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어 출판사가,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놀고 있습니다...

...라는 건 농담농담(놀고 있다 정말).

스포츠 찌라시 흉내 한번 내봤습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농담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제 일본 장르소설을 출판하면,
우리 나라 신문에 릴리스를 할 게 아니라, 일본 신문들에 책이랑 보도자료를 보내줄까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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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사히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더랬습니다.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세이초 선생에 관해서입니다. 몇 번의 통화와 이메일이 오갔고, 기사가 실렸네요.

전체 기사 가운데 한국 관련 기사, 옮겨봅니다. 중간에서 여러 가지로, 게다가 친절하고 꼼꼼하게 도와주신 아사히신문 황정아 선생님, 고맙습니다(한국 오시면 연락 한번 주시와요. 밥 삽니다 ㅎㅎ).  


세이초의 인기, 바다를 건넜다

12월 21일은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의 탄생 100주년이다. 올해 한 해, 출신지인 기타큐수 시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새롭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 분위기는 바다를 건너, 일본의 ‘Seicho’는 중국과 대만, 한국에서도 재조명되고 있다.


■단편집, 사회를 생각하는 계기가 / 한국

서울의 작은 출판사 북스피어는 올해, 미야베 미유키 편집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문추문고, 전 3권)을 번역, 출간했다.

임지호 편집장(37)은 단편집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한국 독자 대부분은 마쓰모토 세이초를 장편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이나 <국화 베개> 같은 작품은 대중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다. 세이초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점에도 매력을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유명하다는 점도 한몫했다”고 덧붙였다.

3~10월에 발매되어, 상권 3천부, 중권 1500부, 하권 2천부 등을 판매. 임 편집장은 “하권에 한국어판의 해설을 실어서 판매부수가 올랐다.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상당히 선전하고 있다. 기존 미스터리 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작가 등 폭 넓게 장기적으로 팔릴 거라 기대하고 있다”라고 했다. 다른 단편들 번역도 검토중이다.

- 세이초 작품이 뛰어난 이유는 추리문학으로서 재미있는 동시에, 시대와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세이초 이후, 일본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레벨 높은 소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정말 부럽다.
번역본을 읽은 독자들의 블로그에는, 이런 서평이 올라와 있다. 임 편집장은 “한국과 일본은 사회구조 등 닮은 점도 많다. 단편집을 읽으면서 현재의 한국사회에 대해 고민하게 된 독자들이 많아진 듯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올해, 유명 출판사에서 《점과 선》과 단편집 《검은 화집》이 출간되었으며, 《제로의 초점》과 《모래그릇》도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임편집장은 또 “한국에서는 추리소설과 대중문학은 순수문학에 비해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집을 접하고, 그런 구분이 참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압도적인 힘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한국문단에서는, 세이초와 같은 1909년에 태어난 고(故) 김내성이 전쟁 전의 추리소설을 이끌어갔다. 그러나 그 이후, 추리소설이 꾸준히 출판되는 일은 없었다.

한일 양국의 문학에 상세한 현립 히로시마 대학 인간문화학부의 리켄지 부교수(40)는 “전쟁 전의 신문이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그 여백을 메우기 위해 연재되었던 것이 바로 추리소설이었다. 순문학지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추리소설 작가는 자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65년 국교정상화로 수입되기 시작한 일본의 작품도 순문학 중심. 리 부교수는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많은 세이초 작품이 한국 국내에 퍼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등의 이유로 당시 한국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되돌아보았다.

세이초 작품은 일본의 대중문학이 활발하게 번역된 70년대에 들어서, 겨우 소개되기 시작했다. 김내성부터 20년 이상 공백을 거쳐, 70년대 중반 이후에 추리소설 붐이 일어났다. 그 발화점이 된 작가 김성종은 ‘한국의 마쓰모토 세이초’라고 불렸다.

아사히 신문 주간 규슈
2009년 12월 20일 

 

덧) 서울의 작은 출판사 북스피어 ... 라는 소개는, 어쩐지 귀엽지 않습니까. 흐흐-.
참, 기사 원문은 http://mytown.asahi.com/fukuoka/news.php?k_id=41000660912210001


호란이 클래지콰이의 멤버라는 것도, 이 양반이 보네거트의 팬이라는 것도, 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잘 쓸 줄은 솔직히 몰랐다. 어지간한 일간지 리뷰들보다 훨씬 낫다 싶어 갈무리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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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세계를 누비는 황홀한 질주-<용의 이>를 읽고 떠오른 단상

by 호란

‘결국 나는 후기에서 이야기 재료들의 출처를 밝히는 것으로 타협을 봤고 몇 년 동안 그렇게 밀고나갔다. 그게 이치에도 맞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대부분 장르 독자들이 아니니, 그들에게 필수적인 사전 정보를 제공해주면 독서 중 쓸데없는 곳에서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작가는 소설 말미에 이런 말을 풀어놓았다. 여느 책처럼 이미 감동적인 추천사와 해설이 줄줄이 늘어선 후에 나타난 작가의 말이지만 오해는 말기를 바란다. 이 말을 풀어놓은 장본인인 작가 듀나가 말하고자 했던 건, 우리가 논술 모의고사를 준비했던 때처럼 ‘그럼에도’를 포함하고 있다. 비록 같은 무게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습게도 잡식을 하면 할수록, 가벼워지면 가벼워질수록 독서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받게 되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학창시절 ‘고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우리 단편 100선’ 따위의 부작용일지도 모르겠지만, 유독 책에 있어서만은 아직까지도 잠들기 전이나 화장실에서 힘쓰며 읽는 사소한 글에서까지 뭔가 철학적인 구조를 만들어내고픈 나쁜 습관이 집요하게도 남아 있는 것 같다. 모든 예술적인 가치들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며 새로이 이름표를 달고 있는 지금, 유독 종이와 활자로 이루어진 이 매체가 이렇게 특별대우, 혹은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으흠, 악몽이 떠오른다. 어떤 선생님들은 고상하기 그지없는 작품을 한 반 60명, 총 열두 반에 내밀며 어른스럽고, 또 어른의 구미에 맞는 독후감을 요구했다. 어린아이들은 생각보다 영악해서, 그들이 원하는 문장을 족보를 통해 미리 숙지했고, 그걸 바탕으로 읽지도 않은 작품에 대한 감동적이고 분석적인 문장을 잘도 토해내곤 했다. 그 문장들의 공허함을 알고 있었던 건 같은 반에서 조용히 그 화려한 가식을 참아내고 있었던 학우들뿐이었다.

자, 솔직해지자. 만에 하나 당신이 능동적이고 도발적이게도, 본질을 깨우치기 위해 사막을 가로지르는 연금술사가 아니라면, 그 마음 깊숙이 숨겨진 부패해가는 욕구불만은 언제나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우아하고 따끈한 고급 녹차로 대신할 수 없는 상쾌하고 불쾌한 밀주의 기포 같은.

서점에서 듀나의 소설 <용의 이>를 잡아들었다면, 먼저 그 표지의 일러스트가 눈에 띌 것이고, 이후엔 그 추천사인지 헤드라인인지 홍보글인지, 아니면 세 가지 다인지 모를 ‘세계몰락 프로젝트 혹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앨리스’라는 문장이 먼저 달려들 것이다. 나도 그 문구에 호기심이 생겨 이 책을 내 침대까지 들이긴 했지만, 이 문장 안에 이 이야기들이 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듀나의 이야기는 ‘세계몰락’이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없이도 충분히 당돌하다. 대단한 분석이 없이도, 대단한 명분이 없이도, 서로 다른 공감과 서로 다른 차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 그것은 그녀가 빚어낸 활자들만이 가진 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증거다. 화려하고 고상한 가식이 배제된 듀나의 순수한 증오와 혼란, 판타지는 독자가 지금 이 순간 향유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감각이다. 아니, 이런 문어체적 표현마저도 그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듀나는 ‘펑크적’이다.

다시 한 번 서두로 돌아가 보자. 쓸데없는 곳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밝히는 출처들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자. 아는 만큼 더 보인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듀나의 펑크 속에서 거리낄 것 없는 질주를 즐기자. 아버지가 좀비가 되고 행성이 식물이 되는 그 세계는 사실, 당신이 꿈꾸던 불온한 세계의 파편이다. 사소하면서도 요원한, 음습한 자유가 듀나의 세계 속에는 있다. 부디, 마음껏 뛰어들기를 바란다.  


  Men's health  2008년 2월호

사이트 All About '모두의 한 표' 라는 코너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일본인 작가는?'이라는 앙케이트를 실시, 409명이 참가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일본인작가는 누굴까요?

10위 미야모토 테루
9위 시게마츠 기요시
8위 하야시 마리코
7위 에쿠니 가오리
6위 요시모토 바나나
5위 야마다 에이미
4위 이시다 이라
3위 히가시노 게이고
2위 무라카미 하루키
1위 미야베 미유키

미미 여사님께서 1위에 오르셨습니다>ㅁ<//
뭐 당연하지만요...우훗(왜 내가 거만해지는 걸까)
어쨌든;; 미미 여사님 부분만 발췌해서 번역해 봤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세욥.
(출처: http://allabout.co.jp/interest/book/closeup/CU20070925A/index5.htm)


1위 미야베 미유키

* 서민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
* 다음이 신경 쓰여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되는 강한 흡입력
* 이 사람의 작품이라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다

이상의 세 가지가 압도적인 지지의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닐까.
미야베 작품은 대부분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한다.그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신경 쓰여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보통 사람이 오싹할 정도의 악의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런 우울한 현실을 그리면서도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성실한 윤리관이 있다.
작품의 질이 늘 안정되어 있는 점도 중요하다. 누구나 책을 사면서 '아, 손해봤다'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화차>. 카드 사회의 어둠을 배경으로,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는 사람들을 애절하게 그린다. 주인공 형사와 아들의 강한 정, 함께 수수께끼를 쫓는 수리공 청년 등 '이 세상도 아주 끝난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조역의 존재가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도 구원이 된다. 처음에 실종된 채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히로인의 설정이 훌륭하다.

어른을 위한 ‘판타지’ 성장 소설
한겨레
» 〈나무바다 건너기〉
장르소설 읽기 /

<나무바다 건너기>
조너선 캐럴 지음·최내현 옮김/북스피어·9500원

고교생 시절 일기장을 들춰보면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가 나온다. 어이, 어른이 된 박상준씨. 소년 시절의 꿈은 얼마나 이루었나? 아직도 순수한 이상을 잘 간직하고 있는지? 원래는 몇 년마다 한 번씩 스스로 답장을 쓰면서 삶을 돌아보고 분발하려는 요량이었는데, 마지막으로 펼쳐본 게 어느덧 10년도 더 지나버렸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소년 시절의 내가 직접 찾아온다면 어떨까. 이 실현 불가능한 일은 한때 나의 간절한 판타지였다. <나무바다 건너기>는 실로 오랜만에 그런 소원을 일깨우고 나의 사춘기와도 재회하게 해주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은 도시의 경찰서장을 맡고 있는 47살 남성이다. 그런데 10대 시절엔 소문난 악동이었다. 툭하면 싸움질에다 결코 가벼운 장난으로는 봐줄 수 없는 도둑질 등 온갖 행패를 일삼았다.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월남전에 다녀온 뒤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이 사내 주변에서 갑자기 초현실적인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더니, 급기야 소년 시절의 그가 나타난다. 어른이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예우는커녕 고작 이런 삶을 살고 있냐고 빈정거리는 모습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이 철부지를 잘 얼러서 당장 눈앞에 닥친 이상한 일들을 수습해야 한다.

에스에프나 판타지, 미스터리 같은 장르소설들의 미덕은 기발한 설정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이 다일까? 물론 그나마도 제대로 이룩해내기 쉬운 게 아니지만, 삶이나 사회에 대한 성찰, 혹은 감동이 없었다면 독특한 생명력을 지탱해오기 힘들었을 터이다. 그런데 장르소설의 대부분은 ‘젊은’, 혹은 연령불명의 막연한 독자를 대상으로 집필되고 소비된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중년층이 절절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속 깊은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에는 “평범한 일상이 나의 정체성인 양 가장하여 지배하려들지는 않는지 반성하라”는 말처럼 새겨둘 만한 구절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자기애와 이타적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기하는 원숙하고 묵직한 중량감이 있다. 어른에 의한, 어른을 위한, 어른의 판타지. 뉴욕타임스가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한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 박상준/월간 〈판타스틱〉 편집주간
시간여행과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분류학상 이 책은 에스에프나 모던판타지라고 하기엔 뭔가 부자연스러운데, 영미권에서는 80년대 말에 생긴 ‘슬립스트림(slipstream)’이란 용어가 널리 통용된다. (사전적으로는 비행기 프로펠러의 후류를 뜻함) 슬립스트림이란 장르의 핵심은 비현실적인 ‘인지적 부조화’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하며, 흔히 에스에프와 판타지, 그리고 주류문학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계소설’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지만 그것과도 약간 다르다. <나무바다 건너기>의 작가 조너선 캐럴은 아직 우리나라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폴 오스터나 마가렛 애트우드, 무라카미 하루키 등과 함께 슬립스트림 계열의 작가로 명성이 높다.

박상준/월간 <판타스틱> 편집주간 psj@fantastique.co.kr

장르소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우뚝 섰다.

연속 6주째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달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을 비롯해 <커피프린스 1호점> <해리 포터> <살인의 해석> 등 요즘 잘나가는 소설의 대다수는 장르소설이다. <파피용>은 에스에프 소설이고, <커피프린스 1호점>은 로맨스 소설이며, 지난달 전 세계에서 최종편이 동시 출간된 <해리 포터>는 장르소설의 대명사인 판타지다. 출간 6개월째 베스트셀러 20위권에 머물러 있는 <살인의 해석>도 장르소설의 분파인 추리소설이다. 이들의 활약상이 보여주듯, 최근 2~3년 동안 장르소설 독자군이 전례없이 커졌다. 소수의 마니아만 즐기는 소설이라는 통념이 깨진 것이다.

이에 따라 출판사들의 관심도 과거와 다르게 부쩍 커졌다.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를 표방하고 새로 문을 연 곳들이 생겼고, 대형출판사들은 계열사의 출판브랜드를 통해 시장에 뛰어들었다.

민음사 출판브랜드 황금가지는 2004년 여름부터 ‘밀리언셀러 클럽’을 시작해 주로 스릴러 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시공사도 일찍이 이 분야에서 아성을 구축했다. 지난해 출범한 김영사 출판브랜드 비채는 <모중석의 스릴러 클럽>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를 통해 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소설을 펴내고 있다. 웅진의 출판브랜드 노블마인도 2005년부터 미스터리 스릴러 시리즈를 내고 있다. 북스피어 출판사는 2005년 겨울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라는 문패를 내걸고 장르소설 출간을 시작했다. 행복한책읽기 출판사는 에스에프 총서 시리즈와 에스에프 무크지 <해피 에스에프>를 발행하고 있다. 생각의나무, 랜덤하우스, 영림카디널, 대교베텔스만 등 출판사들도 장르소설을 활발히 펴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장르문학 전문잡지 <판타스틱>이 창간되기도 했다.

이들이 장르소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탄탄한 독자층이 구축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지호 북스피어 편집장은 “신생 출판사이고 특별히 마케팅을 안 하는데도 작품의 질만 보장되면 초판 3000부는 소화된다”며 “출판사들이 앞다퉈 장르소설을 출간하면서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좋은 작품들까지 발굴되다 보니 독자가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르소설 시장이 이렇게 커진 이유는 뭘까. 출판계에서는 팩션 추리소설 <다빈치 코드> 등의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장르물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돋우고, 일본 대중소설 물결과 함께 밀려온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시장에 탄력을 줬다고 분석한다. 특히 장르소설의 특성상 한번 맛을 본 독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통해 충실한 독자군이 되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장르소설 가운데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두고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일본 장르소설 작가들은 한국 작가들보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신경 쓰고 독자의 재미를 위한 작품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장르문학 시장이 활성화함에 따라 일부에서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분이 엄격한 한국 문학 풍토에서 하위장르로 폄하되던 장르소설들이 미래의 문학을 이끌어갈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점치기도 한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기사등록 : 2007-08-27 오후 06: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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