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보고 계십니까. 선생님의 고국은 지금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분주합니다. 여러 작품이 다시 호출되어 드라마와 영화로 리메이크, 혹은 새롭게 제작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몇 군데 출판사에서 장편에 대한 계약을 맺고 번역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을 낸다는 소식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드라마 관계자도 있었습니다.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편집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을 내자고 결정한 것은 꽤 오래전 일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책의 출판권을 가진 유족분들은 쉽사리 계약에 응해주지 않았어요. 계약금이 작아서였는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건지, 답답할 따름이었습니다. 일본 출판사의 담당자를 직접 만나 채근해 봐도 그저 미안하다며 고개만 숙이더군요. 어쩌면 우리와 인연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연말 즈음, 출판권을 중계하는 에이전시로부터 드디어 “됐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애를 태우며 기다렸던 만큼,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계약에는 책임편집자인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동의도 필요했는데, 별다른 고민 없이 딱 하루 만에 결정을 내려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유족분들과의 계약 역시 중간에서 미야베 미유키 작가가 도와준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미야베 미유키가 편집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은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보다는 ‘미야베 미유키 편집’ 쪽에 더 매력을 느껴서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한국에서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가 많지 않고 그나마 당신에 대해 알고 있는 독자들의 경우에도 몇 개의 ‘장편’을 읽었을 뿐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장편뿐이었을까. 한국에도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나 <일 년 반만 기다려> 등의 단편은 이미 여러 차례 소개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대개 한두 작품이 ‘일본 문학 선집’ 등에 포함된 형태였지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여전히 ‘마쓰모토 세이초=장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당연히 장편이 훨씬 더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일 테지만, 그렇더라도 왜 장편이 많이 소개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의 배일정책으로 인해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본의 문학작품들은, 1960년대 4.19혁명 이후부터 조금씩 수입되었고 1965년 한일수교협상이 이루어짐에 따라 본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주로 세계문학선집 가운데 한두 권이 포함된 형태였으며 순문학이 주류를 이루었지요. 여기에서 이를 수용하는 ‘대중’과, 이른바 ‘문단’의 완전히 상이한 반응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시대 이후 복권된 일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언론과 문단의 반응은 우려와 경계 일색이었습니다. <일본 문학의 공습>과 같은 기사가 여전히 게재되고 있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일본문학에 대한 평가에는 늘 “문화적 침식”이나 “비윤리성”이라는 수식어가 동원되었습니다. 특히 일본문학의 사소설적 경향은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나 평가도 없이 한국문학의 안티테제로 부각됩니다.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보면, 오늘날 한국문학의 엄숙주의나 이데올로기적인 경향은 이때를 기점으로 공고해진 게 아닌가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문단의 반응에 상관없이, 일반 독자들이 일본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한국의 출판사들은 일본의 순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학도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마쓰모토 세이초, 모리무라 세이치나 이노우에 야스시 등의 작가들은 1970년대부터 여러 편이 수입되었고 1980년대에는 경쟁적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강우원용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당신의 작품은 무려 47편이 70번(1961년~2004년까지 중복출판 포함)에 걸쳐 번역 출판되었더군요.
어쩌면 이게 “왜 장편뿐이었을까”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 일본의 순문학이 활발하게 들어오던 시기에 당신의 작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일본에서 순문학보다는 대중문학 작가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국내 출판업자들은 당신의 작품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공산이 큽니다. 그리고 70, 80년대에 일본의 대중문학이 활발하게 번역되던 시기에는 주로 장편이 소개됩니다. 일본에서도 당신의 작품은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었을 테지요. 바꿔 말하면 당신의 단편은 (장편보다는)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은 장편과 다르다는 것을. 그것은 단편이 장편보다 낫다, 라는 가치평가와는 좀 다릅니다. (이런 식의 표현이 가능하다면)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왜 쓰는가’에 대한 필연성이 더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책임편집을 맡은 미야베 미유키 씨가 이번 컬렉션을 꾸미면서 맨 처음 소개한 작품이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었던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점을 환기키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이 장 제목을 ‘출발점’이라고 정한 이상, 여기에는 마땅히 데뷔작인 <사이고사쓰>를 넣어야겠지만, 감히 그것을 젖혀놓고 <어느 고쿠라 일기전>를 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제28회(1952년 하반기)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씨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였습니다. 나오키 상이 아닙니다. 사회파 추리작가라는 간판이 너무 압도적이라 이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기가 쉽지만.”
결국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다다르면 “결과적으로 세 권이 된 이 걸작 컬렉션에 난해한 기획의도 같은 것은 전혀 없”다고 머리말에서 밝힌 미야베 미유키의 기획의도가 좀더 분명해 집니다. 일본 독자들조차 난해하게 여겼을 ‘일본 현대사 유일의 군사 쿠데타’와 더불어 ‘패전 직후 일본의 모습’을 끝까지 추적한 쇼와서 연구가로서의 마쓰모토 세이초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고 싶다는 고집이죠. 이왕 소개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책임편집자의 결기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물론 마지막 장의 경우, 처음 마주했을 때는 이렇게 어려운 텍스트라면 ‘하권’쯤으로 돌려놓았어도 좋았을 텐데, 라며 책임편집자를 원망하기도 했지만요. 에헤헤-. 그만큼 겁이 났다는 얘기입니다. 화끈한 살인사건과 범인추적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실망하지 않을까. 혹시 한국의 독자들이 시시하게 여기지는 않을까. 어렵게 여기지는 않을까, 하는 기분이 내내 발목을 잡았거든요. 흐음. 어떨까요.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독자들마다 다르겠지요. 헌데 말이죠,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미야베 씨가 골라놓은 이 작품들이 마음에 드십니까.
책 말미에 등장하는 편집자들의 에피소드로부터 추정하건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요. “당연히 마음에 들지. 도대체 뭐가 어렵다는 거야. 그저 그런 줄거리만 좇으라면, 추리소설 같은 거 안 써”라고. 조금쯤 역정을 내시는 듯한 귀여우신 모습으로 말예요. ㅎㅎ
덧) 원본에 있는, 선생님과 미야베 씨가 아웅다웅하는 삽화를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요, 한국어판에는 넣을 수 없어서 좀 아쉬웠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