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 1848년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며 들머리로 사용했던 말이다. 생각건대 저 유명한 문장이야말로 오늘 한국 사회의 풍경을 얘기함에 있어 가장 적절하게 써먹을 수 있는 메타포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이렇게 적을 수 있으리라. 하나의 유령이 한국 사회에 떠돌고 있다--미네르바라는 유령. 정보당국과 경제수장, 청와대 관계자는 이 유령의 입을 막기 위해 신성동맹을 체결하였다.
‘미네르바’란 다음(DAUM) 아고라에 경제 관련 글을 쓰며 유명해진 논객의 필명. 스스로 ‘고구마나 파는 늙은이’로 칭한 것 외에, 지난주까지만 해도 미네르바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글은 거칠고 요령이 없으며 자칫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령의 ‘수상한’ 글은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미네르바는 ‘사이버 경제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얻기에 이른다. 그(녀)가 쓴 글은 각종 게시판에 퍼 날라졌으며, 글에 거론된 경제학 서적은 인터넷 서점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한 카페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책으로 묶어 원하는 이들에 한해 제작비 정도의 비용만 받고 보내주기도 한다.
급기야 11월 11일, 정보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미네르바는 ‘50대 초반의 나이, 증권사에 다녔으며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남자’라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최근 미네르바가 아고라에서 활동을 중단하자 정부와 청와대는 그에 대해 손을 대지 않기로 했지만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판단할 경우 적극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정말이지 우습고 치사하다. 백번 양보해서 당국이 미네르바의 신원을 파악했다고 치자. 뭐 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신상명세 조사야 얼마든지 가능할 테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슬쩍 호명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니. 그게 이 정부의 수준이겠지.
“미국발 서브프라임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리라는 예상을 비롯하여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부동산 거품, 주식 폭락 등을 예측한 그를 손봐주기 전에, 신문이나 백분토론 등에 나와 장밋빛 전망을 떠들어 댄 관료들과 애널리스트들부터 손봐주어야 할 것”이라거나 “대다수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미네르바의 정체가 아니라, 쌀직불금을 부당 수령했음에도 사생활 보호라는 미명하에 공개되지 않은 고위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명단이라는 사실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은, “겨우 몇 개의 글로 위기감을 느끼는” 우리 정부의 딱한 오늘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미네르바는 기사가 나오기 일주일 전인 지난 4일부터 글쓰기를 중단한 상태다.
덧) 환율 때문에 확 돌아버릴 지경인데, 리만 브라더스는 진짜 계속 이따구로 할 모양인지... 이참에 '미네르바 추천 도서'마저 전부 베스트셀러나 돼 버려라... ㅎㅎ
얼굴 없는 경제대통령 '미네르바'의 추천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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