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런 부탁을 하진 않았지만, 지난해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재미있었던'이 아니라) 책을 하나만 대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조현일 씨가 쓴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을 꼽겠다. 가라타니 고진의 논문 <근대문학의 종언>이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잘못’ 읽히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는 이 책에는, “현대 일본문학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킴으로 한국문학의 우월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우리 문단의 분위기랄까 하는 부분이 너무 잘 드러나 있어 읽으면서 꽤나 놀랐다.
왜 이 얘기를 꺼냈냐 하면, 그 책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을 대표하는 상업출판사인 고단샤의 경우, 1988년 <고단샤문예문고>를 창간하여 판매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일본근대문학의 유산을 총망라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돈만 잡아먹는 기획이다. 그런데 소위 문화국가라는 우리의 경우, 이 시리즈에 버금가는 기획물을 갖고 있기는커녕,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된 전집조차 없는 작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대형출판사들이 나서서 주요작가의 경우 몇 번이고 전집을 재출간하고 있다.”
물론 우리 나라도 대형 출판사들의 경우, 이른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전집은 몇 번이고 재출간하여 잔뜩 가지고 있지만 ㅎㅎ... 아니아니 역시 쓸데없는 비아냥거림은 삼가도록 하자. 여튼 문학사에서 중요한 취급을 받는 작가와 작품은 많지만, 정작 제대로 된 전집이 없는 한국 문학의 현실은 전술한 바대로 그간 여러 논자들에 의해 지적돼 왔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을 만드는 지식('지만지'는 ‘지만지 고전천줄’이라는 동서양 고전들의 요약본을 내며 관심과 질타를 동시에 받기도 했던 출판사다) 출판사가 펴낸 <한국 근현대문학 총서>는, 선정된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발표 당시 표기 형태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취지 역시 상당히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에 출간되는 총서에는, 최초의 전문 탐정소설가로 평가되는 김내성의 『마인』과 1940년 일본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김사량의 작품집 등도 포함되어 있다. 당장 전질을 구입하기는 돈이 없어 곤란하지만, 관심이 가는 몇 권은 사 봐도 좋을 듯싶어 목록을 갈무리해 두었다. 헌데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기사가 눈에 띤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통일부의 출간 검증 절차가 필요한 황건의 『개마고원』은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소식이 소박하게나마 세상에 알려진 건, 해당 출판사의 편집자라고 밝힌 이가 <아고라>에 올린 글 덕분이다. 내용을 읽어 보니, 이번 총서에 포함돼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소설가 황건의 『개마고원』 출간에 대해 통일부가 제동을 걸고 조건부 승인 방침을 밝힌 모양이다. 그 조건이란 게 대략 다음과 같다.
‘김일성’이 들어간 문장(“그사이에 평양에는 북조선 인민 위원회가 창설되고 김일성 장군이 위원장으로 추대되였다.”) 삭제할 것, 남한군이나 미군을 ‘원쑤’라고 표기한 대목(“나는 조국의 이 엄중한 날에 원쑤에 대한 싸움보다도 내 개인을 위한”) 삭제할 것,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들어간 문단(“피난 가다 숨은 두 녀자를 미국 놈들이 발견하고 겁탈하려 끌어냈던 것이며”) 전체를 들어낼 것. 하지만 『개마고원』은 이미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으며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는 책일 뿐만 아니라 20여 년 전에는 국내 다른 출판사에서 원본 그대로 출간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아고라>에 올라온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황건이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개마고원』이라는 책이 출간돼도 적극적으로 구입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신경숙의 소설이 잘 팔리고 황석영의 소설이 엄청나게 팔리는 것이 “한국 문학의 부활이고 축복”이라면, 황건의 『개마고원』이 당시 표기 그대로 출간되는 것 역시 한국 문학의 입장에서 볼 때 또 다른 의미의 부활이자 축복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허나 지만지 출판사는 이미 제작까지 마친 『개마고원』의 출간을 포기했다고 한다.
덧) <시사in>에 보낸 글을 약간 고쳤음. 아래 사진 출처는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