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juLim @hongmin76 대표님 기억하시는지요. 지호 씨는 잘 지내고 있나요. 늘 북스피어를 응원하고 있답니다.
며칠 전 트윗에서 임태주 대표가 건넨 인사다. 반가와라. 이 년 만인가. 사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우리 편집장님이랑은 교류가 있어서 예전 북스피어 3주년 때 ‘주례사’를 받은 적이 있다.
@TaejuLim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오랜만에 다시 뵌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역시 저희 3주년 때 임 선생님이 날려주신 근사한 멘트 때문이겠지요. 덕분에 북스피어는 곧 다섯 살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그렇다. 북스피어가 곧 다섯 살이 된다. 어느 새 5주년. 그때는 또 뭘 좀 해야 재미진 이벤트였다고 소문이 날까 하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한밤중에 아귀가 맞지 않는 덧문 틈으로 들어온 겨울바람을 맞았을 때처럼 몸이 살짝 움츠러든다. 뭘 해야 할지, 앞으로도 쭉 모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정말, 백 년도 못 살면서 천 년을 걱정하는구나.
내년에 뭘 낼지 고민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니가 지금 그거 걱정하고 있을 때냐.
어디에선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린다 싶은 순간 가슴속의 횡경막이 툭 하고 터졌다. 이럴 때는 담배나 한 대 태우는 게 상책이다. 얼른 레종 한 개비를 꺼내 횡경막을 다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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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다시 볼 일이 생겨서 <출판기획-북페뎀> 2호를 팔랑팔랑 넘기는데 전에는 미처 주의 깊게 보지 못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길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출판기획의 최전선에서 머리를 꽁꽁 싸맨 채 노심초사와 전전긍긍을 병행하고 있을 기획편집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옮겨본다.
기획을 맡은 올랑데에게는 이 총서를 진행하기 전에 분명한 목표와 방향이 있었다. 대중에게 읽는 즐거움과 배우는 즐거움을 동시에 주어야 한다는 출판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올랑데의 책에 대한 생각은 우리 편집자들에게 교훈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떤 책이 가장 좋은 책일까? 이런 질문에 우리는 “독자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책”이라 대답한다. 인문 사회과학 책마저도 이렇게 쓰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책에는 이런 노력이 없어야 하는가? 왜 책은 이런 노력을 독자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일까? 올랑데는 “책을 어렵게 읽어가는 즐거움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독자들에게 책을 즉각 이해하지 못할 권리도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책을 끝까지 다 읽었는데도 부분만을 이해하면 어떻습니까?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완전히 이해하며 읽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읽어갑니다. 한권의 책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환상입니다”라고 말한다.
책을 고통스럽게 읽어낸 후의 즐거움! 아마 우리 독자나 출판계에게는 그야말로 헛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 서고’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라디아 플렘의 <카사노바>는 이런 즐거움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어쨌든 독자에게 책을 읽는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겠다는 기획자의 굳은 의지가 그대로 반영된 총서가 바로 ‘20세기 서고’이다.
20세기 서고는 방향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획자만 있고 기획은 없다. 총서는 이래야 한다는 관념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내용면에서만이 아니라 형태면에서도 총서의 관념을 깨뜨렸다. 20세기 서고의 특징은 형식과 분량의 파괴에 있다. 심지어 책의 크기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포켓판으로 출간된 것이 있는가 하면 신국판의 크기로 출간된 것도 있다.
분량은 더더욱 다양하다. 엄격하게 보면 하나의 시리즈에 속한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포켓판으로 120쪽에 불과한 책이 있는가 하면 신국판으로 650쪽에 달하는 두툼한 책도 있다. 형태적으로 똑같은 것은 표지 하나뿐이다. 우리처럼 칼라도 아니다. 누런 표지에 저자 이름을 가장 위에 검은색으로, 그 아래에 붉은색으로 책 제목을 새겼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는 20세기 서고라는 표기와 출판사 이름이 있을 뿐이다.(...)
나는 기획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 시장을 읽는 눈, 달리 말하면 독자가 현재 원하는 방향을 감각적으로 혹은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포착하여 그에 알맞은 책을 기획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기획은 독자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데 우선적인 목적이 있다. 책의 내용에서나 글쓰기에서나, 심지어 활자의 크기와 책의 형태까지도 독자의 기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현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현재의 시장에 바탕을 둔 기획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기획자, 달리 말하면 독자를 이끌어가는 기획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행본만이 아니라 시리즈물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20세기 서고가 세이유라는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올랑데라는 뛰어난 기획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반드시 처음부터 총서의 이름을 정해놓고 접근할 필요는 없다. 출판사가 커다란 그림을 그려놓고 일정한 방향으로 책을 출간한 후에 정리하는 차원에서 20세기 서고에 버금가는 총서를 탄생시킬 수 있다. 우리는 처음에 작게 시작하면 된다. 총서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된다. 출판인의 정식 속에서만 총서라는 개념이 있으면 된다. 다만 발상의 전황이 필요할 뿐이다. 포켓판과 신국판이 하나의 총서로 묶일 수 있다는 파격적인 사고방식만 있으면 된다. _강주헌
코오. 멋있다. 박수. 짝짝짝짝――.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이 대목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나는 새삼 감탄했다. 요근래 내가 쭉 듣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것이 대관절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을 특별한 일화를 통해 의지적으로(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서술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획편집자들이 우리 나라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사례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굳이 위와 같은 내용을 소개하며 글쓴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독자가 현재 원하는 방향을 감각적으로 혹은 과학적인 접근법으로 포착한” 기획은, 이론적으로 볼 때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를 이끌어가는” 기획은,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원래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때 백 명 가운데 한 명이 그 기획을 마음에 들어 하고 그로 인해 출판사가 유지될 수 있다면 나머지 아흔아홉 명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쯤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다만 그 한 명은 철저하게 마음에 들어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마음에 들 수 있도록 해야 된다. 그러려면 기획편집자는 명확한 자세와 철학을 기치로 내걸고 뚝심 있게 비바람을 견디며 유지해 나가야 한다.
...아마 그런 얘기를 하려던 것이리라. 아니 뭐, 내가 아흔아홉 명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이 글을 읽고 나니 그냥 그런 느낌이 들더라는 얘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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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나서 임태주 대표가 써준 ‘주례사’를 찾아서 다시 읽어보았다. 말 그대로 주례사일 뿐이긴 하지만, 뻔히 알면서도 다시 읽는데 약간 벅찼다. 그래, 그땐 정말 뚝심 있고 오만해 보였는지도 몰라. 적어도 지금에 비하면...
<북스피어 연대기> 제3권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 책의 부제는 ‘오만과 편견으로 들끓는’이다.
내가 아는 한 출판사는 딱 두 종류가 있다.
낚시가게 같은 출판사와 베이스캠프 같은 출판사다.
낚시가게 출판사는 매우 친절하다.
전설의 물고기 곤들매기를 잡는다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가 던지는 플라이낚시를 들어보았는가.
이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곤충 모형의 이미테이션을 만드는 작업인
타잉(Tying)으로부터 시작한다.
타잉의 정교함과 섬세함이 플라이낚시의 내면을 좌우한다.
그러니 낚시가게 출판사는
독자를 모방하고, 독자의 뜻에 따르고, 독자에게 충직하다.
그래서 갈수록 그들의 잔망한 입맛에 맞추느라 타잉의 기교가 늘어간다.
베이스캠프 출판사는 매우 오만하다.
그들은 보통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표범이나,
히말라야의 눈보라에 맞서는 사자와 같아서
굶어죽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파른 벼랑 위에, 만년설 위에 집을 짓고 부수기 때문에
결코 그 어느 것에도 굴욕하거나 안주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오만을 일용한다.
자신들이 오르지 않으면 아무도 거기에 깃발을 꽂을 자가 없다는
강철 같은 편견으로 말린 육포를 뜯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베이스캠프 같은 출판사가
단 몇 개만 존재하고 있는데, 북스피어가 그 중 하나다.
나는 그들의 그 굳고 아름다운 오만함의 끝을 지켜볼 참이다.
“더 이상 새로운 미스터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꽤 고통스러운 전개라는 것을 각오하고 읽기 바란다.”
어떤 누구도 감히 독자들에게 이 따위 불경스런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 같은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는 낚시가게 출판인들은
저 압도하는, 저 불친절한, 저 강고한 자존을
침 흘리며 부러워할 뿐이다.
<북스피어 연대기> 제100권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내가 오늘도 낚시가게 문을 열고 목숨을 부지해가는 이유 중 하나이므로.
-- 웅진윙스 대표 림태주 씀
덧) 그나저나, 진짜 5주년 땐 뭐 하지? 혹시 아이디어 있으신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