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지날 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제법 굵다. 여분의 신발을 챙겨오지 않은 걸 뒤늦게 후회했다. 휴게소에 들렀을 때 샌들을 하나 샀다. 통가죽으로 만들어서 튼튼하기 때문에 이만오천 원이란다. 부산에 도착한 시각이 늦은 일곱 시. 육천 원짜리 백반을 먹고 서둘러 부산역 광장으로 향했다. 빗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졌다. 다들 비옷을 입고 우산을 받쳐 들었다. 변정수 선생이 입은 비옷이 유난히 촌스럽게 보여 슬쩍 농을 했더니 몇 년 전에 공짜로 장만한 거라며 아이처럼 낄낄거린다.
광장은 만원이었다. 부모와 손잡고 온 아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우리가 갔을 때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공연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송경동 시인의 시 낭송,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를 때는 서로의 어깨를 걸고 합창했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라는 노래말이 새삼 가슴을 쳤다. 속옷까지 다 젖은 상태로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다.
행진이 시작되었다. 비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우산을 들고 있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 접기로 했다. 여분으로 싸들고 온 옷가지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비옷도 가방 위에 덧댔다. 집에 돌아가면 좀더 그럴듯한 비옷을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행렬은 꾸물꾸물 앞으로 나아갔다. 부산역을 빠져나가는 데만 몇십 분이 걸렸다. 애당초 대오가 흐트러져 있던 터라 부산역을 출입하는 시민들을 위한 길은 확보되지 않았다. 몇몇은 시위대에게 짜증을 냈다.
거리로 나서니 인근 상가와 식당에 있던 사람들이 창밖으로 목을 내놓고 있다. 반대쪽 차선에서는 우회로를 확보하지 못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 서서 차창 왼쪽을 멀건히 쳐다보았다. 너희들이 길을 막아서 화가 났단 말이야-라는 눈빛과, 이 빗속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위해 모였다니 신기해-라는 시선이 짬뽕져 어우러져, 토끼가 자라의 등에 업혀 용궁으로 가는 장면이라도 구경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담배 생각이 나서 대오를 빠져나와 우산을 폈다. 라이터가 젖었는지 불이 붙지 않았다. 길가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에게 불이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급히 주머니를 뒤지던 그가 깜빡 하고 간을 두고 왔다는 듯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했다. 마침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에게 불을 빌릴 수 있었다. 한 대를 다 피우는 동안에도 행렬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느리긴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행렬은 영도 조선소를 1킬로쯤 앞두고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멀리 무장한 경찰병력과 차벽이 보였다. 이윽고 경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선두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권총에서 내뿜는 최루액은 시위대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최루액을 정면으로 맞은 시위대의 눈 씻을 물을 찾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앞으로 물병이 전달되었다. 크고작은 물병들이 끊이지 않고 앞쪽으로 앞쪽으로 향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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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한 명이 내가 있는 쪽으로 손을 내저으며 비칠비칠 걸어왔다. 눈을 뜨지 못했고 입에서는 오열이 튀어나왔다. 1.5리터들이 물 한 병을 몽땅 쏟아부어 눈을 씻어 주었건만 속수무책이었다. 억누른 울음소리가 이 사이에서 뭉개진다. 그녀는 몇몇 시위대의 부축을 받아 뒤쪽으로 옮겨졌다. 주변에서 와 하는 수상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살수차 위로 완전무장한 경찰 병력 대여섯이 올라왔고 시위대를 향해 조준하는 중이었다. 정적과 함께 긴장이 흘렀다.
어린이와 여성, 노약자를 뒤쪽으로 대피시켰다. 행렬의 선두 쪽에 있었던 우리 일행도 몇몇만 남고 나머지는 뒤로 이동하기로 했다. 역사비평사의 동료가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서 나에게 뒤쪽으로 가라고 했을 때 순간적으로 아까 오열하던 여성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되었다.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후미로 도망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는 사람이 최루액을 맞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여러 차례 경고 방송이 이어졌다. 바보 같은 놈들이 바보 같은 말을 하면서도 위세만큼은 등등하다. 새벽 세 시 무렵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최루액이 시위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대치 상황 초반에 뿌리던 정도의 규모가 아니라 시위대를 온통 집어삼킬 것 같은 기세였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다행히 우왕좌왕하진 않았다. 다들 "천천히"를 외치며 조금씩 퇴각해서 100미터가량 밀려났다. 선두가 물러난 자리는 경찰 병력으로 채워졌다.
지루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널브러졌고 일부는 대오를 이탈하여 주변 골목으로 흩어졌다. 허기를 달래기 위한 주먹밥이 준비되었지만 배를 채우기엔 어림도 없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시위대는 눈에 띄게 활기를 잃어갔다. 축축한 옷이 몸에서 발산되는 열기에 데워져 비릿한 냄새를 풍겼다. 입김에 심지 불이 꺼진 사방등처럼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집행부가 활기찬 음악과 춤으로 흥을 돋웠지만 쏟아지는 졸음 앞에서는 무력했다.
끝까지 지친 모습 하나 보이지 않던 뜨인돌 출판사의 동료를 첫차에 태워 보내고 나는 골목 어귀 정육점 앞 인도에 비옷을 깔고 드러누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본부 차량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배식을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밥과 김치와 국을 그릇 하나에 받아 먹었다. 다 먹은 일회용 숟가락과 그릇은 그 자리에서 씻어 다음 사람을 위해 반납했다.
허기가 사라지자 정신이 좀 들었다. 인근에 있는 홈플러스에 가서 세수를 했다. 머리도 감았다. 벗은 옷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여분의 옷은 젖지 않았다. 갈아입었다. 시위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화장실로 몰려왔다.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잠시 화장실을 들여다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무전기를 손에 든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세면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몸을 씻던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변정수 선생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홉 시쯤이었다. "어디 계세요 배식중입니다".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선생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배를 곯을까 봐 하나하나 확인해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다들 부지런히 밥을 먹었다. 나는 그 옆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땀이 쏟아진다. 해가 쨍쨍했다. 누군가 "차라리 비가 계속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아"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바닥에서 열기와 습한 기운이 올라왔다.
마음산책의 동료가 본부차량에 다녀와서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강경하다고 했다. 김진숙 지도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 이대로 진을 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본부의 입장이 다시금 전해졌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한번 기세를 잃은 사람들은, 억지로 쓴 약을 먹었지만 쓰다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참고 있는 것처럼 괴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맥락을 잃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왜 여기에 왔지? 몰랐으면 모르되 알고도 가만있자니 불편해서 왔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 편하자고 온 거다. 편하자고 온 건데 와보니 더 암담했다. 몸이 불편한 건 참을 수 있겠다. 실제로 밤을 세며 다들 잘 참아 왔다. 하지만 참고 또 참아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가장 답답한 것은 이 일이 언제가 되면 끝날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한 사람은 누구이고, 잘못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 너무 뻔한 질문처럼 보이는데 방송은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홉 시 뉴스를 보았다. 길고긴 장마처럼 이어지던 여러 기사 끝에 별책부록 같은 분량으로 끼워진 한진 시위 보도를 보며, 우리는 피식 웃었다. 집으로 돌아와 시사매거진을 봤을 때는 허탈했다. 아아 씨발 뭐 이래.
이럴수록 의지가 불타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다음에 또 갈 엄두가 안 나네. 의지박약이다.
덧)
1. 다들 고생하셨지만, 마음산책 동료와 역사비평사 동료가 특히 궃은 일을 도맡아 하며 앞장서서 애써 주셨다. 고마움을 전한다. 인사회를 다시 보았다.
2. 밤새 뜨인돌 동료가 꿋꿋하게 옆을 지켜주어 든든했다. 먹을 거 안 가져왔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럼 지가 좀 가져오지.
3. 부산 영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새벽까지 지인들이 안부 전화와 문자를 보내주셨다. 외로워서 울 뻔했다가 덕분에 울지 않았다. 아마 연락주시면서도 예상하셨을 텐데 저야 원래 무사안일주의를 제1의 원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그렇다고 뭐 그게 딱히 자랑은 아니지만). 숭렬이 형, 윤 선배, 영희 씨, 모두 고맙습니다.
4. 샌달이 통가죽으로 만들어서 튼튼하다매? 집에 와서 보니 본드가 다 떨어져 나가 뒤쪽 끈이 끊어질 지경이다. 살짝 힘만 줘서 걸어도 못 신을 판이지만 내가 무리하게 도망가다가 그리 된 걸로 생각하고, 참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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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냉면을 먹지 않기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