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닮았다. 단지 “소설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에서 그렇고, 지금까지 쭉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점점 더 살기 힘들고 어두운 세상”이 될 거라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글을 쓴다고 읊조리거나, “점점 변해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세상이 오지 않을까”라며 한숨짓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 다 빼어난 문장을 구사하지만 그 문장이 젠체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다는 점에서 그렇고, 시작부터 거한 한방을 위해 판을 짜고 마지막에 이르러 자, 이쯤에서 놀라주세요, 하는 반전 없이도 발목을 붙잡는 듯한 긴박감을 소설 전반에 걸쳐 구축해 놓아 끝까지 독자들을 긴장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기리노 나쓰오가 아니라 미야베 미유키에 더 열광했는가.
그것은 당연히 취향 탓이다, 라고 하면 너무 시시한 답변이 될 테지만, 아래 두 대사를 비교해 보면 그 이유가 조금쯤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기리노 나쓰오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꿈이나 희망이 없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픽션에서까지 그런 걸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꿈을 향해 달려가라’든지, ‘너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다’라든지, 그런 말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반면 미야베 미유키는 어떤가. “나쁜 일은 눈에 잘 띄지만, 좋은 부분은 잘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이 전부 나빠졌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 최후로 남는 일, 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잠 못 드는 밤을 위로해 주는 일입니다.”
밑져야 본전, 미야베 월드의 시작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서른 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의 육성을 전하는 화자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밝혀진다.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구성된 그 현장감 넘치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무엇보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언론 매체에 대한 통찰,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가족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내용이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문장으로 소설의 형식과 단단히 맞물려 있다.
미야베 미유키, 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당시, 우연찮은 기회에 집어 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충격적이었다. 출판사를 만들고 이제 막 한 종의 책을 출간한 직후였다. 벌써 재작년 겨울이다. 나는 『이유』를 읽은 소감을 동료에게 들려주었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첫 대답은 웃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료는 예전에 나왔다 절판된 『화차』가 또 얼마나 굉장한지에 대해 장황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 며칠 사이 우리는 이 대단한 작가에 대한 얘기로 침이 말랐다. 그러다가 그럼 이거, 우리가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안 될걸? 신생 출판사는 판권 얻기가 어렵다던대.” 아니면 눈 밝은 편집자들이 이미 다 침 발라 놨거나. “밑져야 본전인데 넣어 봅시다.” 그런 심정이었다. 밑져야 본전. 안 될 게 분명하다고 중얼거리며 오퍼를 넣고 우리는 오퍼를 넣었다는 기억 자체를 잊은 채 삼 개월가량을 보냈다.
차기작 『두개골의 서』 준비로 분주하던 어느 저녁, 퇴근한 동료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에이전시로부터 답변이 왔단다. “됐대.” 세 개 타이틀이 몽땅 다. 지하철을 타고 집과 회사를 오갈 때나 혼자서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지금도 이따금 궁금하게 여긴다. 이른바 돈 없고 빽 없는 우리를, 뭘 보고 작품을 줬을까 하고. 그리고 때때로 걱정한다. 소심하고 겁 많은 스기무라 사부로처럼.
이 남자,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존재 이유
『마술은 속삭인다』가 시리즈의 첫 권으로 출간되었지만 원래는 『누군가』로 스타트를 끊을 예정이었다. 재벌가의 딸과 결혼한 서른다섯 살의 아저씨. 결혼의 조건으로 들어간 장인의 회사 이마다 콘체른에서 사내보를 만드는 출판 편집자 스기무라 사부로. 『누군가』의 주인공이자 소심하고 겁 많은 이 남자가 어쩐지 나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나는 지금도 미야베의 모든 작품 가운데서 『이유』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를 가장 좋아한다. 여느 미스터리에서 볼 수 있는 명석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었다면 『누군가』의 존재이유가 엷어졌을 것이다. 스기무라 사부로를 얻고 나서야 ‘행복한 탐정’ 시리즈는 살아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술은 속삭인다』와 『누군가』의 번역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모든 타이틀을 놓고 검토를 시작했다. 그 무렵, 연재를 마친 『이름 없는 독』이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미 몇 군데 출판사에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하지만 걱정이 기우로 끝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름 없는 독』은 『누군가』의 속편이니까 한국어판도 같은 출판사에서. 땅! 땅! 땅! 현명한 결정에 박수를.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유는 치기어린 장난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미야베 미유키를 ‘미미 여사’라 호칭했고, 시리즈 전체를 ‘미야베 월드’로 통칭했다. 단지 심심한 페이지가 싫다는 이유로 『마술은 속삭인다』에 심어 놓은 ‘이스터 에그’가 독자들의 반응을 얻자 『대답은 필요 없다』부터는 그것 때문에 끙끙대기도 했다. 나름 즐거운 고민이었지만.
스나크,
혹은 살의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산탄총의 우의(寓意)
나는 지금 『스나크 사냥』(1992년)의 이스터 에그를 생각하는 와중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스나크 사냥』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미야베 미유키가 언제나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이른바 사회파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군 가운데에서도 시기적으로 거의 맨 앞에 위치하며, 미야베의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속도감 넘치는 서술과 하드보일드한 문체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상식이나 도덕에 반(反)하고, 혹은 법의 적용을 왜곡해 합법성을 획득하는 이기주의자들에게, 합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불가해한 현실이나 절대적인 악을 경험한 인간이 총을 드는 순간, 그들 역시 괴물이 되는 게 아닐까”라는 반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사회파 작가로서 초창기 미야베 미유키가 고민한 문제의식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괴물과 싸울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고민에 대한 답을 모색하던 저자는 “괴물과 싸울 때에는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는 다소 어두운 결론으로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 짓고 있는데, 『이유』(1999년)와 『모방범』(2001년)을 거쳐 최근작인 『이름 없는 독』(2006년)에 이르기까지, 그 모색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며 여전히 진행중이다. 인간의 실체라는 걸 쉽게 파악할 수야 당연히 없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향후 출간될 ‘미야베 월드’에서도 미야베 미유키다운 안목은 여전히 빛을 발하리라 믿는다. 독자 여러분들도 계속 응원해 주시기를.

아울러,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을 추적하는 짧은 시간적 배경을 가진 작품을 다듬어 책으로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야심차게 시작한 출간 예고제가 무색해져 버렸고 결국 독자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린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는 전적으로 출판사의 잘못이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죄송하다.
다시, 미야베 월드의 시작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이다. 여행에는 확실히 현실과 동떨어진 생활감이 있다. 최소한의 생활물자를 준비하여 차를 타고, 때때로 걸어서 익숙지 않은 장소로 이동한다. 주위의 경치가 달라지면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달라지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다 보면 금세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하는 마음가짐이 되어 버린다. 긍정적이라면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이다.
어쨌든 항상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행복 속에서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배짱이 필요한 걸까” 따위를 걱정하는 스기무라 사부로나 나 같은 인간에게는 바람직한 일이겠지.
동서양은 물론이거니와 손바닥만 한 TV나 온갖 게임이 저장된 휴대전화가 횡행하는 요즘 같은 때에도, 여행길에 어떤 책을 들고 갈 것인가 하는 명제는 누구나가 고민하는 고전적인 딜레마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사람은 각기 독서 경향이 다르고, 여행의 목적이나 기간에 따라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결론을 유추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만약 ‘언제 어느 곳을 가든 오케이’라고 여길 수 있는 책이 한 권쯤 있다면, 인생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나는, ‘미야베 월드’가 그러한 ‘오케바리적 결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해도 좋겠다. 모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 노파심에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기리노 나쓰오도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가다. 이미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