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라는 말은 ‘가장 잘 파는 사람(best-seller)’이라는 뜻이었다(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그러다가 1897년 미국의 문학잡지 「북맨」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잘 팔리는 서적’을 조사하며 베스트셀러라는 용어를 정식으로 사용하게 된다. 베스트셀러의 의미. 가장 잘 파는 사람-->가장 잘 팔리는 서적. 이렇게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여기에서의 베스트셀러는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메이저 출판사에서 밀기로 작정한 책?’. 혹은 ‘인터넷 서점의 메인화면에 올라간 책?’.
애써 비아냥거려 보지만, 출판사에서 밀기로 한 책이라거나 인터넷 서점에서 메인화면에 올린 책이 전부 이 비아냥거림의 범주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범주에 속하지 않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을 거라 믿고 있다. 다만 최근 출판계의 정가제 문제, 외서 계약금 백만 달러 돌파(미치지 않고야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 돈으로 샀다면 대관절 얼마나 많이 팔아야 한단 말인지!) 같은 소식들을 접하면서,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어서 해 본 말이다.
베스트셀러에 출판사의 ‘작전’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어지간한 독자들도 다 알고 있다. 아주 비근한 예로 지난달에는 자사의 책을 사재기하여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시킨 출판사 두 곳이 적발되기도 했다. 도서출판 밝은세상이 기욤뮈소의 소설을, 위즈앤비즈 출판사가 차동엽의 에세이를 되사들이다가 딱 걸리는 바람에, 2001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발효된 이후 최초(나름 역사적인 사건이다)로 벌금을 물게 생겼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을 테지만, 벌금이라고 해 봤자 얼마 되지도 않으니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 왜 내 주위에는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는 걸까. 읽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읽은 걸 쉬쉬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책을 자신의 책장에 꽂아놓는 것조차 창피해 하는 사람들뿐인 거다. 다들 안 읽었단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또 이상하다. 그런 인간들이 그 책의 내용은 쫙 꿰고 있다. 읽지도 않았는데 뭔 내용인지 다 안단다. 흠. 이와 같은 ‘기현상(분명 100만 권이 팔렸다고 하는데 주위에 읽어본 사람을 구경하기는 힘든 현상)’에 의문을 품고 작가는 이 책 『취미는 독서』라는 책을 쓰기에 이른다. 도대체 그 100만 권을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파헤치기 위해 나섰다는 저자는 어느날 대학생인 듯한 두 사람의 대화(“그거 셰익스피어가 쓴 책이야?” “셰익스피어, 그게 누군데”)를 듣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모른다지만 셰익스피어를 모를 리가, 라고 당신은 의아해할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도 아니고. 셰익스피어를 모를 리 있겠어? 쯧쯧. 그러니 당신 같은 책벌레는 출세를 못하는 거요. 당신은 그들이 “정말 몰라?”라고 놀랄 만한 뮤지션이나 브랜드명을 모를 테니까. 그 점에선 피차일반이다. 이 세상에는 몇 천 부밖에 팔리지 않는 책과 100만 부나 팔리는 책이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내 생각엔 “셰익스피어가 누구더라?”라고 묻는 선남선녀의 마음까지 감동시키는 책, 이것이 100만 부나 팔리는 필수조건이 아닐까. 자기 자신을 지성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100만 부대의 책을 책장에 꽂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편견이다. 읽어보지 않고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시간이 아깝다고요? 그렇고말고요. 그러니 제가 읽어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취미는 독서』에서 ‘베스트셀러의 독자들은 과연 누구일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기실 저자는 이런 ‘같잖음’을 비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읽지도 않았으면서 함부로 얘기하는 족속들 말이다. H. L. 멩켄의 표현을 슬쩍 빌리자면, 어떤 책을 두고 이게 좋은 책이냐 나쁜 책이냐를 명확히 결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우화의 형태로 만들어졌든 재테크 서적으로 포장이 됐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다가 감정이입을 하면 그(녀)에게 그 책은 좋은 책인 것이다. 어떤 책을 두고 ‘좋다/나쁘다’라는 판단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불완전한 지성인의 착각”일 뿐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이 무리는 일 년 내내 책에 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다. 신간정보라면 모르는 게 없고 서평이나 책 광고도 자주 보고 읽은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며 부탁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에 독서 일기를 공개하기도 한다. 목적도 없이 서점이 있으면 들어가 살 생각이 없던 책까지 산다. ‘책을 둘 데가 없다’는 게 그들의 최대 고민거리지만 그렇다고 몽땅 팔아치울 용기도 없다. 그중에서도 꼴불견은 자신의 병을 병인 줄 모르고 오히려 긍지로 여기는 무리이다. 베스트셀러를 보면 “시시한 책만 잘 팔리고 있으니...”라며 탄식하고, 출판사가 경영난이라 하면 “양서가 안 팔리는 세상 뭔가 단단히 잘못 됐어”라며 비분강개하다가 마침내 “출판 문화가 위기에 처했다” “교양의 붕괴다”라며 법석댄다.
이쯤에서 고백해야겠다. 이 대목을 읽다가 ‘약간’ 부끄러웠다. 딱 한 권 읽었을 뿐인 주제에 에쿠니 가오리가 어떻다느니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논평한 자가 바로 이 몸이다. 지난번 국제도서전에서는 에쿠니 가오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며 장사진을 이룬 사람들을 향해 조소를 날리기도 했다. 탄식하다가 비분강개 비슷한 행위도 했다. 송구하다. 이 자리를 빌어 국내의 모든 에쿠니 가오리 팬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이제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반드시 그녀의 책을 사서 읽은 뒤에 비판이든 비난이든 하도록 하겠다. 암튼,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발언하지 않기로. 이건 예전부터 생각했던 ‘역지사지’이기도 하다. 역지사지라니 무슨 소리냐. 가령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을 냈다 치자. 그런데 어떤 독자가 읽지도 않았으면서 ‘미야베 미유키는 매번 패턴이 똑같다느니 독자를 훈계하려 한다느니’ 하며 읽지도 않은 감상을 (자신만 볼 수 있는 일기장도 아닌 마당에) 밑도 끝도 없이 게시판이나 자신의 블로그에 떡하니 올려놨다고 가정해 보자. 아아, 정말이지 가슴이 찢어진다. 나, 그런 글을 목도하고 한동안 우울했던 적도 있다. 비판이 싫다는 게 아니다. 사실 『취미는 독서』 정도의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고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몇 권의 책을 이미 주문해 버렸다. 물론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게다가 『취미는 독서』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베스트셀러들은 태반이 국내에서도 발 빠른 메이저 출판사들이 출간(과연 대단!!)하여 빅히트시킨 책들이기 때문에 읽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철도원, 냉정과 열정 사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오체불만족,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어떤가. 한 번씩은 들어봤거나 읽어본 책 아닌가. 그중에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도 포함되어 있다. 둘 다 일본에서는 엄청나게 팔렸으니까 포함되었을 테지. 흐음. 암튼 미야베 미유키와 텐도 아라타라니... 최소한 북스피어 독자들 가운데는 급땡기는 분들이 있을 듯한데... 어떤가요? ㅎㅎ
덧) 일전에 읽은 고종석 씨의 『바리에떼』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존 그리샴처럼 잘 팔리는 소설을 써서 파스칼 키냐르처럼 안 팔리는 소설을 쓸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뭐 하나만 딱 잘 팔아서 조너선 캐럴 같은 안 팔리는 소설도 낼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