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 없고 유흥가 없는 우리 집 앞 한적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심야 마지막 회 공포영화를 혼자 보러 갔다고 하면 나오는 반응은 다양하다. “와 무서웠겠다.” “혹시 다른 손님 없이 너 혼자 봤어?” “혼자 보면 안 무서워?” “나도 좀 데려가지.” “마지막 회면 몇 시야?”
하지만 두 번 세 번 다섯 번 반복되면 그 다양한 반응은 점점 줄어들어 한 곳으로 수렴된다.
“너 요즘 가정불화 있냐?”
“그거 정신건강에 문제 있어.”
“요즘 대체 왜 그래? 뭐가 문제야?”
게다가 호러 소설을 탐독하고 DVD를 사 모은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 더 이상 본인은 상대하지 않고 배우자를 위로하기 시작한다.
“쯧쯧, 힘드시겠수.”
어딘가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 애호가를 넘어서서 매니아의 길에 접어든다는 것, 그것은 굉장한 사회적 저항을 뚫고 지나가는 험난한 과정이다. 서태지의 절묘한 표현처럼, 울트라 매니아는 <울트라맨이야>를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각광받는, 남들의 박수 혹은 은근한 부추김을 받는 매니아들도 많다. 클래식음악 매니아는 고상하고, 파스타 매니아는 뭔가 있어 보이며,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 같은 구두 매니아는 질시와 질투의 대상이 될지언정 인간적 동정을 받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바람직한 매니아는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공부에 홀딱 빠져든 특이한 종류의 사람들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상을 받은 비정상적인 골수 매니아들은 남들의 칭송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치킨매니아라는 업체 이름도 당당히 영업중이고, 참치 애호가들의 모임인 참치매니아도 떳떳하기만 하다.
하지만 소설 매니아에게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얼마 전 종로 영풍문고 소설 매장을 서성거리는데 젊은 여자 두 명이 주변을 지나갔다. 청바지 입은 쪽이 미스터리 류의 책들을 뒤적이자 청록색 원피스 차림의 친구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너 제발 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책을 좀 읽어. 맨날 사람 죽고 무슨 범죄 일어나고 하는 거만 보니까 네가 지금같이 된 거야. 밝고 아름답고 화사한 것들도 많잖아.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책도 얼마나 많은데.”
원피스 녀는 그다지 책을 많이 읽는 인상은 아니었다. 그 말에 청바지 녀는 힘없이 비실비실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언가에 빠져든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듯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아는 추리소설 마니아 윤 모씨는 여자 친구 부모님에게 인사를 갔는데,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추리소설을 탐독합니다, 라고 했더니 미래의 장인이 복잡한 얼굴 표정을 애써 감추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한때는 그런 것도 다 좋아할 수 있지.” 또다른 애호가 김 모씨는 부모에게 이런 말도 들었다고 한다. “너 이 다음에 커서 사람 죽일래?”
우리나라 각종 장르문학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미스터리 분야가 이럴진대, SF나 판타지 류의 애독자들의 은근한 스트레스는 훨씬 심할 수 밖에 없다. 뭘 읽고 있나 싶어 책을 들춰본 친구들이 외계 행성 어쩌구 하는 표지 설명을 보고 “에이, 씨, 뭐야” 하면서 그냥 휙 가버린다거나, 내딴엔 뭔가 기발하고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너 SF를 너무 많이 읽어서 그렇구나, 쯧쯧.” 이라는 응답이 돌아온다. 전철 안에서 무의식중에 책 표지를 가리고 책을 읽는 자신을 발견한다. 순진한 소리라도 한 마디 하면 “야, 니가 세상 물정 모르는구나”라는 통상적인 구박 대신 “그러니까 그런 이상한 소설 좀 그만 읽고 현실을 직시하란 말이야”라는 때아닌 훈시를 듣는다. 그 하나하나는 작은 것들이지만, 크기는 작아도 깊은 상처를 영혼에 남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독서했음을 아주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스티븐 킹이나 아시모프의 작품을 보고 “에이 씨 뭐야”하면서 가버릴 그 대단한 배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오히려 반대로 <닭고기 수프>를 손에 들고 다니는 사람과 같이 다니기를 쪽팔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요컨대, 세상에는 당당하게 내세우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담론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은 기능주의적 사고나 발언의 양식이다. 책은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기 ‘위하여’ 읽는 것이고, 등산은 건강을 증진시키고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며, 여행도 모름지기 차분히 정리해서 더 열심히 살기 ‘위하여’ 가는 것이 옳다고 한다. 심지어는 결혼조차도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특정 장르의 책에 빠져 있는 것도, 산에 미쳐 히말라야에 원정 가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공허함에 객지를 떠도는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을 내버리는 행위도, 전부 정신 나간 짓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이 이것이다. “정신 좀 차려라.”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자칫하다가는 그 화자의 편협성과 오만함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언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식에게, 동생에게, 친구에게. 심지어는 신문에 버젓이 “빨리 정신을 차리기 바란다”라고 써 놓는 저질 사설도 있다.
하지만 기능주의자들은 이 점을 알아야 한다. 탐닉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멋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넌 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을 읽어야 해”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조용히 속으로 “너보단 내가 훨씬 삶을 어렵고 치열하게 살고 있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방이 이성이라면 십중팔구 “참 매력도 없다”라고 생각할 것도 뻔하다. 건전과 긍정의 선풍기 바람을 내뿜는 사람들은 그 바람으로 상대방을 멀리 밀어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영풍문고에서의 원피스 녀를 바라보며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물론 그러지는 않았다. 나에게 그럴 권리는 없다. 다만 그렇게 계속 세상을 밝고 화사하게, 하지만 외롭게, 살아가라는 기원과 함께 돌아섰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