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까지 소급하여 번역된 영미권 미스터리를 살펴보니, 장르적 설정에 매료된 독자군을 아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자향을 선호하는 비평가군의 찬사를 받았던 작가들의 작품이 여럿 눈에 띕니다(다분히 의도적이기도 합니다). 장르적 재미에 더해 풍부한 문학성이 뒷받침된 소설이니 그저 ‘좋은 소설’이라고 명명하면 될 터이지만, 오늘 제 임무가 임무이니 만큼 굳이 미스터리로 분류해 둡니다. 그러니 아래의 소개를 읽고 ‘이게 영미권 왜 미스터리야’ 라는 반감이 들더라도 부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줍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우리 나라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잘 안 팔리는 작가이기 때문에 아마 모르는 독자들도 꽤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아무튼 하이스미스와 비교해 볼 때 대부분의 작가(대중문학 순수문학을 불문하고)는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극찬할 만큼 대단한 미스터리 작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안 팔리는 이유라면, 짐작건대 다소 난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왜 이런 문장을 썼는지 모르고 지나가기 십상입니다. 세상에는 두 번이나 세 번쯤 읽은 후에야 “아, 그런가”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을 구사하는 미스터리 작가들이 있는데, 하이스미스가 바로 그중 한 명입니다. 2005년도에 민음사가 하이스미스 선집을 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새롭게
『완벽주의자』(2009/2)라는 단편집(이라기보다는 초단편)이 출간되었습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퓰리처 상, 포크너 문학상, 미국 비평가 협회상, 브람 스토커 상 등 유수의 문학상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흔히 다작(多作)가로 불립니다. 저는 3년쯤 전에 임지호 편집장이 권해준 『좀비』라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호러’ 소설을 읽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좀비』를 내 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도저히 팔 자신이 없어 포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출판사 편집자분이 있다면 검토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최근에 『멀베이니 가족』(2008/12)이라는 장편과
『소녀 수집하는 노인』(2009/2)이라는 단편집이 출간되었고, 특히 후자는 다섯 개의 단편이 모두 호러와 에스에프적 요소들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딱히 미스터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아까워서 소개해 봅니다. 지난 주에 『소녀 수집하는 노인』을 읽으면서 이 사람의 에세이집 『작가적 신념』(2005/2)을 구해보려고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녔으나 절판 상태여서 포기하였는데, 논현동으로 이사온 김에 산책 겸 근처에 있는 교보문고(강남점)에 들렀다가 우연찮게 발견하였습니다. 아직 세 권이 더 남아 있으니 서두르세요.
『폐허』(2008/4)라는 작품으로 이미 소개된 적이 있는 작가 스콧 스미스의 데뷔작
『심플 플랜』(2009/3)은 현재 예약판매중입니다. 추락한 비행기 안에 있던 돈을 발견한 세 명의 친구들이 그 돈을 훔치며 사건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폐허』의 경우 설정은 간단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상상하기 힘든 외부적 요소들이 연쇄적으로 개입하여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 『심플 플랜』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 ‘상상하기 힘든 외부적 요소’가 등장할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스콧 스미스의 작품을 읽는 재미입니다. 13년 동안 딱 두 편의 소설을 썼고, 처음 쓴 소설 『심플 플랜』이 대걸작의 반열에 오른데다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뭔가 대단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궁금하면 읽어보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2009/2)를 소개하기에 앞서, 고백해 둘 게 있습니다.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라는, 실로 발음하기조차 까다로운 이 작가에 대해 저는 전혀 모릅니다. 헌데 ‘이 달의 장르문학’ 회의 도중에 이 책은 반드시 소개해야 한다고 편집부가 종용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일단 그 자리에서는 아는 척을 해놓고, 회의를 마친 후 자리에 앉아 알라딘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헌데, 아아 이거 참 부끄러워지더군요. 책에 달린 독자들의 리뷰를 읽어보니 장르문학을 팔아 먹고사는 제가 이 사람을 모르는 건 거의 직무유기라고 해도 될 만큼 유명한 ‘북유럽의 추리작가’인 겁니다. 뭐 판매는 신통치 않아 보이긴 합니다만. 번역된 책은 바로 사 두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읽자고 마음먹었었지만(그래서 ‘3월의 장르문학’ 소개의 마지막 주자가 된 것이지만),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이미 읽으신 독자분이 있어서 댓글이라도 달아주신다면, 그때는 벽 잡고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덧) 연말정산을 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던 12월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봄이로군요. 제 나이 어언 서른 하고도 넷. 실은 개인적으로 큰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간 블로그에 통 글을 못 올렸습니다. 책도 거의 못 읽고 말이죠. 시사저널 시절부터 거의 2년 가까이 해오던 시사in 연재도 그만두었습니다(짤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으나^^;;). 아마 당분간은 계속 이런 상태일 듯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긴 하지만 조만간 여러분들께도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좋은 일이니까... 알게 되시면 다들 축복해 주시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