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풍문고에서 지점을 또 새로 연다는 공문이 왔다. 그러고 보니 최근 몇 년 사이 교보문고, 서울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의 체인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때마다 따르는 우려의 목소리 가운데 하나, 중소 오프라인 서점의 고사. 하지만, “프랑서의 프낙서점이 전국에 약 90여 개, 미국의 반즈앤노블과 보더스 서점은 약 2,100개”인 현실에서 보듯 대형 서점의 지점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다.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우려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들렀다가 <해외 서점과 출판>이라는 책이 눈에 띄기에 제목만 보고 구입했다. 이른바 출판대국으로 알려진 나라들의 서점을 둘러본 저자가, 오늘 한국의 서점(과 출판)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대단히 흥미롭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두 번이나 읽게 되었다. 특히 중소 오프라인 서점의 고사가, 그저 인터넷 서점들의 약진과 대형 오프라인 서점의 체인화 때문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소매업종 중에서 서점만큼 외관에 신경 쓰지 않는 소매업종은 없을 것이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진열된 물품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전시된 상품이 고객의 눈을 끌려면 무궁무진한 노력이 필요하다. 매장이 작으면 작은 대로 어떻게 전시하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부분의 서점인들은 책 한 권 둘 공간도 없는데 전시공간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서점천장 끝까지 꽉 찬 책, 매대 책더미 밑에 숨겨져 있는 책은 책의 내용과 좋고 나쁨을 떠나서, 시장에 나온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의심하게 한다. 좋은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사는 것이지 알지 못하고 우연히 살 수는 없다.”
맞는 말이다. 작년쯤인가. 샌프란시스코에 들렀을 때 몇 군데 중소규모의 서점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서점이라기보다는 갤러리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책들이 마치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진열되어 있다든지, 그 작은 책방 안에 푹신한 소파를 갖다놓고 독자들이 쾌적하게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든지, 곳곳에 북맵이라고 할까 자신들이 직접 작성한 짧은 책 소개 글이 여기저기 있는 풍경 등등. 분명 그곳들도 동네 책방이었는데, 우리처럼 통로 곳곳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저자는, 출판 선진국의 동네 책방과 우리의 동네 책방 모습이 그처럼 다른 이유를 서점과 관련한 교육 인프라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서점 꾸미기는 서점 시작할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아예 서점을 꾸민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서점인들이 많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것이 서점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출판대국이라고 하는 (한국)에 서점인을 위한 정기적인 강좌 하나 없으니까 이와 같이 서점에 관한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가제와 관련해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나라의 정가제는 약간 기형적으로 변화해 왔다. 그에 따라 인터넷 서점은 현재 1년 6개월에 지난 도서에 대해 무한정 할인이 가능해졌다. 물론 이론적으로야 중소 오프라인 서점도 1년 6개월이 지난 도서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할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소 오프라인 서점이 인터넷 서점처럼 할인을 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는 책의 공급률과 중소 오프라인 서점에 들어가는 책의 공급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만 놓고 보면, 중소 오프라인 서점의 구제 방안은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온오프 할 것 없이 서점의 할인 판매 자체를 없애는 방법이다. 허나 그렇다고 할인 자체를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가령,
“독일에서는 정가제가 지켜지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할인도 가능하게 해 놓았다. 할인을 제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팔리지 않는 상태로 있는 책이나 또는 반품된 책들을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출판사의 현금유동성을 좋게 하고 창고 부담을 줄인다. 이러한 방식은 또 다른 중요한 장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온전한 책을 폐지로 만들지 않음으로써 환경보호와 자원절약에도 기여하고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방법이 된다는 것”
과 같은 긍정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 서점처럼 중소 오프라인 서점도 할인판매가 가능한 요건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 또한 현재의 유통 구조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하냐면 유통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한 주체가 그걸 허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형 출판사들과 관련이 좀 있는데, 내가 함부로 얘기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그냥 두 권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길게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메이저 출판사들은) 종수와 부수를 늘려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그 틀을 영원히 정착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실제 도매 기능이 축소되고 초대형출판사가 유통기능까지 점유했을 때 서점들은 다양한 출판사의 책을 받지 못하고 힘의 논리에 의해 소수 대형출판사의 책만을 받는 구조로 진행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나라와 같은 도매유통망이 불안한 구조에서는 초대형 출판사가 유통망을 주도할 수 있다. 특히 미국과 프랑스의 에에서 보듯이 중소출판사와 중소서점의 기능이 현저하게 약화될 것이고 중대형 서점에 매출 상위 30대 출판사의 책만이 입고되어 그 외 출판사의 책들은 서점에 진입하기도 힘들게 된다. 초대형 출판사들은 서점과의 거래조건을 까다롭게 하고 위탁거래를 점차 현금거래로 전화시켜 나가려고 할 것이다. 아동물 전집과 학습지로 출판시장을 거의 독점해온 웅진싱크빅, 대교, 두산동아, 교원이 단행본 라트를 강화했다. 이러한 출판사들은 총판체제를 갖추고 있어서 대리점을 통해 책을 유통시키고 서점과는 현금거래를 원칙으로 하거나 또는 보증금을 받는 방법으로 안정성을 확보한다. 그러면 서점이 짊어져야 할 위험 부담률은 커지고 서점은 더욱 더 운영하기 열악한 조건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우리의 경우, 책 내용이 좋아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아니라 자본의 힘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는 중소 출판사의 경우 이런 마케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본에서 이런 방식은 불가능하다. 이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몇몇 대형 출판사가 베스트셀러를 독점하고 있는 우리와 달리, 일본의 경우 낯선 이름의 중소출판사의 책이 심심치 않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우리 메이저출판사들도 나름대로 변명을 한다. 모든 것은 인터넷서점 탓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그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주요 메이저급 출판사들이 애초에 책 공급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급을 했고 결국 한국출판시정의 왜곡에 일조를 했다. 그럼 왜 그들은 그런 식의 결정을 내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출판사에게는 할인시스템이 오히려 유리했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할인과 사은품이 적용되는 출판시스템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중소출판사이다. 역으로 보면 일본에서 책이 할인될 수 없는 것은 영향력 있는 대형출판사들이 할인시스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소 출판사들은 우리보다 나은 환경에서 책을 만들고 있으며, 동네마다 서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는 <해외 서점과 출판>에서, 후자는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 문학>에서 각각 인용하였다. 출판업자인 나는 백 퍼센트가 아니라 이백 퍼센트 공감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여튼, 되풀이하자면 부익부 빈익빈이다. 이건 비단 출판이나 서점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 전반, 나아가서 모든 산업이 겪는 문제이므로, 출판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봤자 달밤에 개 짖는 소리에 그칠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작은 출판사는 작은 출판사대로 작은 서점은 작은 서점 나름대로 알아서 생존하는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은가.
지금의 유통 패러다임을 흔들기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면, 배짱이 맞는 출판사들끼리의 연대나 중소 서점의 전문화가 아닐까 싶다. 가령 장르문학을 만드는 출판사끼리 모여서 신사협정을 맺고 인터넷 서점 규모의 할인이 가능한 소규모 오프라인 서점을 만든다면 어떨까. 반품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일본 출판 시장이 북오프 같은 새로운 유형의 최신 중고 서점을 활성화시킨 것처럼, 현재 독자를 꾸준히 늘려가고 있는 장르출판사들이 새로운 유형의 장르 전문 서점을 만든다는 얘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오프라인이니 만큼 독자들과 직접 만나 놀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할 수 있고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현하지 못하는 아기자기한 행사들도 얼마든지 준비할 수 있으리라.
실은, 그런 유형의 서점을 만들어 보자는 논의가 현재 진행중이다. 몇몇 장르 출판사들과 접촉한 결과 의외로 다들 해보자는 분위기여서, 빠르면 3월 중에 선을 보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다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순조로울 것 같지만은 않다. 독자들이 얼마나 호응할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오히려 더 힘이 난다. 이러한 어려움을 다 뚫고 장르 서점을 만든다면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전문 서점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 않겠나. 향후, 미스터리나 에스에프,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등의 특화된 서점들도 하나씩 생겨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고.
덧) 암튼,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번 달에 장르 전문 서점 소식을 듣게 되면, 개떼와 같은 호응을 부탁드린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