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걸작 컬렉션이라는, 그 제목만큼이나 방대한 분량이었던 시리즈의 마지막권이 무사히 출간되었다. 세 권을 나란히 세워놓고 보니 올봄부터 영차영차 작업을 하며 막연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기쁘고 뿌듯하다. 지난 토요일, 끝내기 홈런 한 방으로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은 나지완 씨의 심정도 이렇지 않았을까....
라는 건 물론 말도 안 되는 비유겠지만, 뭐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기뻤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나는 이번 시리즈를 만들기 전까지 마쓰모토 선생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일본의 추리 소설가라는 것.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썼다는 것. 일본 문단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대중적으로는 팔리는 작가였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독자들에게 워낙 인기를 끌다보니 후에는 공방을 차려 문하생들에게 ‘무분별하게’ 작품을 양산시키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팔아먹는다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이번 시리즈의 하권에 해설을 쓴 조영일 선생에 따르면 소문의 진원은 (그를 시기한) 일본의 어느 순문학 작가였던 모양이다.
선생에 대한 일본 문단의 무관심과,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은 그대로 한국으로도 전해져, 결국 한국에서 마쓰모토 세이초는 ‘별 볼일 없는 추리작가’쯤으로 인식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내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라고 하면, 에이 일본 작가 따위, 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코웃음을 칠 사람들이 또한 많을 테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니까 그냥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해 두겠다. 아무튼 이번 컬렉션을 한국어판으로 펴내면서 이런저런 관련 서적들을 들춰보다가 선생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일본 문단이 그토록 소원하게 대했던 작가임에도 일본의 독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급기야 마쓰모토 세이초가 국민작가의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점이다.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혹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중’ 작가라는, 사회적으로 볼 때 유쾌하지 않은 레테르가 항상 따라다니는 작가를 두말 없이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망설이지도 않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단연 마쓰모토 세이초가 최고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독자들뿐만이 아니다. 이미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대중’ 소설가들도 그 같은 사실을 밝히는 걸 쪽팔려하지 않았다.
A) 초등학생 시절에는 ‘도서관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르바이트 왕’이 되어서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체계적으로 읽은 것은 아닙니다만 마쓰모토 세이초 씨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화려한 사건이 없어도 재미있는 스토리를 쓸 수 있다’는 가치관을 뒷받침하는 존재로 지금도 제 속에 세이초 씨의 모습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마쓰모토 선생이 부지런히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데뷔하여 죽을 때까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공방설(은 물론 사실 무근이다)’이 나돌 만큼 엄청나게 썼다. “한참 전성기 때에는, 연재물을 무려 열 개(일간지 두 개, 주간지 세 개, 월간지 다섯 개)나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열 개 동시 연재!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마침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미야베 미유키, 오사와 아리마사, 교고쿠 나쓰히코)이 유쾌한 대담을 나누었다(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사람들은 이런 아기자기한 이벤트를 참 잘한다, 부럽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미야베 미유키 : 말도 안 되는 질과 양의 작품을 쓰셨지요.
교고쿠 나쓰히코 : 또 그 시기는 텔레비전이 영화를 제치고 대중오락 톱으로 등장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즉 미디어의 형태가 비약적으로 전환한 시대예요. 세이초 씨는 대부분의 주간지에 연재를 하고, 컨텐츠를 원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연이어 원작을 제공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이 폭발적으로 확대하고 침투한 원인은 바로 그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추리 소설이라는 것이 그때까지 일시적인 소비 상품으로 취급받던 탐정소설에서 벗어나 하나의 문예 장르로서 성립한 배경이 뒤에 있었던 겁니다._<탄생 백주년 토크쇼> 되살아나는 마쓰모토 세이초, 출처_올요미모노 2009/10, 번역_추군
게다가 그는 “논픽션 작가이자 역사가 그리고 고고학자 심지어 번역가"이기도 했다. 세이초의 소설이 추리소설인가 아닌가, 혹은 세이초의 논픽션이 그의 학력으로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매우 관념적이고 재미도 없는 의문을 놓고 한 시대가 헛된 ‘문학적’ 입씨름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와 역사에 대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쓰고 또 썼다.
그 덕분에 일본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의 인기는 사후에도 변함이 없어, 그가 사망하자 기념관이 지어지고 이름을 딴 문학상이 제정되고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그에 대한 추종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문단 따위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독자들의 성원만으로!! 말이다.
윤상인 교수가 잘 지적했듯, 직업으로서의 문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규모나 충성도를 겸비한 독자 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한 환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일본의 작가들은 한국의 작가들에 비해 훨씬 나아 보인다. 양은 물론이거니와 질에서도 마찬가지다. 층위의 스펙트럼에서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지(뭐 없으면 말고).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세 권을 나란히 세워놓고 바라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마쓰모토 세이초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한 자락을 전한다. 그는 마감을 짜증날 만큼 안 지켰던 모양이다. 세이초의 전담 편집자였던 와시오 켄야은 어느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이것 역시 애틋한 일화였다고, 세이초의 전담 편집자들은 입을 모으지 않을까.
덧) 위에 일부를 옮긴 미야베, 오사와, 교고쿠 들의 대담은, 당초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하권에 실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잡지사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북스피어가 제시한 비용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판정을 받는 바람에, 추군이 애써 번역까지 했건만 결국 싣지 못하게 되었다. 혹시 북스피어 독자 가운데 구경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절대 어둠의 경로에 풀지 않고 혼자만 보겠다'는 맹세를 하고 메일 주소 남겨주시면 보내드리겠다. ㅎㅎ
아,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박스판 제작이나 특별판 제작은, 계획에 없다. 걱정하지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