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진초록의 빛깔들이 온통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계절.
헌데 돌아가는 현실은 왜 이리 쓸쓸한지.
우울한 기분을 잠시 접고, ‘다시’ 씁니다. 

올 일월부터 오늘까지, 북스피어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나빠졌습니다. 가파르게 오른 환율은 내내 그 언저리를 맴돌았고, 새로 선보이는 작가들의 책이 잘 팔리지 않았고, 재고가 쌓여서 급기야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들 기운이 빠졌달까요. 덕분에 활기차야 할 홈페이지도 주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격려해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하지만 정작 고마움을 표현하는 길은 역시 좋은 책을 만드는 것, 팔리지 않는다고 징징대기 전에 잘 파는 것. 그런 일련의 활동들을 이 공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대로 보고하는 것이겠지요. 매번 그렇게 다짐하지만 잘 안 되네요. 게다가 워낙 소수정예이다 보니 마감 때가 되면 여유가 없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한 주, 그와 관련하여 몇 번의 회의가 있었습니다. 마침 신간의 마감이 끝났고, 앞으로 나올 신간(미야베 미유키, 마쓰모토 세이초, 반다인)들의 원고(는 죄다 마감이 지났건만)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회의에서는 모두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어요. 지금은, 서로를 다독이며(때로는 채근하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머쓱하고 새삼스러운 기분도 들지만, 그래서 ‘다시’입니다.

일단, 그것은 당분간 느슨하게나마 연재의 형태가 될 터인데 가령 저는, ‘출판’ 관련 도서의 리뷰와 출판계 소식을 단상 형태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동료들도 공부하고 생각한 바를 적되, 어떤 주제로 할지는 각자 첫 글을 쓰면서 소개할 예정입니다. 매월 5일, 15일, 25일에(그리고 이 주에 한 번 올리는 포스팅이 있습니다) 업데이트됩니다. 

굳이 이런 계획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뭐랄까 역시 이렇게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합의하여 ‘귀찮은데, 오늘은 그냥 쉴까(특히, 사장)’ 하는 기특한 마음들을 자꾸 먹기 때문입니다. 새해의 다이어리적 금연 기도와 같은 심정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군요. 여튼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인지 지켜봐 주시길. 그럼, 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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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서 제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교정은 온통 자격증 관련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도서관은 항상 만원이었다. 도서관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나는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옆 소파에 앉아 ‘시시한’ 소설 따위를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나는 몰랐다. 동기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교직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을. 외국어와 컴퓨터는 물론 들어본 적도 없는 분야의 자격증을 이미 여러 개 땄다는 것을. 내가 ‘시시한’ 소설이나 읽는 동안 그들은 ‘영양가 만점’의 실용서를 여러 권 독파했다는 것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하나.

뒤늦게, 그 무리에 끼고 싶어졌다. 서점에 나갔다. 각종 자격증 관련 책을 잔뜩 샀다. 유망하다는 분야는 한 권씩 다 샀다. 그 책들을 방구석에 처박아두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 무슨 정보사라니... 이렇게 재미없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내내 그런 고민뿐이었다. 그런 고민들을 잊기 위해 또 ‘시시한’ 소설을 읽었다.

“전문분야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다. 저자를 비롯해 디자이너, 인쇄소, 제책소, 도매상, 서점 등 전적으로 외부에 의존하는 존재다. 달리 말하면 편집자란 남의 덕에 먹고사는 직업이다.”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와시오 켄야)의 한 대목이다. ‘남의 덕에 먹고사는 직업’이라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아아 그런가.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나는 어느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전문분야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채용되었다. 그 이 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OO 좀 부탁드리겠습니다’였다.

이 책은 일본 굴지의 출판사 고단샤에서 삼십오 년 동안이나 편집자로 생활한 이가 쓴 회고록이자 출판편집 입문서이다.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몇 달쯤 전에 책장에서 발견하고, 한 챕터만 읽어야지 하다가 끝까지 읽고 말았다. 과문한 탓이겠지만 편집자의 실체를 이렇게까지 유쾌하게 서술한 책을 나는 보지 못했다.

스테레오타입한 설명 없이 구체적인 사항들을 겸손하고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겸손과 담백이 확고한 신념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돋보인다. 편집자 지망생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경력자라도 35년 베테랑의 경험을 추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어두면 손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무능한 편집자’인 나는 읽는 내내 감탄하고 말았다. 때때로 꾸중을 듣는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그럴 때는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모자란 내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편집자의 자질에 관해 거론한 부분이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에 걸쳐 여러 번 반복하며 저자가 특히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대목――.

“요즘 들어 편집자의 능력이 저하하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왜 그럴까? 그 배경에는 인간관계를 원활히 맺을 줄 모르는 부류가 늘고 있다는 이유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비록 자신은 무력하더라도 그 중심에 서는 것이 편집자다. 그래서 호감 가는 형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편집자에게 더욱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오늘밤 모든 바에서』 마무리 작업을 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나카지마 라모는 아직 국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데다 ‘일본’(소설이 강세인 딱 그만큼 일본 소설에 대한 선입견도 여전하다) 작가이기에 불안했다. 그렇다면 술 좋아하는 한국 작가의 추천사를 받도록 하자. 문학성도 있고 재미있는 소설이니 읽기만 한다면 누구든 고민 없이 써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받지 못했다. 갖다 붙이자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좁은 나의 인간관계 속에는 이 책의 추천사를 써 줄 ‘술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컸다. 돌이켜보면 나는 참 ‘유명’ 필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것은 역시 소극적인 성격 탓이다.

“그래서 편집자를 통해 인맥이 형성되곤 한다. 물론 그 인맥은 편집자의 정보원이기도 하지만 인맥이 구축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가 무언가를 창조할 수도 있다. 편집자는 시장 같다. 거기에 가면 새로운 발견이 있다. 재미있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거래가 오고 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 편집자는 때로 저자와 잡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만나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관계. 대화가 통하는 관계.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난 사이므로 장래에 큰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교제 자체가 즐겁기에 오래 이어진다. 이것이 편집자를 위한 인간 관계론의 기초다.”

이를 위해서는 역시 관련분야 말고도 다방면에 걸친 관심사랄까 잡기에도 능해야 한다고 할까 그런 게 좀 필요하다. 뭘 또 그렇게까지, 하고 한심해하며 혀를 끌끌 찰 분도 계시겠지만, 굳이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뭐든 알아두고 배워두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라’ 칠 때 번번이 나오는 ‘쫑’에도 교훈은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이것은 직접 원고를 받아야 할 필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혹... 대체 원고는 언제....

“청탁한 다음 편집자가 할 일은 때로는 저자를 격려하고 때로는 질타하며 때로는 힘이 되어주고 칭찬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는가 하면 때로는 속이면서 어떻게든 원고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어떤 갖은 수단을 쓰든지 원고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원고가 나오는 과정은 편집자로서도 시간을 요하고 부단한 노고가 필요한 작업이다.”

때로는 속이면서, 라는 대목을 읽다가 한참 웃었다. 이 책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저자가 아무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편집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을 이처럼 ‘대놓고’ 말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몰라서 그렇지 저자의 원고가 늦으면 늦을수록 편집자의 수명은 단축된다. 대체로 언론계 출신 저자들이 늦다. 출판사의 생리를 훤히 알고 있는 통에 마감 날짜를 속이지도 못한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을 읽고 찔리시는 필자분들, 어서 원고를 넘겨주십시오. 지금 이곳에서는 다들 죽어가고 있습...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인간성이 좋지 않은 사람’은 편집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냐는 항의를 들을 것 같으니, 약간의 변명을 써 놓아야겠다. 세상에는 ‘인간성이 좋지 않은 편집자’도 부지기수다. 다만, 이왕이면, 하는 정도로 마무리해 둘까. 졸업하자마자 편집자로 시작해서 아직 그럭저럭 편집자로 살아가고 있는 나 역시 과히 인간성이 좋은 편은 아니니까.

덧) 편집자의 능력과 관련하여 음미할 만한 일화가 있기에 인용해 둔다.

“자네가 물귀신처럼 독촉하니 하는 수 없이 나는 쓴다.” 나가노 시케하루가 한 문학 편집자에게 보낸 시다. 물귀신. 원고를 독촉할 때의 편집자는 다름 아닌 물귀신이다. 사실 물귀신처럼 하지 않으면 원고를 받을 수 없다. 역시 나가노의 수필집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해 보자. 나가노의 육친 초상날 문상을 온 편집자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면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인사하였다. 그는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그 뒤의 일이다. 편집자가 손을 내밀며 ‘그런데 원고는 어떻게...’ 나가노는 초상날 별 수 없이 한쪽 구석에서 원고를 썼다고 한다. ‘부모가 죽어도 마감은 마감’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냉엄한 작업이다.
우선 저자와 플롯을 짰다고 하자. 남은 건 저자가 ‘열심히’ 원고를 집필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인데 생각처럼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는다. 학교 일이 바빠서, 이번에는 몸이 아파서 원고가 늦어질 것 같은데... 핑곗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그걸 돌파하는 것이 편집자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