온당하냐. 국민에게 역사를 알게 하려면 그 작업을 제대로 해야지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 문화재위원장인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이거, 20세기 초를 풍미했던 모더니즘적 귀족주의자의 일갈이랑 비슷하다. 왜 있잖은가, 대중에게 판단력이나 감식안이 전혀 없다고 보는 논리. 하지만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신윤복이 남자임을 알고 있던 이른바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다지 고려할 가치가 없는 말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가정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실제 연구사례도 있거니와(라고 쓰고,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 판에, 라고 읽는다),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실존인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던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뭐가 문제인가. 남장 여자로 출연한 문근영은 그저 사랑스럽기만 한데. 여기까지가, 이번 논란에 대한 A의 입장이다.

B의 입장은 달랐다. 그(녀)는, “드라마 전개과정에서 이 드라마가 픽션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킨다면 역사적 사실보다는 극적인 상상력이 더 중요하지만 제작진이 역사 알리기라는 교육적 차원도 배제한 채 사실과 다른 내용을 첨부한다면 심각한 왜곡을 저지르는 셈”이라는 성균관대 정진상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특히, 드라마를 통해 신윤복이 여자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의 경우에서 보듯, 이런 왜곡은 자칫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했다.

A가, 드라마에서의 왜곡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왜곡된 ‘실제 현실’을 방기한 상태에서의 비판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혹은 왜 부족한 역사 공부를 굳이 드라마를 통해서 해야 하는가라고 열심히 설득해 보지만, B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A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영웅시대>나 <야망의 세월> 같은 드라마, 파시스트를 미화한 작품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마찬가지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나. 그건 곤란하지 않을까. 과연, 그건 좀 곤란하겠다고 A는 생각했다.

이때 C가 등장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A도 옳고 B도 옳다. ‘만약에 ~라면’이라는 의문을 가지고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상상력은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역사학자로서 그것이 잘못된 사실임을 지적하는 태도 또한 존중받아 마땅하다. 단, 양자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가 없을 때에 한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C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필 드라마가 방영되는 오늘(수요일) 기사가 나온 게 정말 우연인지 의심이 들긴 한다고. ㅎㅎ

덧)
적어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일이지만 그럴 듯하게 여길 수 있는 이야기가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이지만 도저히 그럴 듯하게 여길 수 없는 이야기보다 낫다는 것.

하나 더.
<바람의 화원>이라는 책도 더불어 많이 팔리리란 것. 부러워.
우리 이번 책 제목을 <홈즈 바이러스> 바꾸는 건 어때? ^^:::
아, 나 미쳤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