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꽤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각 구단마다 어린이 회원을 모집하여 운영했었다. 오천 원인가 얼마를 내면 점퍼에 모자에 스포츠가방에 사인볼까지 참 많이도 챙겨 줬다. 덕분에 다들 그거 안 하면 큰일 나는 분위기였는지라 나도 며칠 동안 아버지를 졸라서 MBC 청룡의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MBC와 OB 회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기억하는데, OB에 가입한 얘들이랑 편을 갈라 공을 치고 달리다가 툭하면 싸우던 기억, 선수단의 홈구장을 방문해 김재박 씨의 사인을 받고 좋아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하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야구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 나는 야구가 마음에 안 들기까지 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유니폼이 영 눈에 거슬린다. 공격하는 인간들이 전부 벤치에 앉아 있는 정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볼 만하면 불쑥불쑥 등장하는 광고가 제일 짜증났다. 대학 때였나, “오늘 해태랑 타이거즈랑 싸워서 해태가 이겼대” 하고 누가 농담을 했는데, 무심코 “어 그래? 해태가 이겼어?” 했다. 밥 먹었어? 하고 물어보는 것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다.
야구의 봄이 다시 찾아온 건 『H2』라는 만화를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야구라는 건 말이죠――” 하고 히로가 얘기한다. “아무리 점수 차가 벌어졌어도 마지막 쓰리 아웃을 잡기 전엔 끝나지 않거든요.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묘미를 가르쳐 드리지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일본 프로야구 전체의 흥행을 좌지우지하던 시절, 감독과의 불화로 자이언츠에서 쫓겨난 사나이가 만년 꼴찌 팀인 엔젤스의 감독이 되고 천신만고 끝에 자이언트를 제쳐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머쥔다는 『야구감독』도, 자본주의적 생존경쟁에서 뒤쳐진 만년 꼴찌들이 야구를 통해 야구 이외의 (예컨대 8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나 삶의 부조리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삼미』도,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전조가 아니었을지.
아니, 나뿐 아니라 다들 그랬던 게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가 진짜로 야구를 해보자고 넌지시 얘기를 꺼냈을 때 서로서로 독려하며 두말없이 승낙했던 게 아닐까. 새파란 잔디가 깔린 야구장에서 열심히 맥주를 마시며 감정이입했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 자기 안에 있던 또 다른 자신에게 각인되어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글러브도 배트도 이십 년 만에 처음 잡아보지만(실로 감격스럽다), 딱 반나절 치고 달리다 보니 사장되었으리라 싶었던 감각들이 스르르 되살아난다. 마치 죽은 이가 무덤에서 기어 나오듯. 코오, 신나라. 뭐 그러고 나면 온몸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하루 이틀 도무지 꼼짝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아―― 그제 슬라이딩하다 다친 허벅지가 아직도 아프다. 많이 아프다.
덧) 올해는 꼭 부산 사직구장에 가 보고 싶은데 말이죠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