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bookeditor.org)라는 사이트가 있다. 이름만 얼핏 봐도 대번에 짐작할 수 있듯 북에디터들이 드나드는 사이트다. 이곳 자유 게시판과 Q&A 게시판에는, 한때 편집자는 물론 예비 편집자들도 활발하게 드나들며 질문과 답변을 남겼더랬다. 헌데 요즘에는 뜸하다. 왜 뜸한지에 대해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얘기들이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므로 말하지 않겠다. 아무튼 뜸하다. 그런 와중에 여전히 성황인 공간이 있으니 바로 구인구직 게시판이다. 

연휴 다음날인 오늘, 구인구직 게시판에는 변함없이 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모모한 출판사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공고’가 대부분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다. 이 취업대란 시대에 말이지. (가끔은 나도 이곳을 서성인다. 흠, 만약 북스피어가 망하더라도 나랑 내 동료들이 갈 데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도한다. 어허, 그냥 상상만 해 본 거다. 제발이지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please!!)

한쪽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직장을 못 구해서 난리다. 다른 분야는 내가 잘 모르니까 거론하지 못하지만, 출판계에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대관절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말석에 있는 나 또한 상당히 궁금하다. 마침 얼마 전에 나온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부키, 2009년 9월)라는 책을 보니 출판평론가 변정수 씨가 이렇게 적어놓았다. 시사하는 바가 크므로, 길게 인용한다.

거칠게 말해, 대부분의 구직자들이 찾는 일자리의 성격과 대다수 출판사들이 필요로 하는 일손의 성격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출판편집자로 취업하고자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고 실무 경험이 쌓여 가면서 능숙해지게 마련이거니와 책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심지어는 경력이 쌓여 가면서 숙련도가 높아질 테니 그에 따라 일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고, 나아가 당연히 같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대가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유감스럽게도 책이나 영화 같은 문화 상품을 만드는 일에서는 이 두 가지 생각 모두 착각이다. 책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잘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출판편집자로 살아남는다. 만일 경력이 쌓여 가면서 책 만드는 솜씨가 좋아진다면, 뒤집어 말해 예컨대 1년차 초보 편집자가 만든 책은 10년차 베테랑이 만든 책보다 완성도가 허술하다는 뜻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허술한 책을 읽어야 하는 독자는 어쩌란 말이며, 출판사를 믿고 원고를 맡긴 저자는 또 어쩌란 말인가. p. 239


아아, 실로 명쾌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제한된 지면을 통해 나름 압축해서 얘기하다 보니, 지금 이 순간에도 출판사에서 일하고자 이력서를 쓰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뭐야 지는 뭐 처음부터 잘했다는 거냐, 하며 꼬투리를 잡고 싶은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출판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답이다(그러니 꼬투리를 잡고 싶은 분은 여기 말고 변정수 씨 홈페이지에서 잡아 주시와요). 그리고 말이 났으니 말인데, 변정수 씨는 이런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 처음부터 빌빌거린 내가 하면 곤란하겠지만.  

암튼. 책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잘 할 수밖에 없는 거다(꼬투리는 변정수 사이트). 출판계의 사정이 이렇다면 대체 어째야 하나. 제 손으로 책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꺾지 않는 이상, 내가 보기에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처음부터 잘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나처럼 창업하는 것. 후자는 약간 농담이고, 전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인데…… 사실 뭔가 딱 부러진 비법이야, 당연히 없다.

처음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 일을 시작했을 때, 공교롭게도 나에게는 ‘사수’가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벌써 한 달 전에 때려치고 나갔단다. 저자의 원고에 양손을 대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정성을 가득 담아 힘을 꽉 주면 ‘펑’ 하고 책이 만들어지는 줄 알았던 나는, 내내 좌절모드였다. 어쩔 수 없이 궁금증이 생기면 제작처와 그나마 안면 있는 출판사 선배들을 붙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질문도 뭘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때,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위해 『책 잘 만드는 책』(삼진기획, 2000년 11월) 을 열심히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니 어언 8년이 지났다. 그 사이 출판 관련 서적도 꽤 많이 나왔다. 제작을 잘 하기 위해,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 편집을 잘 하기 위해, 혹은 창업자를 위한, 기획자를 위한, 편집장을 위한, 많은 책들. 그중에서 예비 편집자가 참고할 만한 서적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이 책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을 권하겠다. 출판 각 분야의 초보와 베테랑들이 솔직하게(하지만 우리는, 좀더 솔직했어야 하지 않을까)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주옥같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같이 말하면서 나는 몇 가지 사실을 고백해야만 한다. 이 책에는 나도 필자로 참여했다(부끄럽다). 게다가 책을 기획하고 조율한 변정수 씨와 친하기도 하다(출판계에서 내가 진정 선생으로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얼마 전에는 담당 편집자들에게 술도 얻어마셨다(다음 번엔 당구도 같이 쳐준단다). 같이 쓴 필자들의 경우 몇 명은 원래 안면이 있었고, 몇 명은 술 얻어마실 때 만나서 친해졌다(미인은 없더라만). 그렇게 친해진 필자들이 와우북 행사 때 우리 부스에 와서 책을 왕창 사가기도 했다(아발론 연대기를 사간 당신은 정말 멋있었어). 그러니까 ‘주옥’이나 ‘재미’와 같은 진부한 명사들은 무시해도 된다(미사여구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을 뿐).

다만 예비 편집자들에게 권해주고 싶다는 바람에는 거짓이 없다. 어차피 고료도 다 받았기 때문에 책 더 팔린다고 인세가 들어오는 것도 아닌 마당에 거짓을 고할 이유가 없다. 가격이 9,500원이니 혹시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자 꿈꾸는 사람은 꼭 사보기 바란다. 읽었는데 별로였다,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몸이 개인적으로라도 애프터서비스를 해 줄 테니까 걱정 마시옵고. 

덧) 내가 쓴 원고에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입고율과 출고율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는데(무의식적으로 갑과 을을 혼동해 버린 것이다), 나중에 이를 고쳐준 변정수 씨와 담당 편집자에게 엄청 '갈굼'을 당했다. ㅎㅎ 이 기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공개적으로 쪽 팔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