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쯤 전인가 모 사회과학 출판사(첫 직장이었다)에서 『불가사리』라는 책을 만들 때의 일이다. 지금은 절판돼 구할 수가 없지만 당시에는 홍세화 선생이 기획을 맡고 고종석, 최내현, 김동춘, 한홍구 등등 유명한 필자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나름 화제가 됐던 책이다. 컨셉은 ‘극우 비판’이랄까. ‘극우’라고 하니 뭔가 좀 촌스런 느낌도 드는......이라기보다 꽤 웃기다(비웃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한 의미로 웃기다는 말이다. '극우야 들어라'라니 무슨 활극 같지 않습니까?). 그 책의 서문은 어찌어찌 하다가 출판계에 갓 입문한 내가 쓰게 됐는데 이것 또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웃겨. 그렇다고 못 쓴 글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하여간에 태어나서 두 번째로 만들어본 단행본이니 만큼 실수도 상당히 많이 했더랬다. 책등에 저자 이름 날려 먹은 건 기본이고 ‘터잡기’니 ‘대수’ 개념도 없던 터라 구성도 엉망. 오자도 상당하다. 이 정도 실수만 했어도 애교로 넘어갈 텐데 기어이 대박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으니, 저자가 보내준 원고를 착각해서 엉뚱한 원고를 책에 실어버린 것. 무슨 얘기냐면, 그분이 처음 보낸 원고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왕창 고친 원고를 다시 실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마감일에 쫓겨 급하게 마무리하다가 미처 그걸 챙기지 못했던 거다. 물론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야 절대로 알 도리가 없지만 책을 받아본 당사자는 깜짝 놀라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 : 아니, 두 번째 원고를 실어 달랬더니 첫 번째 원고를 실으면 어떡합니까?
나 : (아직까지 상황 파악 못하고) 네?
그 : 원고가 잘못 들어갔다구요.
나 : (그제야 희미하게 기억이 떠오름) 앗!!!!!!!!
어떡하나.
다행히 필자 분께서 엄청 화를 내신 건 아니었고 책 내용에 크게 하자가 생겨서 독자들이 어필한 것도 아니었고 어찌됐건 간에 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고 필자 분께서도 그렇다면 2쇄 찍을 때는 반드시 원래 원고로 바꿔주기를 바란다는 선에서 양해해 주셨고 결국 이 일은 그분과 나만 아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고... 뭐 그렇게 된 스토리다.
어떤 글이 안 그렇겠냐만, 각을 잡고 쓴 글이라서 내용이 바뀌면 곤란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대박 실수를 저지른 나는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죄송스럽다는 정도로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지만.
얼마쯤 전에 어느 평론가(와 출판사)가 ‘순수문학’을 하는 소설가와 ‘대중문학’을 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혼돈해 버린 사건이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직 ‘사건’이 진행중인 모양인지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교환해 줄 터이니 반품해 달라는 메일을 보내왔기에, 더 ‘정확하고 알찬’ 내용을 담아 새로 만든 책으로 바꿔준다니 일견 반갑기는 하지만 그거야 나중에 따로 도서관에라도 가서 문제의 ‘정확해지고 알차진’ 대목을 확인해 보면 될 일이고 이것도 기념인데 싶어 그냥 가지고 있자는 생각 끝에, 어라? 그러고 보니, 하고 나도 예전에 겪은 일이 떠올라 한 자락- 적어 봤다.
덧) 출판사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까 이름을 착각한 실수 정도는 눈 감고 넘어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의도로 쓴 건 절대 절대 아니니까 오해들은 마시고. 와, 근데 저 표지 다시 보니 기분 정말 묘하군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