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나온 문학계간지들을 이것저것 뒤적이는데 반가운 글 한 편이 눈에 띈다. <한국문학 속 장르문학, 장르문화 속 한국문화>라는 제목으로 어느 영화평론가가 썼다. 『판타스틱』이, 어느덧 ‘장르’를 이야기할 때 말머리로 거론될 만큼 성장한 모양. 기뻐라. ㅎㅎ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장르문학> 혹은 <장르문화>와 관련하여 담론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월간지 『판타스틱』이다. 장르 잡지를 표방하고 있는 『판타스틱』은 중간에 편집장이 바뀌는 등 내부적인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겪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월간지를 이끄는 안정된 필진과 작가의 구성을 통해 호응을 얻고 있다. 판타스틱은 에스에프와 판타지를 중심으로 한 장르문학을 주도한다. 최근의 분위기는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문단을 중심으로 한 한국문학의 흐름은 <장르>문학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여겨져 왔다. 이러한 판단은 역사적인 것이다. 기성의 문단 평론가나 작가들 중에도 개인적으로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문제는 담론이 펼쳐지는 틀이었다. 한국문학의 위상은 민주화운동, 독재타도와 같은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면서 형성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리얼리즘 문학이 맨 앞자리에 섰다. 역사적인 상황에서 자본과 시장에 가까이 있는 듯 보이는 장르문학은 뒷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월간지 『판타스틱』은 제목 그대로 <현실>이 아니라 문학의 <환상성>을 통해 흐름을 이끌고자 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상황이 변했다고 씁쓸하게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 이상 자본과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장르문학이 호응을 얻게 된 결과를 낳았다고 냉정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월간지 『판타스틱』이 바꾼 것은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월간지라는 형식도 기존의 문예계간지의 포맷을 바꾼 시도라고 할 수 있고, 미국의 장르문학잡지와 <펄프픽션>의 선례를 따라 하나의 읽을거리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은 잡지라는 것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읽을거리로서의 담론>에 있다. 기존의 문예계간지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무거운 <문학 담론>으로 독자들을 위압하는 데 반해서 2000년대 이후 독자들의 취향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선호한다. 대중문화의 위상이 문학에서 영화로 옮겨간 것에도 이러한 연유가 따를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문학 위기론을 비롯하여 여러 진단이 나온 바 있다. 그런데 다양한 진단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작 기존의 문학잡지들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툼한 문예계간지라는 틀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판타스틱은 기존의 문학잡지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의 읽을거리로서의 문학을 전면에 내걸면서 한편으로는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성 문단 작가들에 대한 인터뷰와 그들의 신작에 대한 관심이다. 장르 문학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기존의 작가들의 활동에도 관심을 표명한다. 판타스틱이 장르문학을 중심에 다룬다고 하더라도 본격문학이나 순수문학의 영역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판타스틱』에 수록된 소설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인물은 듀나, 이영도와 같은 9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작품집을 내면서 SF작가로 분류되는 장르문학의 스타들이다.
듀나의 『태평양횡단특급』은 한국문학 시장을 대표하는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출간되는 파격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관행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되지는 않았다. 정작 듀나의 단편들은 문학계간지를 통해 접하기는 어려웠고, 씨네21과 같은 영화주간지를 통해 특집의 형식으로 단편이 수용되거나 대중문화잡지의 한 코너를 차지하는 정도였다. 『판타스틱』은 이들이 특집이 아니라 중심화 된다는 점에서 지금은 사라진 <리뷰>와 같은 대중문화계간지나 씨네21과 같은 영화주간지와는 구별이 된다.
무엇보다 판타스틱에서 외연을 넓히는 방식은 인터뷰를 통해서이다. 국내의 인터뷰 대상으로는 김영하, 박민규처럼 본격문학 진영에서도 관심 있게 다뤄지지만, 대중문화의 감수성을 껴안고 있는 작가들은 폭넓게 수용한다. 또한 기존의 문학계간지들이 특집의 형식을 통해 외국 작가를 수용한 것과는 달리 판타스틱은 국내외 작가들을 수평적으로 수록한다. 외국의 번역문학에 대한 선호에는 장르문학의 두께가 국내보다는 국외의 경우가 더 풍부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작가와 외국 작가의 단편을 나란히 수록하는 것은 확실히 달라진 느낌을 준다.
『판타스틱』에는 듀나의 단편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번역소설이 나란히 계제가 되며, 이들은 장르문학의 스타라는 틀 아래 자연스럽게 묶여버린다. 판타스틱의 섹션 아이즈(구별짓기)는 <장르>라는 구호 아래 동과 서를 구별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은 읽을거리이자 장르문학의 고급화를 이끈다는 이유로 한자리에 놓인다.
『판타스틱』에는 문화적 트렌드도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온다 리쿠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의 단편들이나 인터뷰를 수록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일본 작가들은 젊은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 중요한 기호이다. 기존의 잡지들이 현재 시장의 반응이나 관객들의 호응에 밀착할 수 없었던 것에 반해 『판타스틱』은 월간지의 속도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재의 관심을 접속한다. 또한 장르문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국에서 개봉되는 다양한 국내외의 장르영화들을 아우름으로써 문학에서 문화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판타스틱』을 장르문학이라는 <협소>한 틀을 옹호하는 잡지로 보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는, 장르문학을 중심에 두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소설을 나란히 놓고 견주는 긴장감 넘치는 문학 혹은 문화 잡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중략)
_2008년 작가세계 봄호, 이상용(영화평론가)
월간지 『판타스틱』은 제목 그대로 <현실>이 아니라 문학의 <환상성>을 통해 흐름을 이끌고자 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상황이 변했다고 씁쓸하게 말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 이상 자본과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장르문학이 호응을 얻게 된 결과를 낳았다고 냉정하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월간지 『판타스틱』이 바꾼 것은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월간지라는 형식도 기존의 문예계간지의 포맷을 바꾼 시도라고 할 수 있고, 미국의 장르문학잡지와 <펄프픽션>의 선례를 따라 하나의 읽을거리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은 잡지라는 것의 본질을 환기시킨다.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읽을거리로서의 담론>에 있다. 기존의 문예계간지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무거운 <문학 담론>으로 독자들을 위압하는 데 반해서 2000년대 이후 독자들의 취향은 가벼운 읽을거리를 선호한다. 대중문화의 위상이 문학에서 영화로 옮겨간 것에도 이러한 연유가 따를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문학 위기론을 비롯하여 여러 진단이 나온 바 있다. 그런데 다양한 진단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작 기존의 문학잡지들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툼한 문예계간지라는 틀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판타스틱은 기존의 문학잡지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의 읽을거리로서의 문학을 전면에 내걸면서 한편으로는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성 문단 작가들에 대한 인터뷰와 그들의 신작에 대한 관심이다. 장르 문학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기존의 작가들의 활동에도 관심을 표명한다. 판타스틱이 장르문학을 중심에 다룬다고 하더라도 본격문학이나 순수문학의 영역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판타스틱』에 수록된 소설을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인물은 듀나, 이영도와 같은 9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작품집을 내면서 SF작가로 분류되는 장르문학의 스타들이다.
듀나의 『태평양횡단특급』은 한국문학 시장을 대표하는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출간되는 파격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관행을 뒤흔들 만한 사건이 되지는 않았다. 정작 듀나의 단편들은 문학계간지를 통해 접하기는 어려웠고, 씨네21과 같은 영화주간지를 통해 특집의 형식으로 단편이 수용되거나 대중문화잡지의 한 코너를 차지하는 정도였다. 『판타스틱』은 이들이 특집이 아니라 중심화 된다는 점에서 지금은 사라진 <리뷰>와 같은 대중문화계간지나 씨네21과 같은 영화주간지와는 구별이 된다.
무엇보다 판타스틱에서 외연을 넓히는 방식은 인터뷰를 통해서이다. 국내의 인터뷰 대상으로는 김영하, 박민규처럼 본격문학 진영에서도 관심 있게 다뤄지지만, 대중문화의 감수성을 껴안고 있는 작가들은 폭넓게 수용한다. 또한 기존의 문학계간지들이 특집의 형식을 통해 외국 작가를 수용한 것과는 달리 판타스틱은 국내외 작가들을 수평적으로 수록한다. 외국의 번역문학에 대한 선호에는 장르문학의 두께가 국내보다는 국외의 경우가 더 풍부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작가와 외국 작가의 단편을 나란히 수록하는 것은 확실히 달라진 느낌을 준다.
『판타스틱』에는 듀나의 단편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번역소설이 나란히 계제가 되며, 이들은 장르문학의 스타라는 틀 아래 자연스럽게 묶여버린다. 판타스틱의 섹션 아이즈(구별짓기)는 <장르>라는 구호 아래 동과 서를 구별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들은 좋은 읽을거리이자 장르문학의 고급화를 이끈다는 이유로 한자리에 놓인다.
『판타스틱』에는 문화적 트렌드도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온다 리쿠를 비롯한 일본 작가들의 단편들이나 인터뷰를 수록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일본 작가들은 젊은 독자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 중요한 기호이다. 기존의 잡지들이 현재 시장의 반응이나 관객들의 호응에 밀착할 수 없었던 것에 반해 『판타스틱』은 월간지의 속도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재의 관심을 접속한다. 또한 장르문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국에서 개봉되는 다양한 국내외의 장르영화들을 아우름으로써 문학에서 문화를 아우르는 포용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판타스틱』을 장르문학이라는 <협소>한 틀을 옹호하는 잡지로 보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문학과 영화를 아우르는, 장르문학을 중심에 두기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소설을 나란히 놓고 견주는 긴장감 넘치는 문학 혹은 문화 잡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중략)
_2008년 작가세계 봄호, 이상용(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