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책값을 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 즉 원가를 계산하고 대략의 판매량을 예측하여 출판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정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서점에 나가서 출간하려는 책과 비슷한 판형과 분량(페이지 수)의 책들을 일별한 후 그 책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겠다 싶은 범위에서 정하는 방법.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일까. 전자가 합리적으로 보이고 후자는 다소 덜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출판사는 어떤 방법으로 책값을 정할까. 전자일까? 물론 전자를 선호하는 출판사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후자를 선호하는 출판사들이 전자를 선호하는 많은 출판사들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
왜냐. 의외로 많은 독자들이 책의 분량을 기준으로 놓고 싸다거나 비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결과 책의 분량, 다시 말해 몇 페이지나 되느냐에 따라 책값이 매겨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돼 버린 것이다. 아니, 그게 왜 문제인가. 분량이 많으면 가격이 비싸고 분량이 적으면 가격이 싼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송구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거다. 책값을 결정하는 요인은 용지나 잉크 외에도 많다. 스타 작가와 신인 작가의 인세가 다르고, 원저작료와 번역료가 다르다. 디자인 비용이 다르고 책에 알맞은 용지의 질에 따른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요컨대, 단순히 얼마나 두껍냐 안 두껍냐 하는 문제로 결정한 사안은 아니라는 거다.
얘기가 약간 다른 길로 세지만, 내가 출판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놀란 대목은, 책을 만드는 주체 가운데 돈을 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저자, 역자, 디자이너는 엄청난 작업량을 감당하면서도 매번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고(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다음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고, 다음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면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인쇄소, 제본소, 출력소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거나(출판사가 망해서), 노동의 대가를 이상한 형태의 자본(6개월짜리 어음 같은)으로 지급받는다. 물론 일부 출판사들 때문에 제작처가 고생하기도 하지만(북스피어도 최근 4개월 동안은 제작처에 계속 어음 지급했다), 여기서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를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우리 나라의 출판 산업 전반에 걸친 정치한 분석이 뒤따라야 될 터이니 이건 생략하도록 하자.
결국 양질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되는 인프라가 좀 구축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 해결책의 하나로, 책값이 좀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겠다. 20,000부가량의 수요가 있는 책에 붙는 가격과 2,000부가량의 수요가 있는 책에 붙는 가격이 달라야 하고, 같은 400페이지라도 여러 가지 요인에 따른 원가가 고려된 가격을 출판사가 붙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자의 규모가 늘어나면 생산 원가는 낮아진다. 순수하게 이론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독자가 1천 명인 책은 1만 명인 책보다 가격이 몇 배가 비쌀 수밖에 없다. 책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게 여겨진다면, 출판사에서 ‘원가’의 몇 배나 되는 ‘폭리’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전에 그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소수의 권리도 무시하지 않고 비록 비싼 값으로나마 책으로 펴낸 출판사의 판단에 박수를 보낸다면 더 좋은 일이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는 책값을 올려서 공연한 욕을 먹기보다 차라리 출간을 포기하는 쪽을 택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책&, 2008. 12.)”
출판평론가 변정수 씨의 얘기다. 책값을 올려 공연한 욕을 먹기보다 차라리 출간을 포기하는 쪽, 이라는 대목에서 문득 가슴 한켠이 아리는 걸 느낀다. 출판업자로서도 독자로서도 충분히 공감한다. 원서를 읽을 수 없어 한국어판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리다 포기한 적이 있는 특정 장르의 팬 가운데는 아마 그 ‘공감’을 충분히 공감하는 이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반문이 가능하겠다. 아무리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출판사가 마음대로 정가를 정하게 내버려두면 장땡이라는 거냐. 당연히 아니다. 멀쩡한 원서를 서너 권씩 분책하고, 자간을 늘려 두껍게 만들어 마음대로 가격을 붙인 책에 대해 비난하지 말고 고분고분 말없이 책을 사라는 게 아니다. 독자들에게 부담을 지우자는 말이 아니다. 이 문제는 공공기관이 좀 나서줘야 한다는 얘기다.
“묘안이 없는 건 아니다. 600여 개의 공공도서관과 1만여 개의 학교 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1만 6000여 개의 도서관 중 20%인 2,120개의 도서관에서 미국처럼 정가의 2.5배에 해당하는 도서(Library Edition)를 구매한다면 출판사로서는 안정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는 것이다.(서울 경제, 2009. 2. 16)”
반드시 미국처럼은 아니더라도 초판이 도서관을 통해 소화가 되어 안정적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면 출판사도 합리적인 정가를 도출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문고본 같은 다양한 형태의 시도도 충분히 가능해질 거라 생각한다. 그에 따라 저자, 역자, 디자이너, 제작처 들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을 테고, 자연히 책의 퀄리티도 상승할 테고, 결국 독자들도 만족할 만한 형태의 책을 사볼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으로서는 그런 장밋빛 청사진은 고사하고라도, 신간이 나오면 좀 제때에 도서관에서 구경할 수 있기만 해도 좋을 판이긴 하다만. -.-;
덧) 방명록에 ‘인스’ 님께서 문고본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있는 생각 없는 생각을 이리저리 조합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장타로 읊조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와, 이 정도 쓰는 데도 지쳐 버렸어요. ㅎㅎ 딱히 결론도 없고 그다지 생산적인 해결책도 제시할 순 없지만, 쟤는 그런 식으로 사고하고 있군,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