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킴은 글을 읽게 된 후로 거의 매일 밤 그랬듯이, 코펜하겐의 앙글레테르 호텔에서도 침대맡 탁자에 책을 펼친 채 엎어 놓았다. 다음날 오후 방에 돌아와 보니 책이 닫혀 있고, 책갈피로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청소부가 서명한 메모가 표지 위에 놓여 있었다.

          손님, 책을 절대 그렇게 다루지 마세요

오빠는 어리벙벙했다. 학교 기숙사에서도 나무 노에 맞을 각오를 하고 매일 밤 소등 뒤에 이불 속에 들어가 손전등 빛으로 책을 읽을 정도로 헌신적인 독자인 오빠가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중략) 그러나 덴마크의 호텔 청소부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어머니만 빼면 모두 광포한 책 학대자라는 죄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 2001

<서재 결혼 시키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것 없는 애정으로 똘똘 뭉친 책인데, 그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바로 '너덜너덜한 겉모습'입니다. 자신에겐 책의 말은 거룩하지만, 말을 담고 있는 종이, 천 등등의 것들은 단순한 그릇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앤 패디먼.

저는 패디먼 일가처럼 극단적(?)이진 않지만 책을 험하게 다루는 편입니다. 애초에 꼼꼼함이 없어 이리저리 표지가 깨끗한지 확인하고 사는 타입도 아니고요.


사쿠라바 가즈키 <내 남자>.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팬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밑도 끝도 없는 악필이란 점일지도(근데 혹시 이거 미리니름?).

책을 구겨서 읽거나 책 귀퉁이를 접어놓는 건 당연하고, 좋은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죽죽 긋고, 가끔 코멘트도 답니다.(코멘트란 게 거의 잡담)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은 고치거나 지워 버리기도 하고요. 사진처럼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에 뭔가 흔적을 남기는 건 일종의 '리뷰 쓰기 귀찮음'에 대한 의사표시입니다.

너무 읽어서 벌어진 책이며, 손때가 묻은 책은 제 자랑입니다.

그런 주제에 책을 사면 습관적으로 책비닐을 전부 씌워서 반짝반짝한 표지를 유지하죠.
처음엔 만화책 같이 그림 위주의 표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는데, 이젠 맨표지의 감촉이 부담스러워서 씌웁니다.
책비닐은 롤로 사서 쓰고 있고요.(예전엔 대여점에 부탁해야 했는데,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어서 좋아요.)

물론 빌린 책은 깨끗하게 봅니다. 맨표지가 부담스러워서 양해를 구하고 책비닐을 씌우거나, 아니면 책커버를 이용하고, 될 수 있으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메모도 책이 아니라 메모지에 한다구요!(아, 칭찬해 주세요;ㅁ;)
타인의 책을 더럽게 보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책을 더럽히는 것도요. 음, 뭐랄까 결국 배타적인 이기심의 발현일까-_- 패디먼 같은 유연한(?) 생각을 따라잡으려면 저는 아직 많이 멀었습니다.


흠흠. 두서없지만 결론.
책을 땅바닥에 굴리든 진공 포장을 해 놓든, 모든 게 애정의 표현인 이상 어느 쪽이 옳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를 다 똑같이 사랑할 순 없듯이, 책에 따라 대우를 다르게 하기도 하잖아요?

제 지인 중 한 명은 'OO는 아끼는 책이라 언제나 읽을 수 있도록 해 놓았고, XX도 아끼는 책이라 해지지 않게 비닐 포장(커버를 씌우는 게 아니라 밀봉)을 해 놓았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마음 백 번 이해해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가족들에게 창고니, 짐승 우리로 불리며 통제 구역으로 지정된
제 방의 방문을 열고 가장 먼저 발에 차이는 책을 읽어 볼까 합니다.

-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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