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 북스피어의 독자교정은 당연히 번역자와 편집자가 해야 할 오탈자의 수정을 ‘제3의 눈’을 가진 정예 독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자못 얄팍하고도 얍삽하기까지 한 어두운 의도로 시작했다. 벌써 5년쯤 됐으니, 어지간한 독자들은 다 알아 버렸으리라 본다. 혹자는 ‘노동력 착취’라고도 했다. 동감한다. 딸랑 자장면 한 그릇 사 주고 하루 종일 부려먹으니, 노동력 착취 맞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몇몇 독자들이 오탈자 수정은 뒷전으로 미룬 채 감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독자 스스로 ‘독자교정’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잡아 버린 거다. 읽는 데 열중하느라 오자는 거의 못 잡았네, 조금 미안해, 등등의 멘트와 함께 말이다. 그 어느 순간이 언제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뒤로 우리는 ‘첫 독자’들의 감상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음. 반응이 별로군. 초판 제작 부수를 줄여야겠어.
―오 재미있었다니 간만에 언론 릴리스도 좀 하고, 서점에도 밀어볼까.

사실 편집자들이 생짜로 객관적 가치 평가를 내리기는 무척 힘들다. 그들은 이미 텍스트에 완전히 감정이입 되어 버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때로 편집자들이 제가 만든 책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게 아닌가 혐의를 두는 분들도 있는데, 과장이 절대 아니라고 딱 잡아떼지는 못하겠지만, 진짜로 지가 만든 책에 대해서라면 덮어놓고 재미있게 느끼는 거라고 보는 편이 맞다.

연애편지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사랑에 빠져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들은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의 견지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의 견지에서 부분을 읽는다. 콘텍스트와 애매성에 민감해지고,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진다. 말의 색깔과 문장의 냄새와 단락의 무게를 알아차린다. 심지어는 구두점까지 고려에 넣는다.

대개 편집자라는 인간들은 제가 만드는 책의 텍스트를 연애편지 읽듯 읽는다.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이러니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나. 이러고도 재미가 없다면 책을 안 내는 게 맞고. 아, 저 위의 연애편지 운운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독서의 기술How to Read a book>이라는 책에서 모티머 애들러 교수가 한 말이란다. 여튼.

그렇기 때문에 첫 독자들의 첫 반응은 중요하다.

헌데 새삼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다음 달에 나올 신간을 사전 홍보하기 위해서다.

안다 안다. 우리 블로그에서만 할 테니까 너무 눈살들 찌푸리지 마시라. 

사실 다음 달에 출간할 『리피트』, 약간 걱정했다. 일단 야심차게 펴낸 같은 작가의 『이니시에이션 러브』 판매가 너무 저조했다. 초판 3,000부 찍었는데 여태껏(8개월쯤) 달랑 1,800부 팔았다. 지금쯤이면 초판이 소화되고도 남아야 된다. 곤란하다. 계약금도 많이 썼는데. 상당히 곤란하다. 게다가 제목만 봐도 딱 감이 오겠지만 소재가 타임슬립이다. 타임슬립. 이거 좀 진부해 보이지 않나.

물론 애초에 이런 거 저런 거 다 감안하고 계약했다. 검토단계에서 충분히 재미있다 여겼다. 팔 수 있겠다 싶었다. 몇 번씩 읽고 난 지금은, 재미있어 죽겠다. 하지만 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슬슬 걱정이 된다. 작가의 명성에 기대 팔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애초에 북스피어라는 출판사, 없는 살림에 광고는 꿈도 못 꾼다. 이 대목에서 우리끼리 아무리 재밌다고 한들 독자들이 재미없어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번 독자교정, 중요했다. 

지방독자 우선 선정 원칙에 의거, 총 네 사람에게 보냈다. 현재 세 명으로부터 답신이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폭발적’이라... 내 입으로 말은 했지만 거참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다. 딱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명은 게시판에 글 남겨주었고, 두 명은 본사로 서신씩이나 보냈다. 그중 한 명은 무려 자필로 감상을 피력해 주었다.

독자교정 소감 멘트를 자필 편지로 받아보기는 또 처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만큼,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었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읽으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도록 하겠다.


더불어,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한 글자 한 글자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썼을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북스피어 일동, 제대로 감동해서 아침 회의를 하는 내내 거의 입을 떼지 못했음도 알려드리고 싶다. 내용 또한 알차기 짝이 없었다. 주례사가 아님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아아 다른 분들도 알찼어요, 정말이에요). 서신을 보내 준 두 분, 게시판에 알찬 감상을 남겨준 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덕분에 약간 자신감 생겼다. 나머지 한 분, 반응 보여주시라.

덧) 여기까지 쓰고 확인해 보니 마지막 한 분의 메일도 도착했다. 바빠서 미처 다 읽지 못하셨다고 한다. 진짜 바쁘셨나 보다. 혹시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만 거라면, 음... 설마. ㅎㅎ
 



 


말에는 도서관에 간다. 매주는 아니지만 자주 가는 편이다. 대개 정독으로 가는데, 신간이 나온 그 달에는 남산도서관, 광진정보화도서관, 신촌평생학습관 등등을 전전하며 북스피어 책을 신청한다. 도서관 시스템은 잘 모르지만 직접 신청하면 바로 채택해서 문자로 알려준다.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서는 책을 일별하고, 분기별로 문학계간지를 훑어본다.

흔히 한국 도서관 시스템의 낙후성을 개탄하곤 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다. 도서관에서도 상당히 세련된 강좌들을 많이 진행한다. 사무실이 광흥창이었을 때는 신촌에 사는(혹은 근무하는) 주민‘만’을 대상으로 열린 출판사 대표와 명사들의 특강을 듣기도 했다. 수강료도 싸다. 이런 강의들은 들어두면 나중에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강사들과 친해진다든지.

동대문정보화도서관에서 개최하는 문화프로그램은 주목해 볼 만하다. 강유원 선생의 고전읽기와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의 강연은 듣고 싶었는데 놓쳤다. 전자는 미처 몰랐고, 후자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9월에는 조영일 선생이 수요인문학의 강연자라고 한다. 조영일 선생의 강의는 ‘다지원’에서 처음 들었고, 이번에도 신청했다. 세이초의 <어느 고쿠라일기전>을 다룬단다. 아직 마감이 남았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신청해 보시길.
 



덧) 것, 있다, 수...를 사용하지 않고 써 봤는데(말하자면, 테스트용 글임),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짧은 글인데도 어렵긴 어렵네요. 좀 어색한가효? ㅎㅎ  

사례 1
일전에 내 아우가 어떤 책을 읽고 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책은 번역을 아주 잘한 것 같아.” 무슨 책을 읽고 그러나 싶어 봤더니 북스피어에서 나온 일본 번역소설이다. 우리 책을 칭찬하는 거니까 일단 기분이 좋긴 했는데, 왜 그렇게 느꼈는지가 궁금했다. “응,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히더라구.”

사례 2
공교롭게도 며칠 후, 똑같은 책을 두고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책은 번역이 좀 별로인 것 같아.” 번역이 별로라니.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도통 안 읽혀.” 잘 안 읽히는 이유가 번역이 별로이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재차 물었지만 딱히 다른 이유는 듣지 못했다. 


비단 일본 번역소설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번역소설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냉정한’ 평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상세히 밝혀놓아서 역자와 출판사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타부타 평가도 없이 덮어놓고 좋다거나 나쁘다고 지적하는 독자들도 의외로 많다.

나는 이러한 평가가 직역과 의역에 대한 독자들의 ‘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지하다시피 “원어에 충실”할 것인가, “번역어에 충실”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해묵은 논쟁거리이고 여전히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딱 부러진 결론이 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많은 번역자들과 편집자들은 대개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면서도, 끝없이 고민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고민에 대해 이희재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처음부터 나는 포부가 컸다. 원문에 충실하되 한국어로서도 자연스러운 그런 번역을 하고 싶었다. 결코 이루기 어려운 꿈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원문에만 얽매이는 직역이 ‘낮은 포복’이고 원문보다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중시하는 의역이 ‘고공 비행’이라면 나는 아슬아슬한 ‘저공 비행’이 좋다고 생각했다. 원문의 결을 어떻게든 번역문에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원문에 가장 가까운 표현을 이리저리 궁리하다 보니 한국어의 구석구석을 보통 사람들보다는 자세히 들여다본 것도 같다.

번역을 하면서 나는 한국어에 눈떴다. 작가가 되어 한국어 자체만을 놓고 씨름했더라면 한국어의 개성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 일본어, 독일어 같은 외국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다 보니 한국어의 남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한국어답다는 개념이 차츰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국어가 이미 번역서를 통해 영어와 일본어에 상당히 깊이 물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번역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때부터 조금씩 바뀌었다. 이미 외국어에 많이 물든 한국어에 외국어 문체의 흔적을 더 남기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원문에서 멀어지는 고공 비행의 길로 날아올랐다.
_『번역의 탄생』/ 이희재 지음/ 교양인/ 2009년 2월


해당 문장의 앞뒤로 왜 저자가 직역에서 의역으로 비행방식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근거와 과정 등이 적혀 있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엄청나게 고민했을 터이고, 쓰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웠으리라. 저자도 밝혔다시피 정답이 없는데다 미묘하고 껄끄러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미묘하고 껄끄러운가를 얘기해보고 싶지만 역시 미묘하고 껄끄러운 문제이니 만큼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한 권의 책을 두고 상반된 평가를 내린 두 사람의 사례에서 눈에 띄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둘 다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원어를 모르면서 번역의 질을 지적한 두 사람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적어도 두 사람의 ‘감상’이 번역 방식에 대한 평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례에서 예로 든 책에 오역이 없다는 걸 전제로 유추해 보자면, 이건 직역이나 의역의 문제라기보다 흔히 간과하기 쉬운 번역투의 문제가 아닐까. 두 사람은 문장의 좋고 나쁨(도 주관적인 판단이다), 혹은 문체의 호불호(특히 일본 번역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유의 표현 자체를 못 견뎌한다거나)를 번역의 문제로 규정해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문장의 질도 번역에 포함된다. 엄밀히 말하지 않아도 포함되겠지만.

‘번역투’라는 어정쩡한 단어를 써버리고 말았는데, 예컨대 복문이나 수동태, 입말의 문어체 등을 뜻한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굳이 번역어뿐 아니라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가급적 피하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상기해 볼 때, 사례로 든 두 사람의 ‘번역이 나쁘(좋)다’는 표현은 틀렸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오해의 소지가 남는다.  

대체로 독자보다 ‘약간’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편집자들(요즘에는 워낙 편집자 수준으로 실수를 지적해내는 독자들이 많으니까)의 입장에서 얘기하자면, 이것은 ‘교정ㆍ교열(도 물론 번역의 속한다)’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번역원고의 교정ㆍ교열 작업을 할 때 맞닥뜨리는 고민들도 이른바 ‘번역투’의 문장들을 어느 선까지 고쳐야 하는가부터 시작된다.

이때의 ‘어느 선’이라는 부분 역시 미묘한데 마침 안정효 선생이 『글쓰기 만보』(안정효 지음/ 모멘토/ 2006년 8월)에 잘 정리해 놓았기에 몇몇 대목을 옮겨본다. 다시 말하거니와 아래 인용한 대목들은 눈여겨봐 두면 일반적인 글쓰기에도 틀림없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제목은 임의로 정했고, 번호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정리했다.

1. ~것, 있다, 수

번역을 가르칠 때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이 써놓은 글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 세 단어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믿어지지 않으면 지금까지 써놓은 일기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에 모두 빨간 줄을 쳐보기 바란다. 자신이 쓴 글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쓴 비소설류의 모든 글이 비슷한 지경이다.

‘있다’만 솎아내더라도 오히려 문장이 간결해져서 힘이 생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장을 다듬을 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어서, 긴 문장이 유식하다는 착각에 빠져, ‘간다’를 ‘가고 있다’라고만 해서도 안심하지 못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까지 한다.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표현을 놓고 생각해보자. ‘있다’는 맹장을 잘라내거나 썩은 이를 뽑듯이 그냥 없애버리면 된다. 그러면 “집으로 왔던 것이다”가 된다. 그리고 ‘것’도 가차 없이 자르고는 “집으로 왔다‘라고만 하더라도 작품 전체의 흐름에도 별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것’을 고치라 하면 대부분의 경우 단순히 ‘것’이라는 단어를 ‘일’ 따위의 다른 단어로 바꾸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니까 나무를 가꾸면서 잎사귀만 어루만지는 격이다. 정원을 가꾸려면 때로는 나무를 통째로 뽑아버리고 새 나무를 심기도 한다. 문장의 나무도 마찬가지다. 수북하게 매달린 단어 잎사귀들 가운데 시들고 말라죽은 잎이 많으면, 아예 그 나무를 바꿔 심어야 한다. 그러니까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이다”에서 ‘있다’와 ‘것’이라는 두 단어 잎사귀만 다른 단어로 바꿔 넣으려고 생각하지 말고, 아예 문장을 새로 쓰라는 얘기다.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라고 말이다. (혹은) “몸에 좋은 것이 시장에서 잘 팔린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는 ‘것’을 다른 단어로 바꿔 넣는 차원에서 머무르지 말고, “몸에 좋다 하면 무엇이나 다 잘 팔린다”라고 문장 전체를 아예 새로 쓰라는 뜻이다.

‘있다’와 ‘것’과 더불어 ‘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글쓰기에서 ‘3적(敵)’으로 꼽힌다. “누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라거나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영어에 중독된 귀에 자칫 ‘can'으로 들리는 이런 표현은 “누전을 일으키기도 합니다”라거나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릅니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다양화하면, 우리 말 같지 않은 어색함이 사라지고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2. 하나의 문장 속에 중복되는 어미와 토씨.

나는 글쓰기를 하면,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읽어보고는, 중복된 어미와 토씨를 일일이 걸러내어 고쳐놓는다. 예를 들면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동료에게서”라는 문장을 보자. ‘직장에서’와 ‘동료에게서’의 중복된 어미가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동료로부터”라고 고쳐놓았다.

또 어미가 중복될 때마다 “나 길에”를 “나는 가던 길에”로, “좋 사람”을 “훌륭한 사람은”으로, “그렇게 말하”는 “그렇게 말하고 싶으며”로, “그러 너희 누구냐”는 “너희들 왜 그러느냐”로, “그러니 어떨”는 “그러니까 어떨지”로, “그래 보니”는 “그래서 가봤더니”라는 식으로 표현을 바꿔가며 변화를 준다. 그러면 단순히 이어지는 어미만 달라지지 않고 문장 전체의 획일적인 양상이 다채로워지면서 답답한 문장에 숨통이 트여 싱싱한 기운이 생겨난다.


 

3. 힘 빠지는 표현

“우리 제품은 확연히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을 보자. 아무리 봐도 그런 어정쩡한 ‘확연한 차이’를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 것 같은지 어쩐지는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힘을 빼는 어법은 주체성과 자신감의 결핍 상태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나'를 내세우지 않으려는 한국인의 겸손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4. 수동태

수동태여서 요즈음 가장 귀에 거슬리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뉴스보도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한 “~라고 조사되었습니다”이다. ‘조사되었다’는 ‘조사해본 결과 ~한 사실이 밝혀졌다“라는 표현을 컴퓨터 언어로 기호화한 단어이다. 과거에는 이런 문장을 ”~라고 당국은 밝혔다“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사회적인 집단 정서와 언어문화가 여성화하기 시작하면서 선언적 책임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점점 모호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5. 지나치게 많은 접속사

45년 전 대학생이던 시절 처음 영어로 창작 공부를 시작한 무렵에 나는 루돌프 플레시의 『잘 읽히는 글쓰기』에서 정말로 놀랍고도 기막힌 교훈을 발견했다. 그것은 자신이 써놓은 글에서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모조리 제거하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고는 ‘그래서’와 ‘하지만’ 역시 제거하라고 했다. 막히기는커녕 오히려 청소를 끝낸 하수구처럼 모든 문장이 맑은 물소리를 내며 잘 흐르리라는 얘기였다.

 

덧) 그렇다면 과연 원어를 모르는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번역이 나쁘(좋)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한가 안 온당한가. 음,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  


독자교정 발표!!

은빛물결 님, vikiniking 님, 스컬리 님, 토성의밤 님
네 분께 리피트 원고를 보내드리겠습니다~! choochoo@booksfear.com 으로 받으실 주소, 성함, 연락처 보내주세요. 우체국 문이 닫기 전에 보내주시면 캄사;_;

다른 분들도 정말 열렬한 참여 감사합니다;ㅁ; 다음에 또 우편교정(?!)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저희가 지방으로 찾아가는 독자교정 써~비스를..(콜록. 절대 그냥 제가 놀러가고 싶어서 하는 말 아닙니다=ㅅ=)


>덴도가 인상적이었던 건 저뿐이었군요, 흑ㅜㅠ 덴도는 미야코(side-B에 나오는 새여자친구)의 옛날 남자친구입니다. '이니시에이션'이란 말을 꺼낸 장본인입죠. 나름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는....



우리는 몇 번이라도 인생을 되감을 수 있다

리피트의 ‘문’을 통과해 현재의 기억을 지닌 채 열 달 전 자신으로 돌아가게 된 선택받은 열 명의 남녀.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간 그들은 다시 사는 인생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아니라 ‘다음 리피트에 또 참가할 수 있는가’에 목을 맨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몇 번이고 다시 살기를 택하려는 그들의 욕망에 이누이 구루미는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사는 삶(리피트)에서 손에 넣은 재물이며 명예를 포기하는 것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특권을 잃는 것에 더 강한 저항감을 느끼는 인간 심리의 발견이야말로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오모리 노조미(평론가)


여러분 구루미쨩★이 타임 트래블 청춘 미스터리로 돌아왔습니다.
<이니시에이션 러브>에서 잠시 등장하면서 온갖 포스를 뿜었던 덴도를 기억하시나요? 검은 양복을 빼입은 그 남자가 다시 옵니다.

10번째 타로,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힌 10명의 남녀.
그들은 현재의 기억을 가진 채 열 달 전 자신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큰 돈을 벌기 위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또는 그저 재미 삼아 '리피터(리피트를 해서 과거로 돌아온 사람)'가 된 그들.
모든 게 순조로울 것 같았던 그들 곁에 예기치 못한 죽음이 찾아옵니다.
한 명, 또 한 명 살해당하는 리피터 동료들. 독자적으로 '리피터 살해 사건'을 수사해 나가던 그들은 결국 하나의 진실에 다다릅니다.

작년 가을 <별을 쫓는 자>에 이어 꼭 일 년만에 선보이는 SF네요. 그만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사정상 사무실 독자교정을 못하게 되었지만 대신 오랜만에
우편으로 독자교정 합니다! 거주지 상관없이(단, 지방 독자 우선) 많이 참여해 주세요!

신청기간:2009년 8월 19일~2009년 8월 20일
신청방법:열렬한 댓글로~!

21일 발표해서 그날 바로 택배로 보냅니다. 받으셔서 꼼꼼하게 읽으신 후 8월 25일(화)까지 수정 부분을 메일로 보내주시거나 우편으로 다시 보내 주시면 됩니다.

-秋-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휴가 다녀온 호얍니다. 이번 달 늦은 이유는 휴가입니다. 처가와 친가 양쪽 집안으로 한 번씩 여행을 다녀왔더니 이렇게;;; 암튼 각설하고! 지난 밀실 트릭클로즈드 서클에 이어 이번에는 서술 트릭입니다. 독자들을 속여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준비하는 장르인지라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공정하지 못한 트릭이라며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요, 서술 트릭이란 범인이 탐정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마련한 장치가 아니라 작가가 독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마련한 장치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퀴즈를 기억하실 거예요. “자, 당신이 이제 버스 운전사입니다. 승객은 남자 다섯에 여자 다섯 명이 타고 있어요.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남자 둘이 내리고 여자 둘이 탔습니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남자 셋과 여자 한 명이 탔습니다. 세 번째 정거장에서 남녀 커플이 내렸습니다. 네 번째 정거장에서 할머니 두 분이 타고 아가씨가 둘 내렸습니다. 다섯 번째 정거장에서 아저씨 세 분이 올라탔습니다......  그러면 버스 운전사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글로 이렇게 써놓았으니 처음 보는 분들도 쉽게 함정을 알아차리실 수 있겠죠? 버스 운전사의 나이는 바로 ‘당신’의 나이입니다. 정거장마다 오르내리는 남자와 여자 승객의 수에 신경을 쓰느라 맨 처음에 “당신이 버스 운전사”라고 한 가정을 까맣게 잊고 말지요. 마지막에 “당신이 운전사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해 주어야 비로소 일종의 난센스 퀴즈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을 감추거나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니니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없지요.

이런 식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과장하여 정작 중요한 일들을 잘 보이지 않게 가리거나 특정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 방법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착각하게 만드는 일을 미스터리에서는 ‘미스 리드(mislead)’라고 해요.

독자들은 작가가 정해진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걸려들 수밖에 없지만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구성하지 않으면 치사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어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두고 엘러리 퀸은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비난하기도 했지요. (다들 아는 트릭이지만 혹시 읽지 않은 분이 계실 것 같아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

저는 중학교 때 저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추리 소설도 있다니! 이런 식이라면 범인을 알아맞히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은 그만이거든요. 또한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곳곳에 장치된 단서들을 쫓는 재미도 쏠쏠하고. 트릭을 미리 알게 된다면 재미가 반감되니 인터넷 곳곳에 널린 정보 폭탄은 조심하시길!! 사실 서술 트릭인지 밀실 트릭인지 뭔지 모르고 읽는 편이 충격과 재미는 더욱 크지만. -虎-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김성기 옮김, 한스미디어
'서술 트릭'이라는 이름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린 장본인이라고나 할까요. 이 작품의 평가는 반반인데, '예상치 못한 재미'와 '예상치 못한 허탈감'. 여러 수상력 등으로 관심을 집중받은 작품이기에 더욱 그런 듯합니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권일영 옮김, 시공사
신본격 미스터리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두 번째 소개작. 단순간명하면서도 서술 트릭의 묘미를 잘 살린 작품인데 간혹 무슨 반전이라는 말인지 못 알아차리는 독자분도 계시는군요;; 전 <미륵의 손바닥>도 재밌게 읽었어요.

<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권일영 옮김, 한스미디어
이른바 '도착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죠. 서술 트릭의 대가로 알려진 작가답게 멋지고 흥미진진한 구성을 선보입니다. 서술 트릭이라는 장치를 걷어내고도 읽는 재미가 듬뿍 담겨 있으니 꼭 읽어 보세요. 곧 두 번째 작품 <도착의 사각>도 출간된다죠?

<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노블마인
이 작품은 서술 트릭을 얘기할 때 그다지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그것은 작품성이나 재미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서술 트릭'만으로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차 서술 방식에 촘촘히 쌓아 올린 심리 구조들은 제법 괜찮은 작품 이상으로 슈노 마사유키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만들지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서수지 옮김, 북스피어
서술 트릭하면서 이 작품을 빼놓으면 서운하지요! 에헷. 특이하게도 범죄와 사건이 아니라 달콤쌉싸름한 청춘의 한 장면을 서술 트릭으로 짜맞춘 소설입니다. 소설 구석구석에 배치한 온갖 단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재미로 소설과 미스터리의 재미를 구축하고 있어요. 겉모습이 미스터리가 아니라 청춘 러브 소설이라 추리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조금 심심했나효.

여사님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눈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신 여사님 팬 여러분, <메롱>입니다. 아직까지 저게 진짜 제목이야? 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예에, <메롱>은 미야베 미유키 여사님의 신간 제목입니다. 온라인 서점에는 거의 등록(알라딘 / 예스24 / 교보문고)되었고요, 주중으로 오프라인 서점에도 매대에 오르리라 생각합니다. ^^

겉모습을 보면 북스피어에서 나온 여사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당당한(?) 위용을 자랑합니다만 두께에 겁 먹으실 필요는 없어요. 사실 제2막을 읽으려면 <메롱>부터 시작하시라고 권할 만큼 유쾌+발랄합니다. 완전 귀여운 오린을 보는 재미만으로 560페이지를 순식간에 읽어제끼실 수 있습니다. 아직 여사의 시대물을 시작하지 못하셨다고요? 예, <메롱>부터 시작하세요. -虎-

수로 옆에 생긴 요릿집에는 다섯 명의 귀신이 살고 있다...


요릿집 후네야의 외동딸 오린은 고열을 앓고 난 후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이들을 보게 되었다. 후네야에 함께 사는 다섯 명의 귀신들. "메롱"만 하는 얄미운 오우메, 언제나 태평한 미남의 젊은 무사 겐노스케, 상냥하고 아름다운 오미쓰, 무뚝뚝하지만 솜씨 좋은 안마사 와라이보, 연회에서 난동을 피운 문제 귀신 덥수룩이. 그들이 이곳에 살게 된 것은 30년 전 일어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

 

타스틱 발행인이자 북스피어 공동대표인 최내현 씨가 시사in에 기고한 글이다. 오랜만에 시사in에 들어갔다가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최내현 씨가 딴지일보 편집장이었을 때 나는 아웃사이더 편집자로 맨날 그에게 원고 달라고 떼를 썼는데, 어느 새 십 년 가까이 흐른 오늘도 여전히 번역 원고 달라며 떼를 쓰고 있으니, 이거 참 기분이 묘하다. 음. 지금 붙들고 있는 원고는 당최 언제 줄 생각인지... 얼른 원고 내놔랏!  

(아아 아래 글은, 이명박 대통령님의 마지막 멘트가 너무 웃겼어요. ㅎㅎ)

**

필자의 부업은 번역이다. 고명한 전문 번역가 앞에서야 명함도 못 내밀 경력이지만 영어 소설 몇 권을 우리말로 옮긴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영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부딪히는 가장 큰 어려움이 서로 대화할 때의 호칭과 존대·하대 여부다.

원문에서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도 서로 이름을 부르면 된다. 혹은 ‘you’라는 편리한 2인칭도 있다. 하지만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마이클, 부탁 하나만 들어줘”일 수도, “아저씨,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일 수도, “자네, 내 청 하나만 들어주게”일 수도, “사장님, 저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일 수도 있다.

특히나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은 정말 번역하기 힘들다. (실생활에 거의 쓰이지 않는) ‘당신’이라고 부르자니 너무나 어색하고, 그렇다고 (최근 많이 쓰이는) ‘사장님’은 더더욱 이상하며, ‘댁’이라고 하려니 무례해 보이고, ‘선생님’이라고 하려니 너무 무거워지고….

최근에 읽은 한 번역 소설에서는, 연인 사이이자 동거까지 한 남녀 주인공이 첫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시종일관 서로 존댓말을 썼다.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연인 사이가 그다지 친해 보이지 않아 필자에게는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상호 하대가 더 적절하지 않았나 싶었다.

이런 난점은 외국 드라마나 영화 번역의 영역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지적한 바 있다. 왜 부부 사이에 남자는 하대하는데 여자는 시종 존대하는가? 왜 여자는 자신에게 위해가 가해질 때조차 “이거 놓으세요! 아프단 말이에요!”라며 꼬박꼬박 상대방에게 존대하는 것으로 번역하는가?

그런데 이런 번역상 어려움에 예외가 되는 인물이 있다. 대화 상대를 불문하고 무조건 반말을 해대는 것으로 번역해도 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예수님과 부처님이다. 예수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한다. “너희는 …하라” “네가 병이 낫기를 원하느냐?”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불자들아, 너희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나니….” “너희들은….”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예수나 평생 경건하고 고귀한 삶을 추구했던 부처가 오만하게 아무에게나 반말을 찍찍 했을 성싶지는 않다. (최근의 다양한 성경 번역 중에는 예수가 존대를 하기도 한다. “여러분은 …하도록 하시오.” “병이 낫기를 원하시오?” 하지만 옛 성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새 번역에서 예수의 권위가 지나치게 약한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독자들께서는 이미 눈치를 채셨을 줄로 믿는다.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사람으로는 예수님과 부처님과 이명박 대통령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을. 혹시라도 못 보신 분들은 인터넷에서 ‘이명박 반말’로 검색해보시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말을 해대는 대통령 특유의, 매우 불편한 화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레벨쯤 되어야 한국어 존대와 하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이거늘, 한낱 속세의 대통령이 수행비서는 물론이요 처음 만나는 중년의 상인이나 농민, 심지어 장관이나 농협중앙회장에게까지 반말을 해대다니…. (유인촌 장관의 학부모와의 논쟁 동영상도 돌이켜보니 반말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누군가 외국 작가가 이명박 대통령을 소재로 영어 소설을 쓴다면, 번역자는 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무조건 찍찍 반말하는 걸로 처리하면 되니 말이다. 아줌마도 한잔 해! 중앙회장 저리 앉아! 여러분은 인터넷을 안 하잖아! 야, 뻥튀기 사먹어라!

물론 그런 소설이 나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덧)
어허. 이렇게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혹시 시간 나시면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958827&hisBbsId=best&pageIndex=1&sortKey=&limitDate=-30&lastLimitDate=
...로 가셔서 투표를. 찬성하면 찬성표, 반대하면 반대표.

관련해서 지금까지 가장 설득력 있었던 기사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66&article_id=4517

매년 7월은 그해 상반기 아쿠타가와 상과 나오키 상의 발표가 있습니다.  제141회 나오키 상 수상작은 기타무라 가오루의 <해오라기와 눈>이, 아쿠타가와 상은 이소자키 겐이치로의 <마지막 거처>가 수상했지요. 그런 시기적인 분위기도 있고, 처음 '월간 자판기'의 취지(?)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나오키 산주고' 아저씨를 소개하려고…했는데요.
한국에는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아 작품도 몇 개 번역하고 해서.. 그러려고 했는데요.
생각만 했습니다. 죄송o<-<

그리하여 갑지가 생뚱맞게, 미미 여사가 추천하는 책을 다 함께 읽어 보자, 코~너.
저작권법도 강화되었는데 무서운 것도 없이 스샤샥 신문 서평을 옮겨 봅니다. 시..시..시..신고하지 말아 주세요ㆀ

아사히 신문에 '소중한 책'이란 매주 유명 작가들이 꼽은 좋은 책의 서평을 싣는 코너가 있는데요. 2008년 10월에 실린 미미 여사의 서평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루머 고든 『인형의 집』  미야베 미유키 / 아사히 신문 2008년 10월 12일

저자 루머 고든은 『흑수선(Black Narcissus)』, 『강』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영국의 여류 작가입니다. 한편으로는 아동 문학 저서도 많은데, 이 책은 아동 문학 분야의 대표작이라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인인 자매에 의해 가족을 본떠 신발 상자로 만든 집에서 사는 네 명의 인형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그들 곁에 어느 날 골동품적인 가치가 있는 인형 집과 함께 아이의 인형 놀이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값비싸고 아름다운 다섯 인형들이 찾아옵니다. 마침내 자매의 인형들에 대한 가치관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며 화목했던 4인 가족은 흡사 전체주의 국가에서 독재자의 변덕에 농락당하는 일개 시민처럼 힘겨운 처지로 내몰립니다.

이 책과 만난지 40여년이 흘렀음에도 아직 제 마음 속에서 가장 밝고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이 이야기에는 선과 악, 죄와 벌, 죽이는 자와 살해당한 자, 베푸는 것과 빼앗는 것, 덧없는 것과 영원한 것―여러가지 무거운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저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행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아무리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더라도 어떤 사람과의 사이에서 한번 얻은 행복은 설령 잃어버리는 일은 있더라도 결코 덧없이 사라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결말에서 악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악의 근원은 자신에게 ‘악’이 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참담한 진실입니다. 많은 경우 ‘악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러한 불합리와 불공평함 때문에 사람은 얼마나 많이 절망해 왔나요.

그러나 정의의 저울은 망가진 것이 아닙니다. 악은 무너지지 않지만 행복 또한 무너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선이 악에 굴복하더라도 행복의 찬란함만은 악에게 지는 일이 없습니다. 작은 네덜란드 인형 토티는 그것을 전하기 위해 지금도 이 책 안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인형의 집>이라고 하면 으레 고등학교 문학책 저 뒷편에 실려 있던(요즘도 있나요!?) 입센의 희곡이 떠오르는데, 이건 전혀 다른 <인형의 집>입니다.
미미 여사의 서평을 보고 문득 떠오른 것은 <사이보그 009>. 주인공이 목숨까지 바쳤지만 세상에 결코 악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결말에 어렸던 저는(실은 그다지 어리지 않았습니다=.=) 내동댕이쳐졌지요. 물론 '그렇지만(그렇기 때문에?) 정의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지만요.

그리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비룡소 클래식으로 나온 루머 고든의 <인형의 집>!


<인형의 집>과 <부엌의 성모님> 두 편의 동화를 싣고 있는 이 책, 면지의 깜찍함에 넘어갔습니다.(좌측 상단은 장도비라에 있는 '토티')
막상 읽으니 그렇게 어두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동화가 가장 신랄하고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오히려 웃음이 났습니다. 불합리한 고난 속에서도 따뜻함과 강인함이 느껴졌어요. 꼭 미미 여사 같은 동화였습니다. 조금 쓸쓸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마저 반짝반짝한 추억으로 빛납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아이들은 아주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무엇을 먹었을까? 가자미, 완두콩과 으깬 감자, 아주머니네 체리 병조림으로 만든 체리 파이를 먹었다. -p.81
이런 '친절'한 말투예요. 일방적인 서술이 아니라 독자들(아이들)과 이야기를 시도하는 문장들이 저는 정말 좋아요. 소리 내서 읽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게다가 위트도 넘칩니다. 아래는 토티가 '인형 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때 다른 인형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라! 이 봥에서 우리 자뤼가 가장 좋쥐 않은가?"
토티가 밀랍 인형에게 살짝 물었다.
"말투가 왜 저러니?"
밀랍 인형이 대답했다.
"프랑스 인형이야. 굉장히 도도해." -p.88

프랑스 인형, 자꾸 끌려요.




-秋-

>나오키 아저씨 소개는 다음 나오키 상 수상 때쯤으로 미룹니다. 으허헛.

>그러고 보니 '자판기'인데 일본 얘기가 아닌...?

>귀여워서 마음에 든 책은 개 한 마리가 와서 덥썩 물어갔습니다ㆀ 지켜 주지 못해 미안.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