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 이 년쯤 전의 일이다. 평화롭던 어느 오후,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출판 창업에 대해 강의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변정수 선생이 기획한 책의 한 꼭지로 뭔가를 끼적인 것이 계기로 작용한 듯했다. 적극 추천까지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냉정한 분이니까)지만 ‘그 친구 정도라면’ 하는 식으로 선생이 언질을 주었던 모양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게 출판계의 존경할 만한 선배였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쁘긴 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전혀 말을 못하는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마당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출판이 어떻다느니 말도 안 되는 예를 들어가며 누굴 가르친다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깨끗이 단념하도록, 싱싱한 무를 식칼로 싹둑 자르듯 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상대방도 보통이 아니어서, 말미를 줄 테니 생각해 보면 어떠냐는 둥, 내일쯤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는 둥, 일단 한 번 만나서 얘기하자는 둥 한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만나는 거야 뭐 어렵겠나 싶어 약속을 잡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일단 한 번 만나자’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4할5푼쯤은 상대방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간 게 아닌가 싶다.

약간 딴 얘기지만 뭔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한 번 만나’고 볼 일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만나서 “어머, 말씀도 참 잘 하시네” 하는 얘기를 다섯 번쯤 듣고 났더니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어흠, 그럼 한 번 해볼까나” 이러고 말았던 거다. 단, 마지막 강의를 마친 이후에 수강생들에게 평가서를 적어내게 해서 반응이 나쁘면 관두는 걸로 하자는 다짐을 두었다. 뭐 평가가 나쁘면 다짐을 두지 않아도 자동 태그일 테니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 4주 동안 진행된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사람들과 만나서 출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나에게도 매우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했던 출판 행위들을 곰곰이 돌아보는 계기가 될뿐더러, 현재 출판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들이 왜 벌어졌는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혹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내가 잘 모르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자극이 되고, 수업이 끝난 후에 어울리다가 뜻밖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그 시간이 무척 기다려지기도 한다. 다행히(라고 해야 할지) 아직까지는 수업 내용에 대해 이렇다 할 불만이 접수되지 않은 관계로 이 년이나 부끄러움도 모른 채 출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있다.  

물론 불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째 기수인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여름이었고 마지막 수업을 했던 날로 기억한다. 종강을 기념하여 맥주나 한잔할까 싶어 근처 호프집으로 몰려가서 생맥주와 치킨을 시켜놓고 왁자지껄 떠들던 중이었다. 내 앞에는 자매님 세 분이 앉았는데, 그중 가운데 있던 분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내 옷차림에 대해 요모조모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아, 내가 그랬던가, 하고 성찰할 틈도 없이 양 옆에 자매님들까지 덩달아 (돌이켜 보니 약간은 기분이 나빴다는 표정으로) “맞아,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친다. 농담처럼 튀어나온 나의 복장에 대한 얘기는 주변으로도 전파되어 세 분 자매님 외에도 두 분의 형제님까지 끼어들어 열띤 성토의 장이 되었는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사 주 내내 매번 검정색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었어.
2. 심지어 티셔츠의 상표까지 똑같던데.
3. 이건 수강생들을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
4. 그러고 보니 머리 모양도 이상해.

헤어스타일에 관해서까지 비난이 이어진 건 좀 억울했지만, 아닌게아니라 옷차림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없긴 하다. 이런 말은 창피한데 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럴듯한 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다. 겉모습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구렁이인 척 담을 넘으려는 게 아니고, 내가 오랫동안 옷을 사지 않았던 데에는 나름대로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다. 간단하게 정리해 볼짝시면-.

옷가게에서 옷을 살 때는 분명 마음에 들었는데 집에 와서 입어 보면 도통 입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그렇다고 반품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옷장에 처박아둔다-->두 번에 한 번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스쿼드 미사일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점원이 있는 가게에 가게 되는데 “어머, 손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쩐지 사게 된다-->그렇다고 반품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옷장에 처박아둔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간만에 옷가게에 들러 옷을 사면, 살 때는 마음에 들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이런 패턴이 몇 번쯤 반복된 이후로는 옷을 사러 갈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혹은 사더라도 무늬나 문양이 없는 무채색 티셔츠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흰색 티셔츠로 귀결되지 않은 게 어딘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옷차림 때문에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니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리겠다. 

심지어 다음날에는 그날의 성토에 참여했던 형제자매님들로부터 메일도 왔다. 옷을 잘 입는 요령, 옷을 살 때는 가급적 직접 고르지 말고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통째로 사라는 조언, 그런 마네킹이 즐비한 대형 매장 위치, 옷 잘 입는 모델 사진 몇 장, 그리고 미용실 약도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한편으로 그제야 비로소, 어제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결코 술자리 농담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 이후로 수업이 있는 날은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래봤자 네 번 가운데 한 번 정장을 입는 정도이긴 하지만. 

덧) 지난 주에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하나 들었는데 그날 강사님이 꼭 나처럼 입고 나오더라. 목 늘어난 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 강사님께 메일을 하나 드릴까 고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