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과 취향

from 편집 일기 2007/08/25 18:00
판사 차리고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일이 워낙 몰려서 ‘외부 교정자’를 뽑을 일이 생겼다. 외부 교정자란, 말 그대로 출판사 밖에서 원고의 교정과 교열을 맡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교정과 교열은 워낙 그 '원칙'이 출판사마다 제각각이어서 까다로운데다가, 들어가는 품에 비해 비용은 높지 않기 때문에--북스피어 같은 출판사는 이 비용도 아까워하며 그냥 내부에서 꾸역꾸역 다 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교정’이라는 美名하에 출판사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여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ㅎㅎ--나는 처음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출판인들이 많이 모이는 사이트에 모집 공고를 올린 지 딱 반나절 만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할 용의가 있다는 메일을 보내왔고, 그 이후로도 거의 한 시간에 한 사람씩 메일을 보내는 바람에, 마감을 이틀이나 당겨야 했다. 지원자는 총 서른 명. 필요한 인원은 딱 한 명. 누가 좋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당초 서너 명 정도를 예상했던 나는 지원자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생각으로 (귀찮을 테니) “사진도 필요 없고, 자기 소개서도 그동안 작업한 목록만 간단하게” 하는 식으로 모집공고를 걸었더랬다. 과연 그 공고에 맞게 간단깔끔명료한 지원서들이 많았고, 아예 다른 양식 없이 메일에 간단하게 서술하여 보낸 사람도 있었다. 다른 출판사에 지원할 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 민망한 파일도 몇몇 눈에 띄었다.

대부분 경력들이 상당히 훌륭했다. 좋은 학벌에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부터 큰 출판사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책들의 책임 편집을 맡은 사람까지. 근데 웃기는 일이 생겼다. 어쩐지 학벌이나 학력보다는, (귀찮을 테니 굳이 붙일 필요 없다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프로필 사진을 붙여가며 그간 진행했던 작업 목록이 포함된 무척 진솔한 자기소개서를 보낸 사람들 쪽으로 자꾸 마음이 쏠리는 게 아닌가. 심지어 북스피어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까지 첨가되어 있음에랴.

결국, 학력도 ‘학력’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신경을 쓰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문제 쪽에 관심이 쏠려 버리는 세상 사람들의 변덕스러움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 말이다. 이런 얄미운 말을 하고 있는 나는, 그래서 어떤 사람을 뽑았는가. (이력서를 보낸 사람들을 기준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대단하진 않지만) 나름 경력도 좋고, 북스피어에 애정이 있으며, 무엇보다 자기 얘기를 진솔하게 해 준 사람을 뽑았다. 같이 일하기 편한 곳에, 말하자면 출판사에서 가까운 데에 살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인간은 아무리 자질이 떨어진다 해도, 자신이 남에게 이해받는다는 확신을 가지면 올바른 길을 찾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한몫을 했다면, 이건 너무 같잖아 보일라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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