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적는다. 
오늘 12월 21일은 세이초 선생의 생일이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세이초 월드'의 첫 권 『짐승의 길』 출간을 앞두고
영차영차 열심히 준비중인 상황이라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이번 생일만큼은 좀 기념해 드리고 싶었다.

얼마 전에 지나간 어머니 생일도 챙기지 못한 마당에
만난 적도 없는 작가의 생일을 챙기자니
뭔가 송구하긴 한데(엄마, 사랑해).

여튼 당 이벤트는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공동으로 진행한다.
지난 며칠 동안 모비딕과 북스피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소주를 홀짝홀짝 들이켜며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일이야 구태여 소주를 마시며 얘기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소주를 마시며 같이 고민하면
어쩐지 더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별로 깊은 의미는 없다.
그저 다른 출판사와 같이 블로그에서 쿵짝쿵짝 하는 거,
이런 걸 예전부터 상당히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하여 이딴 걸 하기로 했다. 
요령을 숙지한 후에 참여해 주시길.

1. 아래 퀴즈는 북스피어 블로그에 있는 글과
모비딕 블로그에 있는 글을 전부 읽어야 겨우 풀 수가 있다.
(북스피어 글을 읽으려면 여기, 모비딕 글을 읽으려면 여기 )
2. 북스피어 블로그와 모비딕 블로그에 각각 10개의 문제가 출제되어 있다.
3. 글을 다 읽었으면 문제를 풀자.
4. 문제를 풀었으면 비밀댓글로 답을 적고, 원하는 상품도 병기한다.

상품이 제법 그럴싸한데,
대관절 그게 뭔지 구경해 볼짝시면-,
(아래 사진은 클릭하면 커진다.)

확대


마쓰모토 세이초 노렌
마쓰모토 세이초 도록
마쓰모토 세이초 손수건
마쓰모토 세이초 머그컵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협조가 컸다.
애써 주신 후지이 야스에 관장님과 야나기하라 상, 아리가또.

그런데 문제는,
문제가 의외로 어렵다는 거.
지문의 길이도 장난 아니고.
문제를 풀기는커녕 지문 읽다가 낙오하게 생겼다...

...라는 걱정이 안 들었던 건 아니었으나,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응모자가 많지 않으면
세이초 기념관에서 가져온 상품은
본사가 유용하게 잘 사용하도록 하겠다. 걱정마셔요. 

응모 마감은 12월 27일 신데렐라 무도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발표는 28일.

답안은 비밀댓글로 달아주시고,
답안 맨 뒤에는 원하는 경품도 표기해 주시라.

그럼 만점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문제, 가자.

**

1.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하나만 고르시오.
1)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다.
2) 단편 『어느 '고쿠라 일기' 전』으로 마흔한 살에 데뷔하였다.
3) 많은 작품을 썼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해 쓰는 것을 꺼려했다.
4) 1971년 51세에 문제작 『일본의 검은 안개』를 발표하였다.
5) 이시카리 강, 도카치 강, 기타카미 강, 모가미 강, 이상 4개 강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에세이를 집필했다.


2. 세이초가 맨 처음 발표한 단편소설, (맨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 (맨 처음 발표한) 논픽션을 순서대로 적으시오.


3. 다음 중 '세이초 월드' 출간을 앞둔 마포 김 사장의 소회일 리가 없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세이초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번에 『짐승의 길』을 만들면서 좀더 잘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학력이 아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력에 의한 차별에 져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 세이초의 일화를 듣고 깊이 공감하였다.
2) 출판 시장이 어려우니 내년 1월에 출간할 세이초의 신간 『짐승의 길』은 1,000만 원짜리 광고를 하는 셈치고 1,000만 원어치 사재기를 해서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3) 대중적인 소설을 써왔음에도 작고한 지 얼마 안 되어 기념관이 지어졌고 또한 세이초의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제정되어 운영중이라니,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일본의 독자들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에 대한 구별 없이 문학을 폭넓게 향유하고 있는 듯하여 부러웠다.
4) 세이초를 본받아 나도 외고를 쓸 때는 마감을 잘 지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5) 작가 생활 40년 동안에 쓴 장편이 약 100편이고 중단편 350편에다가 에세이 등까지 포함하면 편수로는 거의 1,000편, 단행본으로는 700여 권에 이른다니 깜짝 놀랐다. 정말 목숨을 걸고 죽기살기로 글만 썼구나, 싶어 탄복하고 말았다.


4. 세이초가 쓴 작품과 그가 받은 상이 잘못 연결된 것은?
1) 단편소설집 『얼굴』로 탐정작가클럽 상을 수상
2) 『쇼와사 발굴』로 기쿠치 간 상 수상
3) 『어느 '고쿠라일기' 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
4) 『소설 제국은행사건』으로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


5. 다음 빈 칸을 채우시오.

소설가로서 자리를 잡자마자, 세이초가 다음으로 파고든 것은 논픽션이었다. 그는 51세에 문제작 『일본의 검은 안개』를 발표해서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소설 제국은행사건』에서 발견한 주제를 확대시켜, 미국의 점령사령부 아래 발생한 12개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하나하나 정면으로 파고들어, 당시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부패와 비리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고발했다. 신문이나 공식 발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실제 사건의 안과 밖,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욕망, 그 사이에 점과 선을 샅샅이 해부했기 때문에 픽션 이상으로 전율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사회나 조직의 불투명한 비리를 표현할 때 (             )라는 말이 대유행처럼 쓰였다.



6. 아래 설명을 읽고 괄호 안에 들어갈 작가로 적절하지 않은 사람을 모두 고르시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의 배일정책으로 인해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본의 문학작품들은, 1960년대 4.19혁명 이후부터 조금씩 수입되었고 1965년 한일수교협상이 이루어짐에 따라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주로 세계문학선집 가운데 한두 권이 포함된 형태였으며 순문학이 주류를 이루었지요. 여기에서 이를 수용하는 ‘대중’과, 이른바 ‘문단’의 완전히 상이한 반응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시대 이후 복권된 일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언론과 문단의 반응은 우려와 경계 일색이었습니다. <일본 문학의 공습>과 같은 기사가 여전히 게재되고 있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일본문학에 대한 평가에는 늘 “문화적 침식”이나 “비윤리성”이라는 수식어가 동원되었습니다. 특히 일본문학의 사소설적 경향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나 평가도 없이 한국문학의 안티테제로 부각됩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 한국문학의 엄숙주의나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은 이때를 기점으로 공고해진 게 아닌가 싶어질 정도입니다.

“사소설에 대한 거부감의 표명은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사회성을 강화하고 이데올로기를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일본문학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첩경으로 여겨졌다. 일본문학을 부정적 상대항으로 설정하는 것은 일본문학의 자장에서 되도록 멀리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여기에는 일본문학에 지나칠 정도로 인접해 있었던 식민지 기억의 트라우마가 작용하고 있었다”는 윤상인 교수의 평가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문단의 반응에 상관없이, 일반 독자들이 일본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한국의 출판사들은 일본의 순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학도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                 )등의 작가들은 1970년대부터 여러 편이 수입되었고 1980년대에는 경쟁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1) 미야베 미유키
2) 모리무라 세이치
3) 이노우에 야스시
4) 히가시노 게이고
5) 마쓰모토 세이초


7. 다음 그림은 세이초 선생(앞)과 미미 여사(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떤 시츄에이션인지 기술하라. (웃기면 가산점!)

  

8. 다음 기사(기사 읽기)를 읽고 나올 수 있는 독자들의 반응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1) 두 출판사가 판형과 디자인을 통일하여 마치 한 출판사에서 나온 것처럼 세이초의 작품을 꾸준히 펴낸다고 하니 자못 기대가 되네.
2) 이런 식의 컨소시엄이 성공을 거두어서, 아직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도 소규모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많이 발굴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3) 책 팔아먹으려고 별 쇼를 다 하는군. 게다가 '쪽바리' 책을 무슨 컨소시엄씩이나.
4)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일본 유족회 쪽과의 저작권 공동협의를 통해 선불금, 계약 기간 등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냈다고 하니, 이번 컨소시엄이 잘 진행돼서 무분별한 외서 선불금의 상승에 대해 주의환기를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구나.
5) 흥, 자기들이 연합해 봤자지. 얼마나 잘 되나 두고보자.


9.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세이초는 교련에 열심히 참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른다섯에 위생병으로 징집되어 보충병들과 함께 부산행 연락선을 탄다. 뉴기니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경성에서 도쿄, 오사카에서 온 소집병와 합류하여 새롭게 병단을 편성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용산에서 모인 이들이 매일 한 훈련은 연병장에서 가상으로 수송선이 격침당했을 때 바다에 뛰어드는 연습이었다고 한다. 세이초는 전혀 수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연습만으로도 죽음을 느꼈다고 한다.

먼저 편성된 보충병단은 조용히 예정된 지역으로 떠났다. 그런데 그들은 뉴기니에 도착하기도 전에 잠수함에 의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침몰되고 만다.

그런데 이 사건은 뜻밖에도 세이초로 하여금 뉴기니행을 면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즉 일본군에게는 보충병을 실어 나를 수송선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사실상 죽을 것을 각오하고 떠나온 세이초는 태평양전쟁 말기를 조선에서 단 한 번의 전투도 하지 않고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의무병이었던 세이초는 약재 구입을 명목으로 공영증을 끊어 경성 시내를 어슬렁거리며 약간의 자유까지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때 그는 일본인지역보다 조선인 거주구역을 배회했는데, 특히 종로 근처의 뒷골목에서 이국적 느낌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결국 이듬해 한국에서 패전을 맞이한 세이초는 당시 한국에서의 군대 경험을 통해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 세이초가 쓴 작품 중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은 무엇인가.
1) 짐승의 길
2) 가리온의 정체
3) D의 복합
4) D도스 공격의 배후
5) 북의 시인 임화


10.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일단 추리소설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 하늘을 보면 언제나 태양이며 달을 볼 수 있듯이 거기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의 세례를 받지 않고 추리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는 한 사람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습니다." (1992년 마쓰모토 세이초 타계 후, 잡지에 실린 미야베 미유키의 글 중에서)

1992년 4월 20일 뇌출혈로 쓰러진 세이초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재활훈련 중이던 7월, 병세가 악화되었고 검사 결과 간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8월 4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연재하던 작품도 자연스레 절필이 되었다. 그가 파헤치려 했던 쇼와시대도 막을 내렸다. 그러나 '권위라는 것, 선입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먼저 의심하는' 그의 삶과 다채로운 작품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의 사후 마쓰모토 세이초 전집이 완성되었고, 일본문학진흥회에서는 '마쓰모토 세이초 상'을 제정했으며, 7주기를 맞아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다음 중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이 있는 도시의 이름은?
1) 후쿠오카
2) 가고시마
3) 도곡동
4) 기타규슈
5) 나가사키

이상.

객관식 각 2점
주관식 각 3점
7번 문항은 (1점~5점)

문제 푸느라 애 많이 쓰셨다.
그대들의 노고에 힘입어 '세이초 월드'를 잘 만들어 볼게.


덧)
최고점자에게는 위 상품 외에 특별한 부상을 하나 더 마련할까 생각중. 

아울러 이제 막 출범한 모비딕도 지켜봐 주시길 당부드린다(이벤트 할 때만 지켜보지 말고). 북스피어가 출판사를 차린 지도 어언 7년. 지금 이렇게 재미있는 짓거리들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독자들이 모이는 데까지 대략 삼 년쯤 걸렸고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독자들이 기뻐하는 것은 참으로 보람있는 일이지만, 독자들이 기뻐하도록 하기 위해 준비하는 측이 치러야 하는 노력이란 옆에서 보기보다는 훨씬 힘겨운 일이다. 모비딕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