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라모를 처음 만난 곳은 일본 미스터리 전문 번역자이신 권일영 선생님 작업실이었습니다. 그때는 한창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만 연달아 나오던 시기였는데, 저희는 미야베 미유키 외에 또 다른 일본 작가를 물색중이었지요. 현재 활약하고 있는 작가들은 이미 많이 경쟁이 붙어 있기도 하고, 특색 있는 작가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추천해 주신 작가가 바로 라모입니다.
원래 라모는 권일영 선생님이 숨겨두고 소개를 할 시기를 엿보고 계셨는데, 선생님을 찾아뵙기 얼마 전 저희가 검토 의뢰한 다른 작가(그 작가는 요네자와 호노부였지요)의 책이 우연히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는 바람에 대신이랄까, 저희에게 꺼내놓으신 거예요. 그때 본 책이 『가다라의 돼지』예요.
『가다라의 돼지』는 1994년에 일본 추리작가협회 장편상을 받은 작품인데 주술과 종교와 초능력과 민속학이 얼버무려진 오컬트 모험 소설입니다. 작가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마관리법 위반으로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열을 불태워 『감옥에서 하는 다이어트』라는 책을 내놓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강 짐작하시겠지요? 아이큐가 185나 되는 기인이다 보니 작가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록 보컬에 광고 카피라이터에 배우까지 온갖 분야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재능을 주체할 수 없었나 봐요;;
각설하고, 작가에 흥미가 동한 저희는 검토와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가다라의 돼지』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오컬트 모험 소설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에 반쯤은 결정을 하고 말았어요.
그런 와중에 절판되었더라도 언제 나왔던 책이 없나 찾아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소개된 작품은 없었고 우연히 『가다라의 돼지』를 원작으로 한 만화 발견! 제목은 무려 『악마의 주술』........ 이름은 ‘라모 나카지마’로 되어 있고.....(그래서 『인체 모형의 밤』이 처음 등록되었을 때 ‘라모 나카지마’로 표기되는 사태가-_-) 2003년에 나와 이미 절판된 만화인지라 헌책방을 털어 구입했습니다. 제목이 내용과 연관이 있어서 찍었기 때문에 책이 오기 전에는 『가다라의 돼지』를 원작으로 하는 것인지 그냥 동명이인인지는 알 수 없었죠.
드디어 책이 도착하고, 내용 확인을 시작했습니다. 보니까 맞더라고요. 다만 세 권 전부의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1권의 내용만 줄거리 압축+요약. 나카지마 라모의 디테일한 설정과 묘사도 빠져 있는데다 원작의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는 구성인지라 검토에는 별로 도움이 못 되었습니다;;;
암튼 이러구러 특이한 소재에 흥미진진한 오락 모험 소설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내기로 결정! 일본 독자들의 반응도 굳!! 하지만 한 작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자리를 단단히 차지하고 있는 작가지만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데다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글재주도 워낙 다양해서 최고작 하나만 덜렁 소개하기는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골라낸 책이 모두 네 권입니다. 알코올에 사로잡힌 남자가 오가는 환상의 세계를 다룬 『오늘 밤 모든 바에서』(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수상), 유쾌하고 감동적인 홈드라마 『아버지의 백드롭』, 마지막으로 얼마 전 출간된 기기괴괴한 호러 단편집 『인체 모형의 밤』입니다. 모험 소설에 순문학과 동화에 가까운 작품, 호러까지, 완전 골라 먹는, 아니 읽는 재미가 있는 네 가지 맛 무지개 아이스크림 기획이지요. ( ")
원래는 『인체 모형의 밤』 번역을 권일영 선생님이 맡아 주시기로 했지만 워낙 바쁘고 일정이 꽉 차셔서 좀처럼 시간이 나질 않으셨어요.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다른 번역자를 찾게 되었죠. 그러던 와중에 권일영 선생님과도 잘 알고 지내시는 한희선 선생님께 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희선 선생님은 일본 미스터리 번역계에 떠오르는 샛별, 저희 『대답은 필요 없어』(조만간 품절 풀릴 예정!)를 번역하실 때만 해도 신인이었으나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 사건』, 아야쓰지 유키토의 『키리고에 저택 살인 사건』, 가노 료이치의 『제물의 야회』 등을 번역하며 이제는 당당히 중견 번역자로 거듭나고 있는, 이제는 함께 고양이를 돌봐줄(?) 남친만 구하면 완벽하....... 엣헴. 암튼 그런 분입니다. 라모의 후속 작품들도 계속 소개해 주실 거예요.
『인체 모형의 밤』은 신체의 각 부위를 소재로 삼았다는 특이한 콘셉트 때문인지 책이 나오기 전부터도 많은 분들이 흥미를 보여주셨는데, 특히나 장르 문학 전문지 『판타스틱』 편집부의 눈에도 들어 처음 한 편을 잡지에 싣기도 했습니다. 잡지에 첫 단편을 실으면서 재밌는 인연을 만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기로 할게요. 마지막으로 감동적인 라모의 노래 <いいんだぜ(괜찮아)>를 감상하시면서(방송 금지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인류애가 담긴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시면 정말 가슴 뭉클하실 거예요 T_T 멜로디만으로도 굳) 『인체 모형의 밤』으로 함께 달리시는 겁니다. 피라미드 파워! -虎-
※ 이 글은 알라딘 서재에도 동시에 올라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