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다녀온 호얍니다. 이번 달 늦은 이유는 휴가입니다. 처가와 친가 양쪽 집안으로 한 번씩 여행을 다녀왔더니 이렇게;;; 암튼 각설하고! 지난 밀실 트릭클로즈드 서클에 이어 이번에는 서술 트릭입니다. 독자들을 속여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을 준비하는 장르인지라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공정하지 못한 트릭이라며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요, 서술 트릭이란 범인이 탐정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마련한 장치가 아니라 작가가 독자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마련한 장치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퀴즈를 기억하실 거예요. “자, 당신이 이제 버스 운전사입니다. 승객은 남자 다섯에 여자 다섯 명이 타고 있어요.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남자 둘이 내리고 여자 둘이 탔습니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남자 셋과 여자 한 명이 탔습니다. 세 번째 정거장에서 남녀 커플이 내렸습니다. 네 번째 정거장에서 할머니 두 분이 타고 아가씨가 둘 내렸습니다. 다섯 번째 정거장에서 아저씨 세 분이 올라탔습니다......  그러면 버스 운전사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글로 이렇게 써놓았으니 처음 보는 분들도 쉽게 함정을 알아차리실 수 있겠죠? 버스 운전사의 나이는 바로 ‘당신’의 나이입니다. 정거장마다 오르내리는 남자와 여자 승객의 수에 신경을 쓰느라 맨 처음에 “당신이 버스 운전사”라고 한 가정을 까맣게 잊고 말지요. 마지막에 “당신이 운전사라고 했잖아요.”라고 말해 주어야 비로소 일종의 난센스 퀴즈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사실을 감추거나 알려주지 않은 것은 아니니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없지요.

이런 식으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과장하여 정작 중요한 일들을 잘 보이지 않게 가리거나 특정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는 방법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착각하게 만드는 일을 미스터리에서는 ‘미스 리드(mislead)’라고 해요.

독자들은 작가가 정해진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걸려들 수밖에 없지만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구성하지 않으면 치사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어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두고 엘러리 퀸은 독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비난하기도 했지요. (다들 아는 트릭이지만 혹시 읽지 않은 분이 계실 것 같아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

저는 중학교 때 저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추리 소설도 있다니! 이런 식이라면 범인을 알아맞히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은 그만이거든요. 또한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곳곳에 장치된 단서들을 쫓는 재미도 쏠쏠하고. 트릭을 미리 알게 된다면 재미가 반감되니 인터넷 곳곳에 널린 정보 폭탄은 조심하시길!! 사실 서술 트릭인지 밀실 트릭인지 뭔지 모르고 읽는 편이 충격과 재미는 더욱 크지만. -虎-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김성기 옮김, 한스미디어
'서술 트릭'이라는 이름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린 장본인이라고나 할까요. 이 작품의 평가는 반반인데, '예상치 못한 재미'와 '예상치 못한 허탈감'. 여러 수상력 등으로 관심을 집중받은 작품이기에 더욱 그런 듯합니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권일영 옮김, 시공사
신본격 미스터리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비코 다케마루의 두 번째 소개작. 단순간명하면서도 서술 트릭의 묘미를 잘 살린 작품인데 간혹 무슨 반전이라는 말인지 못 알아차리는 독자분도 계시는군요;; 전 <미륵의 손바닥>도 재밌게 읽었어요.

<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권일영 옮김, 한스미디어
이른바 '도착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죠. 서술 트릭의 대가로 알려진 작가답게 멋지고 흥미진진한 구성을 선보입니다. 서술 트릭이라는 장치를 걷어내고도 읽는 재미가 듬뿍 담겨 있으니 꼭 읽어 보세요. 곧 두 번째 작품 <도착의 사각>도 출간된다죠?

<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노블마인
이 작품은 서술 트릭을 얘기할 때 그다지 언급되지 않습니다만 그것은 작품성이나 재미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서술 트릭'만으로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차 서술 방식에 촘촘히 쌓아 올린 심리 구조들은 제법 괜찮은 작품 이상으로 슈노 마사유키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만들지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서수지 옮김, 북스피어
서술 트릭하면서 이 작품을 빼놓으면 서운하지요! 에헷. 특이하게도 범죄와 사건이 아니라 달콤쌉싸름한 청춘의 한 장면을 서술 트릭으로 짜맞춘 소설입니다. 소설 구석구석에 배치한 온갖 단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재미로 소설과 미스터리의 재미를 구축하고 있어요. 겉모습이 미스터리가 아니라 청춘 러브 소설이라 추리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조금 심심했나효.

늦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이 ‘장르 무작정 따라 읽기’라는 연재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분은 없으리라 믿으며 위안을 삼습니다. on_ 15일 <파일로 밴스의 정의> 마감날이라 정신없이 보내고 하루 놀다 보니 어느새 17일...._ㅜ..........o;;;;; 아무튼 연재 간격이 길다 보니 저도 잊어버리기 쉽고 해서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할까봐요. 한 달에 한 번도 안 하면서 무슨,이라고 중얼거리는 거기, 여러분, 세상을 너무 냉소적으로 사시면 안 될 겁니다, 아마.

지난번에는 본격 미스터리 중에 밀실 트릭에 대해 얘기했는데 오늘은 그 확장판 ‘클로즈드 서클’에 대해 얘기하려고요.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은 말 그대로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말합니다. 밀실이 방이나 동굴 등 좁은 공간이라면 클로즈드 서클은 조금 넓은 공간이라고나 할까요. (살인) 사건의 배경이 집이라든지 섬이라든지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마을 등이 되는 경우를 말해요.

클로즈드 서클이 본격 미스터리에서 자주 쓰이는 이유는 사건의 논리적 추론을 좀 더 명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 범인이 한정되어 있고 행동 또한 특정한 범위에 구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성의 수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에요. 문제를 풀기 위한 작가와 독자와의 ‘약속’ 같은 거죠. 우연히 지나가던 강도가 일을 저질렀다는 식의 결말을 내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넓은 의미에서 대부분의 본격 미스터리는 클로즈드 서클을 무대로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죠.

요코미조 세이시는 주로 ‘마을’을 단위로 하는 클로즈드 서클을 많이 이용하고, 아야쓰지 유키토는 저택을 무대로 하고 있지요.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좀 다양한 편인데, <월광 게임>에서처럼 화산 활동 때문에 클로즈드 서클이 되어 버린 산이 무대가 되기도 하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인사이트 밀>처럼 등장인물에 의해 의도된 공간이 마련되기도 해요. -虎-


추천!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십각관의 살인>, 아야쓰지 유키토
저택에서 벌어지는 클로즈드 서클에 관심이 있다면 이것부터 시작하시길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고르게 재밌는 편이지만 제일 얇으면서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산뜻합니다. 관 시리즈는 작가가 구상한 독특한 구조의 저택을 상상하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십각관> 뒤에는 <시계관>. <암흑관>은 제일 나중에 아야쓰지 유키토 상이 좋아지면 읽으세요. 일단 분량이 너무 많고, 분위기 묘사와 서술에 지나치게 공을 많이 들이고 있어 지루해지기 십상.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절규성 살인 사건>도 제법 재밌습니다. 관 시리즈처럼 다양한 저택들이 등장하는데다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즐길 수 있지요.

<이누가미 일족>, 요코미조 세이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은 가장 최근 나온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근데 제가 주로 쓰는 닉네임으로 누군가 중고를 내놓았네요. 저 아닙니다;;;)를 제외하면 모두 클로즈드 서클 작품인데, 그중에서도 <이누가미 일족>을 추천합니다. 사실 전 긴다이치 고스케 양반을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 다 죽고 나서 ‘난 다 알고 있었다’라니, 사건은 왜 해결하는 건데? -_- 그럼에도 <이누가미 일족>은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클로즈드 서클로서의 성격은 가장 덜한 편이지만요.

<인사이트 밀>, 요네자와 호노부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주아주 즐겁게 읽었는데요, 요네자와 호노부의 이 작품은 밀실 트릭과 클로즈드 서클의 무대를 잘 이용하고 있지요. 미스터리적인 작위성이 강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그 작위성을 즐기는 게 목적이에요. 여러 본격 미스터리 작품을 알고 읽는다면 더 재밌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외딴섬 퍼즐>, 아리스가와 아리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본격 미스터리는 퍼즐 미스터리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려요. 전 <월광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묘하게 다음 작품을 계속 읽게 만드는 재주가 있지요. ‘퍼즐’에서 풍기는 흥미 때문인가 봐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으실 거라면 <월광 게임>보다 <외딴섬 퍼즐>을 추천합니다. 더 공평하고, 이야기의 재미도 있어요.

* <스카라베 살인 사건>, S. S. 밴 다인
그러고 보니 연재가 늦은 이유인 밴 다인의 이 작품도 클로즈드 서클이군요! <스카라베 살인 사건>은 한 이집트학자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무대로 하고 있으니까요. 밴 다인의 작품들도 대부분 클로즈드 서클에 해당하지요. 교고쿠도와는 또 다른 현학장광설을 듣다 보면 사건 해결이고 뭐고 한대 때려주고 싶지만, 잘났으니 용서해야죠. 이 작품은 8월 초에 만나실 수 있습니다. 에헴.

* 사진 출처
http://www.chem.ucla.edu/~ltfang/defne/defnes_art.htm, Defne Egecioglu
지난 25일과 5일에 이어 매달 15일에 ‘장르 무작정 따라 읽기’를 연재할 호야입니다. 네? 오늘은 16일이라고요? 네에... 초장부터 연재 지각입......||||on_  아무튼, 장르 무작정 따라 읽기라고는 하지만 특별한 건 없습니다. 갖가지 장르에 대한 상식들, 장르에 따른 추천도서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제는 장르 전문가라고 부를 만큼 대단하신 독자들이 많지만 이 연재는 막 장르 소설을 읽기 시작하거나 읽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장르 전방위에 걸쳐 잡설을 늘어놓을 테니 어느 한 장르만 읽는 분들에게도 나름 유용(?!) 올여름 뭘 읽을지 고민하시는 독자 여러분, 여길 따라 읽어 보세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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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미스터리입니다. 사나이라면 역시 미스터리죠!(의미 없음) 미스터리도 종류가 참 다양한데요, 오늘은 본격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옛날에는 사실 따로 ‘본격’ 미스터리라고 부르지는 않았어요. 탐정이나 형사가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논리적인 사고로 해결하여 범인을 잡는 이야기를 통틀어 추리 소설 또는 미스터리라고 했지요.

‘본격’이라는 표현은 일본에서 온 것인데, 고전 미스터리 시대가 지나면서 미스터리에 현실을 반영하여 범죄의 사회적 동기를 파헤친 사회파 미스터리라든지 괴담 등이 어우러진 호러 미스터리, 일상의 자잘한 일들을 소재로 한 일상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등등등 미스터리가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본래의 형태를 한 미스터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미스터리 하면 주로 본격 미스터리를 가리켰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이라고 하면 탐정+사건+범인의 조합을 연상하실 거예요.

서양 미스터리에서는 따로 ‘본격 미스터리’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요즘은 코난 도일이라든지 딕슨 카, 밴 다인 등의 고전 작가들을 현대 스릴러나 스파이 소설 등과 구분하여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보통은 그냥 고전 미스터리라고 하지만요.

한국에는 본격보다는 사회파가 각광받는 경향이 있지만 본격 미스터리야말로 미스터리의 꽃이라고 할 수 있죠! 탐정은 온갖 불가능해 보이는 트릭과 범행, 누군지 종잡을 수 없는 사건의 행적을 뒤쫓습니다. 결국 결정적인 단서를 잡은 그는 마지막에 가서 등장인물들을 모아놓고 주저리주저리 수다를 떨다가 이렇게 내뱉습니다.

“범인은 바로 너야!”

그때의 쾌감이란. 탐정의 뒤를 쫓아 트릭을 푸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독자들의 호기심을 극대화시켰다가 팡 하고 터뜨리는 카타르시스는 본격 추리의 매력이지요. 그래서 본격 추리 작가들은 독자들이 상상하지 못할 트릭을 고안하는 데 주력하곤 했어요. 많이 등장하는 것은 밀실 트릭, 알리바이 트릭, 서술 트릭, 다잉 메시지 등이죠.

그중에서도 본격의 꽃 ‘밀실’ 미스터리는 매번 반복되어 등장해도 독자를(저를) 흥분시키곤 합니다. 밀실 미스터리라 함은 아무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쫓는 작품을 말합니다.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문이 모두 잠긴 방 안의 시체라든지, 들어간 발자국만 있고 나온 발자국은 없는 동굴 속 살인이라든지. 범인이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는지가 이 미스터리의 관건이죠.

밀실 트릭의 대표작으로는 고전 중의 고전인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과  ‘불가능 범죄’의 대가 존 딕슨 카의 작품들(하지만 현재 정식 출간된 카 작품 중에는 밀실 미스터리로 추천할 만한 작품이 없네요. 아, 그러고 보니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에 카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밀실의 모험」이 포함되어 있지요. ;-) )이 유명합니다. 밀실 트릭은 그 하나만으로 작품을 이루기보다 범죄의 한 요소로 등장하거나 단편의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아 추천할 작품이 그리 많지 않네요. (동서미스터리문고 작품은 제외했습니다.) 여러분이 더 추천해 주세요!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해문출판사
『빅 보우 미스터리』, 이스라엘 장윌, 태동출판사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북홀릭
『절규성 살인 사건』, 아리스가와 아리스, 북홀릭


다음 편에는 거대한 밀실, ‘클로즈드 서클’로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虎-

덧. ‘신본격 미스터리’란?
사회파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다종다양한 미스터리가 난무하던 80년대,  몇몇 작가들을 중심으로 다시 미스터리 본연의 특성을 되찾자며 본격 미스터리로 회귀하시 시작한 미스터리를 말합니다. 관 시리즈로 유명한 아야쓰지 유키토를 비롯하여, 『점성술 살인 사건』(한희선 옮김, 시공사)의 시마다 소지 등이 대표적인 작가죠. 신본격과 본격의 특성상 차이는 크지 않고, 현대에 다시 시작된 본격 미스터리의 흐름이라고 생각하심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