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 중요한가, 곤조가 중요한가, 하는 고민을 가끔 합니다. 뭔 소리냐. 표지 디자인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예'입니다. 이상하게 유추하면 안 됩니다. 혹 자기 얘기가 아닐까 오해해도 곤란합니다. 그냥 일반론이고, 그냥 예입니다.
A는 북 디자이너입니다. 마감을 잘 지킵니다. 책의 표지 디자인은, 컨셉을 잡고 이삼 주 후에 몇 가지 시안을 만듭니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최종 결정 후 마무리 손질을 해서 완성합니다. 넉넉 잡아 한 달쯤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헌데 어떤 출판사가 너무 급해서 사흘 만에 표지를 해달라고 A를 조른 적이 있답니다. 미쳤었나 봅니다. 문제는, 마감을 사수하려고 A가 진짜 사흘 만에 만들어 줬다는 겁니다. 시간에 쫓겨서 그랬는지 결과물은 평범했던 모양입니다.
B도 북 디자이너입니다. 마감을 잘 지키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전화도 안 받습니다. 표지 시안 마감이 코앞에 닥친 편집자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디자이너가 전화를 안 받습니다. 이럴 때는 디자이너를 확 죽이고 자기도 죽고 싶습니다. B와 작업한 출판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두 번 다시 B랑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마감을 엄청 어기면서까지 고집스럽게 만든 표지 시안이, 이런 망할, 상당히 훌륭했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또 B랑 작업하고 있다는 겁니다. 숨바꼭질은 여전했던 모양입니다만.
제일 좋은 건 마감도 잘 지키고, 결과물도 훌륭한 겁니다.(그래서 굵게 강조 한번 해 봅니다 ^^) 근데 그게 어디 쉽답니까. 맘대로 되면, 지가 무슨 엿장숩니까. 엿장수 할아버지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때 차선책이 A와 B입니다. 마감을 지키고 일단 내자, 아니아니, 마감을 넘기더라도 결과물이 더 중요해. 당신은 A 타입입니까, B 타입입니까.
세상에는, A 타입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작업의 종류에 따라 제각각 다르겠지요.
북스피어는, 굳이 분류하자면 B 타입을 지향했던 것 같습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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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가 말썽입니다. 제가 스물일곱 번쯤 사과했고, 서른여덟 번쯤 기다려 주십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에... 또 말씀드립니다.
맞습니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원작 계약 이후 시간이 꽤 지나서 까딱 잘못하면 계약 불이행으로 막대한 손해를 볼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당초 출간 계획과 어긋나면서 이미 유형 무형의 손해를 크게 입었습니다. 스트레스도 상당합니다. 게다가 조바심. 그러는 사이에 어그러진 인간관계.
아니 그럼 얼른 만들어서 내면 되지 않느냐...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이미 한 번 나온 책입니다. 분량도 장난 아닙니다. 원작이 다섯 권입니다. 이거... 잘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번역이며 만듦새며 구성이며, 이전보다 쬐끔, 아주 쬐끔이라도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내야 출판사 입장에서도 더 이상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못 냅니다. 영원의 아이, 올해 안에 안 나옵니다. 그 '조금이라도 나아야'가 너무 어려워서 언제 낸다 장담도 못하겠습니다. 이제는 윤곽이 드러나도 괜히 언제 낸다고 했다가 약속을 못 지킬까 봐 쉬쉬하는 구석도 있습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누가 '영원'이라는 말만 꺼내도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내년 여름에 내면 잘 팔리지 않을까, 이런 거 고민하느라 안 내는 거 아닙니다. 북스피어도 그런 거 고민하긴 하지만, <영원의 아이>는 그런 거 아닙니다. 잘 만들기 위해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납니다. 열심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다린 시간이 납득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덧) 영원의 아이 언제 나와요, 라고 물어보는 거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러면 상황이 어떻다든가 우리는 어떤 심정이라든가, 또 쓰면 되죠 뭐. 그래서 출판사 블로그 있는 거 아닙니까. 쓴다는 행위, 질문에 답한다는 행위 자체가 스트레스는 아닙니다. 다만 인간인지라,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조바심이 나는 게 스트레스지요. 물론 독자 여러분께는 상당히 송구하지만, 작업만큼은 즐겁게 하겠습니다. 여튼, 이렇게 공개적으로 한 번 썼으니, 당분간은 참아주시려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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