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처음 대면한 게 언제였더라, 하고 머릿속을 더듬어 본다.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를 펴내고 몇 달 후였을 것이다. 성대 국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천정환 선생의 요청으로 특강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장르문학 출판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한 후에 학생들에게 《혼조》를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강의를 마친 후, 우리 둘은 가회동에 있는 호젓한 요릿집을 찾았다. 예전부터 나에게 꼭 한 번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인문학 편집자인데 소설을 많이 읽고(이 대목에서 천정환 선생은 소설을 전공한 자기와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이, 라고 덧붙이며 웃었다), 최근 들어 미야베 미유키에게 빠져 있는 사람이란다.   

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짬뽕 국물이 나올 때쯤 등산배낭을 맨 남자가 가게 안으로 선뜻 들어섰다. 젊었을 때는 잘생겼다는 얘기깨나 들었으려나. 하지만 뿔테 안경 때문이었는지, 전체적으로는 예민하고 고집이 셀 것만 같은 인상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이 더운 날 굳이 자기는 소주를 먹겠단다.

미야베 미유키 얘기를 잠깐 하고 그 뒤로 두어 시간은 야구 얘기만 했다. 당시 나는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야구에 관심이 없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문득, 이대호 알아요? 하고 묻는다. 이대호 씨? 두산 4번 타자? “……아닌가요?”라고 대답했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찬다. 이대호가 두산이라니, 이 친구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피식, 이라고 했던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게. 그것이 모비딕 조원식 실장과의 첫 만남이다. 나에게 그는 고집 센 야구광 정도로 인식되어 있었다. 틀림없이 위는 부실한 사람일 거라고 나중에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날도 안주는 거의 먹지 않고 소주만 잔뜩 먹었거든. 반대로 나는 술은 거의 먹지 않고 안주만 집어먹었지. 그와 나는 배짱이 맞을 만한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다.

2008년 여름 무렵이니까 시간이 어느새 오 년이나 흘렀구나. 그 뒤로 나는 이대호 선수를 눈 여겨 보았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조금씩 정이 깊어만 가서 지금은 이대호 선수를 무척 좋아하기에 이르렀다(성균관대학교도 좋아합니다). 조금 진부한 말이지만,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아까 천정환 선생이 전화를 걸어, 《경향신문》에 실린 세이초 기사 봤는데, 그거 지나치게 크게 실린 거 아니야? 크하하 맙소사, 하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놀리기에(라기보다는 전화니까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는 걸 볼 수야 없고 하여튼 그런 뉘앙스로 웃기에), 에이, 선생님은 세이초도 잘 모르시면서 왜 함부로 말씀하셔, 라는 의미를 담아 같이 웃어 주었다.

세상 어떤 책에 사연이 없겠냐만, 오늘 세이초 월드는 그런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들은 하나도 그렇게 여기지 않겠지만, 나는 참으로 묘하다고 느낀다. 미야베 미유키+이대호+성균관대학교=마쓰모토 세이초. 써놓고 보니까 정말 그래. 아아 일본으로 건너간 이대호 선수의 선전을 기대해 보고 싶은 일요일이다. 오늘따라 날씨도 좋구만.

왼쪽부터 김경남 선생, 나, 조원식 실장


덧) 후지이 관장 인터뷰 건으로 일본에 갔을 때 찍은 사진 가운데 제일 내 마음에 드는 거. 촬영은 야쿠자 출신 포장마차 주인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