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월간 판타스틱에 쓴 글을 올립니다.. 책과는 저언혀 관련되지 않은 내용입니다만ㅎㅎ )


일요일 등산 길, 산길을 걷는데 긴꼬리원숭이가 나무틈새로 얼굴을 삐죽 내밀고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거나, 계곡에서 홍대머리황새와 하마가 노닐고, 월러비와 그물무늬 왕뱀이 튀어나와 깜짝깜짝 놀란다면?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곳은 더 이상 이 지구상 위에 존재하지 않는, 리빙스턴 탐험기 같은 책 안에나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이다.

하지만, 변기에 앉아 있는데 눈앞에 기린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날카로운 뿔의 워터벅이 몇 마리씩 풀을 뜯고 있는 비현실적 화장실 체험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그 동물은 유리창 저편에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비현실의 세계, 동물원

동물원은 비현실의 세계이다. 입장료 몇 천원을 내고 들어가는 순간 전혀 낯선 비현실이 펼쳐진다. 거대한 코끼리, 소풍 나온 가족, 떠들거나 울어젖히는 아이들, 김치- 참치- 치즈-와 함께 찰칵이는 카메라 셔터 소리(혹은 삐빅~ 디카 소리),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 양산을 펴들고 햇볕을 피하는 중년의 여인들, 책이나 영상이 아닌 눈앞에 존재하는 얼룩말 하마 악어 아나콘다.....

“저 코끼리 오줌 싸는 거 좀 봐라~”
“우와~~”

그 공간에 들어가면, ‘아니 김사장님 왜 그러시는 거에요, 약속하고 다르잖아요’라거나 ‘내가 오만 주를 질렀는데 저쪽에서 계속 따라오잖아, 만만치 않은 놈들이야’ ‘저 이력서는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같은 전화 통화는 들을 수 없다. 모두가 즐겁거나 혹은 즐거운 척이라도 하는, 아무리 싸구려 음식을 비싸게 팔아도 정색을 하고 항의할 수 없는, 일상을 벗어난 어떤 분위기가 지배한다.

“저 기린이 꼭 너 같다.”
“왜애? 속눈썹이 길어서?”
“아니 다리 길어서 어기적거리는 게.”
“뭐야. 그거 칭찬이야 욕이야?”

이런 낯간지러운 대화를 남들 다 듣는 곳에서 떠들어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 그러다 잠시 후 아기 기린이 뛰기 시작하면 “와~ 넘넘 우아하고 멋지다”라고 입을 모아 경탄하며 조금 전까지의 대화를 까맣게 다 잊어버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곳.

동물원은 경이(wonder)를 전해준다. 생경한 동물들은 그 존재 자체가 경이로움이다. 게다가 물개쇼 돌고래쇼 홍학쇼 등등, 자연 상태에서조차 일어나지 않는 동물의 행위들로 관람객의 비현실성을 증폭시키려 한다.

동물원이 아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공간인 까닭이 그것이다. 동물원은 비현실의 세계이기에, 현실의 세상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 비현실성이 더더욱 증폭된다. 너무 어린 유아를 데리고 동물원에 첫나들이를 나왔다가, 아이가 사자엔 관심 없고 발밑을 지나가는 개미나 식당의 날파리에 훨씬 관심을 보이던 당황스러운 경험은 필자 말고도 꽤 많은 부모들이 했으리라. 우리나라의 동물원은 대부분 놀이기구와 함께 배치되어 어린이를 위한 공간의 성격을 가지지만, 세계 유수의 동물원들은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되어 동물원을 찾아야 동물원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엄중한 공간, 동물원

그런가하면 동물원은 냉엄한 세계이기도 하다. 촘촘한 이중삼중의 쇠창살 안에 갖혀 있는 코요테, 하늘을 지배해야 마땅하지만 손바닥만한 콘크리트 우리 안에 갇혀 낮잠 밖에 잘 게 없는 독수리, 왕관처럼 머리 위에 얹혀 있어야 하지만 톱으로 썰려 밑둥밖에 남지 않은 엘크 뿔, 한 시간만 앉아 있어보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곳에서 매일매일을 보내는 원숭이..... 동물원은 인간의 자연 ‘정복’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전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는 일 없이 어슬렁거리다 먹기만 하는 동물들과, 역시 하는 일 없이 어슬렁거리다 먹어대는 인간들이 어우러지는 곳.
“야, 먹는다, 먹는다!”

“먹을 거 주지 말라고 써 있잖아!”
“아빠, 하나만 더 주면 안 돼? 쟤가 먹고 싶다고 손 내밀잖아.”
“안 돼! 원숭이 배탈 난단 말이야.”

우리는 모두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어떤 숭고하거나 세속적인 이상을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물원에 가면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삶의 목적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거기에선 인간도 국외자가 아니다. 먹고 싸는 존재. 동물 구경하는 인간은 동물을 구경하다 나면 전시된 동물과 묘한 일체감을 맛본다. 서글픈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굳이 서글프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근대 동물원의 효시 중 하나였던 독일 함부르크의 하겐베크 동물원은 철책 대신 깊은 해자를 만들어 맹수를 관람객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전시 방법의 원형을 만든 곳이기도 하지만, 한때는 그린란드와 태평양군도의 원주민까지 데려와 동물과 함께 전시하기도 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재현해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현대사회에 더 이상 이런 동물원은 없지만, 동물원을 가만히 보다 보면 어딘가 서글퍼지는 데가 있다. 동물우리 바깥에서 감상의 시선을 던지는 인간도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묘한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이다.


비오는 날의 동물원

신기한 동물에 대한 경이로움, 인간의 폭력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서글픈 감상까지, 동물원에는 그 모든 것이 교차한다. 그래서 동물원은 비오는 날도 좋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래서 조금은 추운 어느 늦가을, 아무도 찾지 않는 동물원을 가보라. 묵묵히 비를 맞고 견디는 기린과 얼룩말과 산양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양과 꽃사슴과 낙타를 배경으로 화사한 사진을 찍지는 못하지만, 텅 빈 동물원 길이 주는 쓸쓸함은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다. 그 호젓함은 역시 과천 서울대공원이 제일이다.

그러니 누군가 비오는 날 동물원에 간다고 (필자 주변의 모 씨처럼) 이상한 취급하지 마시길.
동물원에 한 가지만 보러 가는 것도 좋다. 많은 이들은 모처럼 찾은 동물원, 끝장을 내리라는 모진 마음을 먹고 샅샅이 돌기 시작한다. 곤충에서 코끼리까지, 물개에서 북극곰까지, 도롱뇽에서 사자까지, 구관조에서 치타까지. 그리고 저녁 해가 너울너울 지기 시작할 때가 되면 지친 다리를 이끌고 정문을 나선다. 아, 오늘 구경 잘했다, 라고 자평하며.

하지만 그것은 동물원의 재미를 스스로 반감시키는 것이다.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의 귀여운 펭귄을 찾아가 보고 그냥 온다거나, 과천 서울대공원의 기품 당당한 엘크를 잠시 경탄하다 온다거나, 대전동물원의 남미물개가 물살 가르는 모습을 한 시간쯤 구경하고 온다거나, 하는 탐방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이다. 어차피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의 공간, 그곳에서까지 이를 악물고 본전 뽑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필자의 독선적인 취향에 의하여 선정된) 아래와 같은 것들을 여유롭게 한 번 구경하고 오자. 바야흐로 가을, 일 년 중 책 읽는 사람이 가장 적다는 가을, 꼼짝하기 싫은 찜통 더위에 휴가를 다 써버린 것을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가을, 연인과 가족과 손잡고 동물원 나들이 길이 기대되는 가을이다.



뛰는 기린
꼭 한 번 볼 가치가 있다. 기린이 뛰어가는 모습은 아무리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봤더라도 직접 보지 않으면 그 우아함을 알 수 없다. 다리도 길고 키도 껑충 큰 기린의 달리기는, 그 동작의 유연성과 함께 의외로 그다지 빠르지 않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야구로 치면 직구와 비슷해 보이지만 속도가 느린 체인지업이라고 할까. 어쨌든 우리 안에서 할일없이 무사태평한 기린이 뛰는 모습을 보려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그 투자의 가치가 있다.

대전동물원 마운틴사파리
인파에 인파가 밀어닥치는 에버랜드의 사파리보다는 대전동물원 사파리가 좀 더 여유 있어서 좋다. 그 중에서도 역시 인공암벽을 설치해놓고 산양, 엘크, 사슴 등을 풀어놓은 마운틴 사파리가 독특하다. 마운틴사파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한 바퀴 돌며 동물에게 먹이도 줄 수 있는데, 별 거 아닌 시시한 거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의외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가 있다.

서울대공원 호랑이 먹이주기
식사 때 시베리아 호랑이에게 가 보면 닭고기(슈퍼에서 파는 껍질벗긴 생닭)를 던져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울대공원은 국내 최대의 동물원답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중인데, 호랑이의 경우는 먹이주는 시간이 가장 인기이다. 깊은 해자로 격리된 너머에서 사육사가 닭을 던져주는데, 호랑이들이 가만히 노려보다가 날아오는 먹이를 척척 받아먹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니, 사실은 호랑이 입에 정확히 던져주는 사육사의 솜씨가 호랑이보다는 훨씬 더 인상적이다. 공 던지기야 야구 선수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닭을 이렇게 잘 던지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아마 없을 것이다.

하마 배변
하마 우리 앞에서 한참을 기다려 보시라. 하마가 대변보는 장면은 정말이지 일견의 가치가 있다. 돼지꼬리처럼 짧은 꼬리가 화르르르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며, 뿜어져 나오는 변을 그 맹렬한 속도로 사방에 날려 버린다. 후다다다닥, 이라고 표현하면 가장 근접할 것이다. 육중하고 둔하고 뚱하고 멍한 하마의 그 촐랑거리는 배변 장면은 그야말로 어이없음이 아닐 수 없다. 변 보기를 기다리는 와중에 하마가 슈렉처럼 생긴 귀를 뱅글뱅글 돌리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무게잡는 하마의 평소 분위기와는 사백 퍼센트 어울리지 않는 방정맞은 행동거지로, 인생의 비애를 느낄 수 있다.

서울대공원 화장실
배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화장실은 과천 서울대공원 제 1 아프리카관에 있는 화장실이다. 일부러라도 참았다가 이 화장실을 이용해봄직하다.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변기, 인생에 몇 번 만나기 쉽지 않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물체험 교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는 필자의 개인적 취향으로 망토원숭이가 가장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동물체험 교실에 데려가주는 것도 좋다. 최근 동물원들이 직접 동물을 만지고 먹이도 주고 하는 체험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이지만, 유치원생과 초등학생,그리고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추천할 만하다. 물론 살아있는 토끼를 만져보라고 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물개쇼에서 나쁜놈이 등장하면 우는 아이 정도로 확률이 적다. 

쥬쥬동물원 조류사육장
고양시에 위치한 사설 동물원인 쥬쥬동물원은 여러모로 할 말이 많은 동물원이다. 동물원의 ‘컨셉’ 자체가 먹이주기 체험을 중심으로 짜여 있고, 입장할 때부터 당근 오이 등으로 이루어진 동물 먹이를 사가지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저렇게 마구잡이로 먹여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어쨌든, 이 동물원에 가면 조류사육장을 꼭 방문해야 한다. 작고 예쁘고 알록달록한 새들이 날아다니는 공간에 가만히 서 있으면, (물론 콘크리트 건물 안이긴 하지만) 뭔가 신기한 체험 중이라는 착각이 절로 든다.

할로윈 스푸키 동물원
에버랜드에서 11월 초까지 운영하는, 한시적인 동물 전시관이다. 박쥐, 거미, 전갈 등 그다지 느낌이 좋지 않은 녀석들이 한 군데 모여 있다. 에버랜드 동물원의 백미는 북극곰인데, 다른 곳의 북극곰에 비해 이 친구는 한여름에도 활동적으로 노니는 등 관람객 친화적 북극곰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 하나로도 비싼 에버랜드를 찾아갈 가치가 있다. 어쨌거나 자그마한 테마 동물원, 바람직한 시도라 할 수 있다.

---------------------------------------------------------------------------

 

(박스기사) 한국의 동물원

우리나라에 동물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8년이었다. 일본이 고종을 억지로 폐위시키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것이 1907년이었다. 일제는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에서 지내다 옮겨온) 경운궁에 그대로 머물게 하고 창덕궁에 순종을 기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 위치한 창경궁에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 하에 동물울 가져다 놓았다. 곰, 호랑이, 사슴, 공작, 학, 타조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궁궐과 누각이 마구 헐리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한 순종황제가 공사를 중지하라는 어명을 내렸으나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11년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되었고, 한 때 황제가 살던 신성한 공간은 나들이와 구경거리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이후 1983년에 폐장될 때까지 창경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물원이었다.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모처럼 창경원에 놀러가서 솜사탕 먹던 기억이 생생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현재 국내 최고의 동물원은 역시 과천 서울대공원이다. 348종 2,975수의 동물을 관리하고 있고 규모 면에서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간다고 한다. 용인의 에버랜드 동물원,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물원, 고양시의 쥬쥬 동물원 등이 수도권에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동물원이다. 인천대공원에 어린이동물원이 있지만 개, 닭, 돼지, 몰모트, 토끼 등등을 포함 42종에 불과해서 일부러 찾게 되지는 않는 곳이다. 71년 이후 서울 남산에도 소규모의 동물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철거되어 녹지로 바뀌었다. (남산 동물원의 백미는 역시 원숭이였다. 필자와 같은 원숭이 마니아들에겐 원숭이가 주는 마음의 평정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나름대로 아쉬운 일이다)

2004년 개장한 대전동물원은 시간을 내서 찾을 만하다. 역시 휴일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에버랜드나 서울대공원에 비할 바는 아니니 호젓한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또 볼거리 부족으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주동물원, 부산 어린이대공원 성지곡동물원이 있고(후자는 내년 야심찬 재개장을 준비중이다), 진주 진양호공원 동물원,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 부산 동래금강 동물원, 광주 사직공원 동물원 등 지역 대도시마다 동물원이 하나씩은 위치하고 있다.

/최내현  (월간 판타스틱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