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일에 있었던 <나무바다 건너기> 독자교정 후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사실 정리는 매우 빨리 끝났으나, 이러저러 여차저차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흘러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올립니다;;ㅁ;;(좀 더 제대로 정리를 하고 싶었는데;;) 이번 주에 나올 <나무바다 건너기>가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셨던 분들에게 아마 좋은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정리한 대화록을 공개합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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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번역가 B: 바벨피쉬 K: 크로우(이상 독자) R: 사장님 S:수박(이상 편집부)
R: 이번 책 <나무바다 건너기>는 같은 크레인스뷰 3부작 중 하나인 <벌집과 키스하기>와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다. 이번 소설에서는 거대한 세계에 사는 왜소한 개인이지만 그 개인의 선택에 따라 세계의 질서, 운명이 변하게 된다. 열 살, 열일곱 살, 마흔일곱 살의 각각의 ‘나’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읽으면서 궁금했다.
C: 사실 나도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영미권 독자들의 리뷰에서도 그런 의견이 꽤 많았다. 재밌긴 재밌는데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다는 식의;;
R: <나무바다 건너기>는 캐럴의 최고작, 걸작으로 불리고, 확실한 sf로 분류되는 작품인데, 작품에 대한 감상은 어땠는지?
B: 초반은 미스터리 느낌으로 추리하는 재미가 느껴졌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좀 황당하고 특히 아스토펠이 구슬을 던지는 부분에서는 영화<맨인블랙>이 떠오르며 왠지 배신감이 느껴졌다. 사람은 결국엔 신과 같은 존재에 의해 좌우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인 건가 싶어서.
K: 나도 초반은 상당히 재밌게 읽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뭘 말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S: 난 지금까지 나왔던 캐럴의 전작들(<웃음의 나라>, <벌집에 키스하기>)보다 <나무바다 건너기>가 훨씬 재밌던데, 내가 좀 이상한건가.(쓴웃음ㄱ-) 교정을 보느라 지금까지 두 번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보다 두 번째가 더 좋았다. 난 갑자기 외계인이 등장해도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고 그냥 음, 그렇구나 하면서 읽었는데......어쨌든, 난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자신’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 과거는 부끄럽고 미숙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이 인상적이었다.
R: 난 <나무바다 건너기>에서 지금의 프래니가 ‘일곱 살의 나’를 보는 장면과 자신이 열일곱 살일 때의 아버지를 만나 식당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캐럴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 하여튼 동서를 막론하고 부자관계는 서먹한 것 같다. 어쨌든 캐럴의 작품을 읽다보면 시지프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불가해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이럴 때 인간들은 어쩔 줄 모르며 수습해야 하는 - 계속 돌을 밀어 올리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인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B: 서사보다는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미국의 서브컬쳐를 보는 것이 오히려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마을이라는 공간적 설정, 단골식당 등 기본적 장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읽기 힘들 것 같다.
C: 캐럴은 꼭 마지막에는 착한 척을 하면서 끝내는 경향이 있다. 다음에 나올 크레인스뷰 3부작 중 하나인 <The marriage of sticks>의 여주인공은 바람을 피우는데, 그 불륜상대가 사고로 죽어버린다. 그 남자가 살아있었다면 태어났을 아이가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러니까 ‘죄의식’을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죄 짓지 말고 살자’가 메시지인가 싶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남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을 때가 있지 않나. 그때 생기는 죄책감은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글이 아닌가싶다.
S: 그러고 보니 <The marriage of sticks>가 먼전데, <나무바다 건너기>를 먼저 번역한 이유가 있나.
R: 사실 <벌집에 키스하기>가 잘 안 팔려서-_- 재밌는 걸 먼저 번역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무바다 건너기>를 먼저 하게 됐다. 하여튼 캐럴 작품은 일단 줄거리 요약도 잘 안 된다.
C: <The marriage of sticks>의 여주인공은 계속해서 삶을 살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 일종의 슈퍼히어로다. 그 능력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양도(?)할 수 있다. 이런 설정을 보면 <The marriage of sticks>는 슈퍼히어로물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R: <나무바다 건너기>에 나오는 선문답 - "나무로 된 바다에서 어떻게 노를 젓죠?“ -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나? 왜 이런 선문답이 등장한 걸까?
C: 이 책은 ‘왜’라는 질문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왜 하필 맥케이브가 선택되는지도 설명할 수 없지 않는가.
S: 책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해 각각의 다른 ‘과거의 나’들은 각자 다른 답안을 내놓고, 전부 나름의 의미, 이유가 있다. 해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과거의 나’들이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C: 시간이동을 하면서 맥케이브가 플룬에게 존댓말을 했다가 반말을 했다가 하는데 혹시 읽으면서 이상하지는 않았나?
K: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B: 처음 만났으니까 우선 존댓말을 쓰고 나중엔 구면이기도 하고, 처음 봤을 때 인상도 안 좋았으니까 반말도 하고 욕도 한 거라고 생각했다.
C: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혹시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면 한국어에서 존댓말이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B: 계속 다른 시절의 자신을 만나는 것이 책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C: 나는 30대 후반인데 가끔 20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그들이 날 보면서 인생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과거엔 알고 있었던 것을 까먹기도 하고, 사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상상 자체가 이 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띄는 것 같다.
B: 열린 구조를 가진 소설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호응이 좀 낮은 것 같다.
R: 그래서 결말이 확실한 일본소설이 잘 나가는 것 같다.
B: 이 소설의 경우엔 결말도 열려 있고, 해석의 여지가 많아 읽기 어려운 것 같다. 스스로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작가는 화두만 던져줄 뿐이다.
C: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대목이나 구절이 있었는지?
R: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B: 맥케이브가 열일곱 살일 때의 자신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엉망으로 살았구나’하고 느끼는 장면. 과거의 자신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또 열일곱 살의 맥케이브가 마흔 일곱 살의 맥케이브를 보면서 “너 지금 왜 이러고 사냐”고 빈정대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한심하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K: 나도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수많은 ‘나’들이 열 살의 ‘나’의 시체를 수습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S: 나도 아버지 만나는 장면이 좋았고, 마그다가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맥케이브가 폴린에게 들려주는 말들이 좋았다. 절대 평범해지지 말라는......
C: 나도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사는 것과 평범하게 사는 것을 헷갈리는 것 같다.
B: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을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다.
C: 그 대화 장면은 호칭, 존댓말 때문에 특히 번역하기가 어려웠다.
................이 뒤엔 뭐 얼레벌레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구요-;;뒷마무리가 부실한 건 전적으로 저의 능력부족이랄까;;어쨌든 재밌게 읽으셨죠?!!(급하게 수습) 다음 독자교정 후 방담은 좀 더 정리된 모습으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며 전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