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피트>도 나왔고 하니 이번 달에는 '타임 슬립'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요. 타임 슬립을 주제로 한 소설은 북스피어에서도 벌써 두 번째죠? 미야베 여사의 <가모우 저택 사건>에서는 한 소년이 58년 전 과거로 돌아가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SF 소설들은 너무 많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인데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타임 슬립'은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알 수 없는 현상 때문에 생긴 시간 여행을 가리키곤 하죠.

시간 여행에 관해서는 온갖 다양한 이론들이 있습니다. 시간 여행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이론 중에는 그 근거로 아주 작은 사건이 뒤로 갈수록 엄청나게 확산되어 겉잡을 수 없어진다는 일종의 '나비 효과' 이론도 있지요. 예를 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시대로 가서 돌멩이를 하나 걷어찼을 뿐인데 그 돌멩이에 맞은 새끼 공룡이 놀라 울부짖는 소리에 어미 공룡이 새끼에게 오다가 원시인을 밟아 죽입니다. 알고 보니 그 원시인이 바로 히틀러의 직계 조상이더라.....

단순한 논리대로라면 돌멩이 하나로 히틀러가 역사상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이 이론이라면 자칫 여행 한번 잘못 했다간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죠. 어떤 행동이 나중에 핵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니까요. 두세 명만이 잘못 여행을 했다가는 완전 엉망진창 지구가?

그래서 많은 시간 여행 소설이 '시간의 탄력성' 이론을 차용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시간의 흐름이란 매우 탄력적이라 사소한 변화들에 저항하여 원래의 흐름으로 되돌리려는 힘이 있다는 소리죠. 아까의 예에서 히틀러의 직계 조상 하나가 죽더라도 히틀러의 탄생을 막지는 못한다는 말이에요. 또는 히틀러가 태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히틀러와 대등한 부류의 인간이 새로 나타나거나. 거대한 강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거기에 누군가 돌을 던지거나 단체로 헤엄을 친다고 해도 강의 흐름이 바뀌지는 않지요? 그저 주변에 일시적인 파문만 생길 뿐.


개인적인 차원으로 시간 여행을 끌어내리면 타임 슬립이란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텐데, 그걸 잘 살린 작품이 바로 켄 그림우드의 <리플레이>입니다. 최근에 재발간된 한국어판에는 <다시 한 번 리플레이>라는 왠지 의미를 중복시킨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만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젊은 시절로 타임 슬립하면서 겪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걸작입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그전에도 많았지만 삶을 다시 한 번 산다는 클리셰에 못을 박은 게 바로 이 작품이죠. 지금에야 워낙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소재라 색이 바랜 감이 있지만 여전히 명작임은 틀림없습니다. 이누이 구루미의 <리피트>는 이 <리플레이>의 오마주 격인 작품이에요. <리플레이>가 삶에 대한 성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리피트>는 장르의 오락적 재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달까요? 어느 작품을 먼저 읽으시건 비교해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오마주는 아니지만 <리플레이>와 비슷한 시기에 기타무라 가오루가 집필한 <스킵>, <턴>, <리셋> '시간과 사람' 3부작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보통의 타임 슬립물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어쩌면 여기 끼워 넣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 <스킵> 후기에 <리플레이>를 언급하고 있기도 하고, 드물게도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타임슬립을 하는 이야기에 산뜻한 감동을 받아 여기 적습니다. <턴>과 <리셋>은 차치하고서라도 <스킵>은 한번 읽어 보세요! 여성의 감수성이란 이렇구나, 하고 놀라게 되실 거예요.



이런 소재가 흥미롭다면 <엠블럼 take 2>라는 만화도 있습니다. 찌질한 3류 야쿠자로 살던 주인공이 죽음을 당하면서 10년 전으로 돌아가 삶을 다시 시작합니다. 'take 2'의 2는 2부라는 뜻이 아니라 두 번째 사는 삶이라는 뜻이니까 1부 찾아 헤매지 마시고요. *호호* 아예 <리플레이>을 일본 판으로 만든  <리플레이 J>라는 만화도 있지요.

덧붙여, 몇 번이고 삶을 되풀이한다,는 <리피트>의 카피를 두고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을 맡아 무한하게 반복되는 하루에서 사랑을 깨달아 가는 로맨틱 코미디. 아아 얼마전에 다시 봤는데 여전히 재밌더라고요.

<리피트> 작업을 하면서 <리플레이>도 다시 읽고, 만화들도 들여다보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정한 시간으로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면 언제로 되돌아갈까. 좀 고민해 봤는데, 전 그냥 지금이 좋더라고요. 다시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일도 있겠지만 공들여 한 일(관계)들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초큼 귀찮기도 하고....(결국 시간 여행의 기회를 귀찮아서 포기한. 하하하) 여러분은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虎-

과거의 인생을 딱 열 달만 되풀이해서 살 수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또는 하고 싶지 않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로 한국에 독특한 인상을 남긴 이누이 구루미가 이번에는 '타임 슬립 미스터리 스릴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니 러브> 때와는 다른 느낌인데요, 일단 SF 설정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리피트>(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는 장르로 보자면, 일반적인 시간 여행 SF 소설(<멸종>이라든지, <타임 패트롤>이라든지, <여름으로 가는 문>이라든지)과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이라는 주제 의식이 강한 켄 그림우드의 <리플레이>의 중간쯤 위치한다고 할까요? 읽다 보면 SF라는 느낌보다는 미스터리의 느낌이 강하실 거예요. 중간중간 '시간 여행'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요. 내용으로 보자면 그림우드의 <리플레이>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합쳐 놓은 듯합니다. ㅎㅎㅎ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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