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북스피어의 독자교정은 당연히 번역자와 편집자가 해야 할 오탈자의 수정을 ‘제3의 눈’을 가진 정예 독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자못 얄팍하고도 얍삽하기까지 한 어두운 의도로 시작했다. 벌써 5년쯤 됐으니, 어지간한 독자들은 다 알아 버렸으리라 본다. 혹자는 ‘노동력 착취’라고도 했다. 동감한다. 딸랑 자장면 한 그릇 사 주고 하루 종일 부려먹으니, 노동력 착취 맞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몇몇 독자들이 오탈자 수정은 뒷전으로 미룬 채 감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독자 스스로 ‘독자교정’의 진정한 의미를 바로 잡아 버린 거다. 읽는 데 열중하느라 오자는 거의 못 잡았네, 조금 미안해, 등등의 멘트와 함께 말이다. 그 어느 순간이 언제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뒤로 우리는 ‘첫 독자’들의 감상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음. 반응이 별로군. 초판 제작 부수를 줄여야겠어.
―오 재미있었다니 간만에 언론 릴리스도 좀 하고, 서점에도 밀어볼까.
사실 편집자들이 생짜로 객관적 가치 평가를 내리기는 무척 힘들다. 그들은 이미 텍스트에 완전히 감정이입 되어 버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때로 편집자들이 제가 만든 책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게 아닌가 혐의를 두는 분들도 있는데, 과장이 절대 아니라고 딱 잡아떼지는 못하겠지만, 진짜로 지가 만든 책에 대해서라면 덮어놓고 재미있게 느끼는 거라고 보는 편이 맞다.
연애편지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사랑에 빠져서 연애편지를 읽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읽는다. 그들은 단어 한마디 한마디를 세 가지 방식으로 읽는다. 그들은 행간을 읽고, 여백을 읽는다. 부분의 견지에서 전체를 읽고, 전체의 견지에서 부분을 읽는다. 콘텍스트와 애매성에 민감해지고, 암시와 함축에 예민해진다. 말의 색깔과 문장의 냄새와 단락의 무게를 알아차린다. 심지어는 구두점까지 고려에 넣는다.
대개 편집자라는 인간들은 제가 만드는 책의 텍스트를 연애편지 읽듯 읽는다.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이러니 어떻게 재미가 없을 수 있겠나. 이러고도 재미가 없다면 책을 안 내는 게 맞고. 아, 저 위의 연애편지 운운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독서의 기술How to Read a book>이라는 책에서 모티머 애들러 교수가 한 말이란다. 여튼.
그렇기 때문에 첫 독자들의 첫 반응은 중요하다.
헌데 새삼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다음 달에 나올 신간을 사전 홍보하기 위해서다.
안다 안다. 우리 블로그에서만 할 테니까 너무 눈살들 찌푸리지 마시라.
사실 다음 달에 출간할 『리피트』, 약간 걱정했다. 일단 야심차게 펴낸 같은 작가의 『이니시에이션 러브』 판매가 너무 저조했다. 초판 3,000부 찍었는데 여태껏(8개월쯤) 달랑 1,800부 팔았다. 지금쯤이면 초판이 소화되고도 남아야 된다. 곤란하다. 계약금도 많이 썼는데. 상당히 곤란하다. 게다가 제목만 봐도 딱 감이 오겠지만 소재가 타임슬립이다. 타임슬립. 이거 좀 진부해 보이지 않나.
물론 애초에 이런 거 저런 거 다 감안하고 계약했다. 검토단계에서 충분히 재미있다 여겼다. 팔 수 있겠다 싶었다. 몇 번씩 읽고 난 지금은, 재미있어 죽겠다. 하지만 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슬슬 걱정이 된다. 작가의 명성에 기대 팔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애초에 북스피어라는 출판사, 없는 살림에 광고는 꿈도 못 꾼다. 이 대목에서 우리끼리 아무리 재밌다고 한들 독자들이 재미없어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번 독자교정, 중요했다.
지방독자 우선 선정 원칙에 의거, 총 네 사람에게 보냈다. 현재 세 명으로부터 답신이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폭발적’이라... 내 입으로 말은 했지만 거참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다. 딱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 명은 게시판에 글 남겨주었고, 두 명은 본사로 서신씩이나 보냈다. 그중 한 명은 무려 자필로 감상을 피력해 주었다.
독자교정 소감 멘트를 자필 편지로 받아보기는 또 처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만큼, 도저히 그냥 묵과할 수 없었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읽으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도록 하겠다.
더불어,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한 글자 한 글자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썼을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북스피어 일동, 제대로 감동해서 아침 회의를 하는 내내 거의 입을 떼지 못했음도 알려드리고 싶다. 내용 또한 알차기 짝이 없었다. 주례사가 아님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아아 다른 분들도 알찼어요, 정말이에요). 서신을 보내 준 두 분, 게시판에 알찬 감상을 남겨준 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덕분에 약간 자신감 생겼다. 나머지 한 분, 반응 보여주시라.
덧) 여기까지 쓰고 확인해 보니 마지막 한 분의 메일도 도착했다. 바빠서 미처 다 읽지 못하셨다고 한다. 진짜 바쁘셨나 보다. 혹시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만 거라면, 음... 설마.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