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와 선망은 때로는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질투란 본질적으로는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생기는 것이고, 선망이란 대단히 얻고 싶지만 도저히 얻어질 것 같지 않은 것을 실제로 가진 자에 대해 품는 감정이다. _시오노 나나미


난 6월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위령제를 비판한 칼럼 덕분에 HID(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명목으로 3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리고, ‘문근영 빨갱이’ 논란으로 군사평론가 지만원 씨로부터 3,000만원 상당의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을 당한 진중권 씨가 지난 25일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린 글이 화제다. 그는 “공안 분위기에 주눅이 든” 누리꾼들을 위해 “모욕죄와 명예훼손에 안 걸리고 글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겠다며 “공인이든 사인이든 남의 사생활에는 일단 관심을 끊”는 게 좋고 “사실을 적시해야 할 경우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을 인용”하여 글을 쓸 것을 주문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욕설이라 여겨지는 어법”을 사용하려면, 예를 들어 “야 이 닭대가리야”와 같은 경우 “가금류에 속하는 어느 조류의 두뇌”와 같은 식으로 문학적 풍자를 활용하라고 조언하여 네티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진보 신당 게시판에 뭔가 쓰기만 하면 싸그리몽땅 실시간으로 기사화되는 요즘 같은 때에, 심지어 공중파 버라이어티에서 “누구랑 닮았다”는 멘트가 개그가 되는 유명인에 대해 새삼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한다는 건 아마도 대단히 부질없는 짓이리라.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난 김에 개인적인 일화나 한 자락-.

잡지사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에 받았던 기라성 같은 필자들의 숱한 원고 가운데서도 지금껏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글이 딱 두 편 있다. 그중 하나는 고종석 씨의 글이다. 워낙 글 잘 쓰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내용의 훌륭함이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으리라. 내가 여전히 그 글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비문은 물론 오자와 탈자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띄어쓰기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는 말도 있거니와, 한 번이라도 누군가의 글을 편집해 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완벽한’ 글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진중권 씨의 글이다. 마찬가지로 고종석 씨의 글에 대해 거론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청탁한 주제에 부합하는, 무려 원고지 50매 분량의 글이 청탁한 지 이틀 만에 도착했다는 거다. 솔직히 경이로운 기분마저 들었다.

언젠가 박중훈 씨가, 자신이 한창 잘나가던 때는 충무로가 자기 얼굴만 쳐다보았다며,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술회한 적이 있는데, 요즘 진중권 씨를 보면 모든 언론이 진중권 씨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애매한 사안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논평을 하니까 말이다. 그게 분명 쉬운 일이 아닐 터(게다가 진보누리 때부터 지금까지), 대관절 언제 관련 자료들을 다 찾아보고 글을 쓰는 건지. 돌고래는 우뇌와 좌뇌를 교대로 잠들게 해서 자지 않는다고 하고 인간도 훈련하면 가능하다고 하던데, 혹시 진중권 씨는 돌고래와 비슷한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될 정도다.

여튼, 진중권 씨를 향한 ‘이런저런 얘기들’에는 대개 질투나 선망이 깔려 있는 듯하다. 가령 나의 경우는 선망이지만, 지만원 씨는 아마도 진중권 씨에게 질투가 났던 게 아닐까. ㅎㅎ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