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우 저택 사건>이 나오고, 폭풍 같던 3주년 이벤트 기간을 지나 평화가 돌아온 정적이 넘치는 사무실에서 편집장님과 점심 도시락을 까먹다가 <가모우 저택 사건>도 나왔으니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은 무수히 많죠. 바로 떠오르는 건 역시 <시간을 달리는 소녀>네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시차가 벌어지는 것이지만 <별의 목소리>도 왠지 시간 여행의 카테고리에 넣고 싶어요. (<가모우 저택 사건>의 결말부를 보며 전 <별의 목소리>에 나오는 마지막 편지가 떠오르던데, 둘 다 보신 분들 중에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 없으신지?;;) 그리고 시간 여행이 주요 소재라는 것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인 어떤 영화도 생각나네요....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하지만 한계가 있고, 결국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작품의 이별 장면이 유난히 슬픈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그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이 전부 일치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죠. 보통 공간만이 멀어질 뿐인데, 시간마저 달라지니 우연도 기대할 수 없게 되잖아요. 그렇게 보면 ‘시간 여행’은 SF 소재 중 가장 낭만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은 위에 거론한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 얘기를 쓰려고요. 물론 시간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시간 여행물의 대부!!라고 강력 주장하고 싶은 바로 그 작품, <도라에몽>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본 시간 여행 소재 작품 중 가장 감동적인 이별과 재회 장면을 담고 있는 ‘돌아온 도라에몽’(경고: 내용 전부 쓸 겁니다)이라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네요.
<도라에몽>을 보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도라에몽은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아이템을 노비타라는 칠칠치 못한 녀석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데 탕진해야 하는 미래에서 온 괴생물체(어라)입니다. 늘 그렇게 잘 놀고 있던 둘에게도 이별의 시간이 옵니다. 도라에몽은 노비타에게 “정말 힘들 때만 써야 한다”며 어떤 약을 건네주고 홀연히 미래로 돌아갑니다. 도라에몽의 빈자리가 너무나 큰 노비타. 만우절을 맞아 노비타의 친구들은 풀이 죽어 있는 노비타를 위해 도라에몽 분장을 하고 “도라에몽이 돌아왔다”면서 노비타를 불러냅니다. 놀라고 기쁜 마음에 달려 나온 노비타는 분장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 속도 상하고 더더욱 도라에몽이 보고 싶어져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결국 노비타는 도라에몽이 남기고 간 약을 사용하는데, 이 약은 ‘거짓말800’. 이 약을 복용하면 자기가 하는 말이 모두 반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약을 먹고 노비타는 친구들 앞에 가서 “오늘은 비가 안 오네~”라고 말하면서 친구들을 비에 쫄딱 젖게 만드는 등, 유치한 장난을 치면서 화를 풀어 보려고 하지만 전혀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라에몽이 더 보고 싶어지고 쓸쓸해졌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노비타. “도라에몽을 만났니?”하고 물어보는 엄마에게 노비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도라에몽이 돌아올 리가 없잖아. 도라에몽은 미래로 가 버렸으니까.” 그러고 나서 자신의 방문을 연 노비타는 익숙한 둥그런 뒷모습을 발견합니다. ‘거짓말800’의 약효로 도라에몽이 돌아오게 된 거죠. “그 약을 먹었구나? 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라고 말하는 도라에몽을 노비타는 엉엉 울면서 와락 껴안습니다. 약효가 지속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노비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도라에몽이 돌아와서 하나도 기쁘지 않아. 도라에몽이랑 영원히 같이 살지 않을 거야. 난 도라에몽이 너무 싫어~!!”
하아, 요약만 하는 데도 울 뻔했네요.(저 좀 여린가요?;;ㅋ)
사실 전 도라에몽을 아침밥 먹을 때 잠깐잠깐 본 것 빼고는 거의 본 적이 없었어요. 저 내용은 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이 감동적으로 본 내용을 소개할 때 나왔던 편인데, 요약만 보고도 펑펑 울어 버려서 그 이후 열정적으로 도라에몽을 시청하고 있답니다. 아이템도 기발하고, 도라에몽과 노비타의 모습이 참 좋아요.
제가 특히 ‘돌아온 도라에몽’편을 아끼는 이유는 정반대의 말로 극대화된 진심을 전하는 노비타와 그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도라에몽, 그 둘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기 때문이에요. 현실은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잖아요. 내가 A라고 말한 걸 A라고 알아들어 주기만 해도 고마울 지경이죠. 가끔 그런 신세를 한탄하면 “난 왜 사람들이 널 오해하는지 모르겠어. 네가 한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라고 말해 주는 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요. 내가 말한 A를 A라고 알아들어 줄 사람, A를 말하고 싶은데 홧김에 B라고 말해 버린 그 말에서도 A를 발견해 줄 도라에몽이 갖고 싶어서 전 그렇게 펑펑 울어버린 걸까요. 오고가는 말 속에서 오해를 줄이려면, 서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가까운 의미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잘 모르겠네요. 분명히 존재하는 아주 쉽고 단순한 방법을 일부러 못 본 척 하고 있는 건 아닌지, 20분짜리 만화를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던 수박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