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판계의 갖가지 다양한 문제들은, 사실 출판사와 서점 모두가 공범이라고 봐야 한다. 뭐 굳이 따지자면 출판사가 주범, 서점은 종범 정도가 될까. 그 원인이 ‘매출 지상주의’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출판이라고 별수 있냐는 식으로 매출 지상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허물어뜨린다면, 출판계가 책을 만들어 파는 일이 다른 산업보다 더 특별한 문화산업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사라지고 만다.
되풀이 하자면, 출판에 대한 ‘특별대우’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출판 행위에 대해 더 엄격한 도덕률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웅진씽크빅은 “지난해는 임프린트 체제(하나의 출판사가 여러 개의 출판 브랜드를 운영하는 방식)의 성공 모델로서 입지를 굳힌 한 해였다”며 “올해 매출 목표를 800억원으로 정하고 시장 점유율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_2010년 1월 11일 연합뉴스
웅진은, 600억 원 달성 기사를 여러 신문을 통해 보도되도록 했다. 수출 금자탑 카퍼레이드에 잔치라도 할 기세였다. 출판계에서 600억 매출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를 공공연하게 발표한 이유는 웅진이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정설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마침 「문학사상」(2010년 2월호)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이와 관련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에 있는 백원근 책임연구원의 말을 들어보자.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서양에서 뿌리내린 이 시스템이 우리나라에서는 자본력이 있는 곳에서 유능한 편집자 등을 억대의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하여 별도 브랜드 출판사를 산사에 수십 개씩 계열화하는 형태로 유전자가 조작되었다. 단기적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본 집중형 방식이다. 자회사와 달리 수익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해당 브랜드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임프린트 설립의 필요성도, 운영의 지속성 여부도 오로지 매출이 기준이다. 그러니 출판 철학을 말하는 것은 애초부터 지나친 기대에 속할 것이다.
말하자면 해당 출판사에서 일하는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매출을 기준으로 줄을 세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얘기다. 물론 임프린트를 시행하는 쪽에서는 “출판사가 유능한 에디터(편집자)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고, 에디터는 자본의 영세함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며 “에디터의 신분 보장은 임프린트에 날개를 다는 격”이라고 주장한다.
누구 얘기가 맞는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
한편, 몇 년 사이에 임프린트를 시행하는 출판사가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상위 몇 개 출판사들의 매출액도 더불어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불안해지는 곳은 그간 10억~50억 사이의 매출을 올리던 중견 출판사들이다.
중견 규모의 출판사들은 이래저래 곤혹스럽다. 이미 몸집이 커진 만큼 출판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매출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폐달을 돌리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와 비슷하다. 시장이 뻔한데 상위 출판사는 계속해서 매출을 늘리는 추세다. 결국 무리한 매출 경쟁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단기간에 손쉽게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사재기다. 잊을 만하면 보도되고, 바로 얼마 전에도 다시 적발되었다.
출판사가 사재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 없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하기 위해서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유력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책은 붙잡아도 알아서 나간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보다 매출이 확실하다.
얼마 전 만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적발되는 사재기 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사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출판사가 과연 몇 군데나 되겠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사재기가 전통적인 방법이었다면, 온라인 서점의 등장과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서평의 조작, 혹은 동원된 서평이다. 우리는 사재기에 대해 떳떳하다는 출판사들도 이 대목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북스피어도 포함된다.
서평 카페에 독후감을 올리고 책을 무료로 받는 행위 자체를 지적하기는 어렵다고 출판인들은 말한다. 문제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권하고 싶은 책에 대해 글을 쓰는’ 서평의 근본 취지와 달리 ‘공짜로 주니까 읽고, 싫든 좋든 평을 쓰는’ 상황이 되면서 서평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평 능력이 처지는 사람이 책을 받다 보니 다른 서평을 베끼는 사례도 발생한다. _2010년 3월 17일 동아일보
건국 이래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는 출판계는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상황이 나빠지니 치사한 방법이 동원된다. 한 군데가 시작하면 다른 곳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결국, 대형도 중견도 아닌, 이래저래 없는 놈들만 죽어나는 거다.
그렇다면 대관절 없는 놈들은 어찌 해야 한단 말이냐. 부화뇌동하자니 존심 상해서 허파가 튀어나올 것 같고, 오불관언하자니 똥구멍이 찢어지려고 한다. 아아, 그래서 나는 그냥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해 줬으면 좋겠어.
덧) 『열정의 편집』(열린책들)의 저자이자 전설적인 편집자이기도 한 앙드레 쉬프랭의 연설문이다. 눈에 띄기에 옮겨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심정이긴 매일반이다만.
소형 출판사들의 생존 문제는 소규모 국가들의 생존 문제와 아주 유사합니다. 정말로 작은 국가는 거대 국제 복합 기업들과 대치하여 자체 문화를 지켜야 합니다. 한국과 비교하여 극히 작은 국가들을 보면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인구가 400만이고 네델란드는 1600만인데 대단히 성공적인 출판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
문제는 돈입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모든 출판사들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로 된 책자는 모든 도서관에서 두 권씩 구입해주고 있으며, 서적상들이 적어도 1년 동안 서점에서 이런 책을 판매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정부, 출판사, 서적상, 도서관이 합의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르웨이 문화를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결정의 문제입니다. 어떤 출판사도 대형 출판사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어떤 저자도 대형 출판사만 쫓아다녀도 안 됩니다. 어떤 국가도 자국의 주권과 지적이고 문화적인 중대 사안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각자가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익이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돈만을 추구한다면 그 미래는 불문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많은 점에서 소형 출판사가 미래의 방식이지 대형 출판사는 아닙니다. 장기간 판매되는 중요한 도서의 출판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작된 방법으로 서점의 베스트 순위에 올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판매되다가) 사라져버리는 책들은 처음에는 돈을 많이 벌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책들은 우리 모두가 시도하고자 하는 문화에 보탬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_『위기의 책 길을 찾다』에서 재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